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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주년 5·18기념식 '류동운·박금희 학생 열사' 재조명

윤 대통령 류동운·김용근·한강운 묘소 참배

2024년 05월 18일(토) 12:32
국립 5·18민주묘지에 안장된 류동운(왼쪽)·박금희 열사
제44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고립된 광주에서 최후까지 저항하다가 산화한 대학생과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돌아가는 길 총탄에 맞아 숨진 여고생 열사들의 이야기가 재조명됐다.

18일 오전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 제44주년 기념식 공연에서는 류동운·박금희 학생 열사들의 사연이 전남대학교 학생 등을 통해 재조명됐다.

1980년 5월 당시 한국신학대학교 2학년이었던 류동운 열사는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신학자를 꿈꿨었다.

류 열사는 비상계엄과 휴교령이 내려지자 광주에 있는 가족을 만나러 왔다가 오월 광장에서 벌어진 항쟁에 뛰어들었다.

5·18 당시 계엄군에게 붙잡혀 모진 가혹행위를 당했고 이틀 만에 풀려났다.

그럼에도 그는 다시 항쟁에 참여하려 했고 가족들은 반대했다.

류 열사는 반대하는 아버지를 향해 ‘누군가 역사를 위해 십자가를 지어야만 역사가 큰 생명으로 부활한다하지 않으셨습니까’라며 설득했다.

이윽고 그는 ‘한줌의 재가 된다면 어느 이름모를 강가에 조용히 뿌려다오’라는 유서를 남기고 시민 곁으로 향했다.

집을 나선 류동운 열사는 도청으로 돌아가 시신수습과 행방불명자 접수 등을 처리하면서 마지막까지 시민들과 함께했고, 계엄군의 총격에 숨졌다.

류 열사와 함께 당시 춘태여자상업고등학교(현 전남여상) 3학년 학생이던 박금희 열사의 이야기도 소개됐다.

5·18 당시 수많은 부상자가 속출하자 광주시내 가두방송에선 헌혈이 절실하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박 열사는 헌혈을 하러 광주기독병원으로 향했다.

대기줄은 수많은 시민들로 긴데다 병원에서도 충분하다고 되돌려보내고 있었지만 박 열사는 ‘내 피도 뽑아달라’고 애원했다.

박 열사는 무엇이든 보태고 싶었던 소박한 마음을 가진 착한 여고생이었다.

그는 헌혈을 마치고 병원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주검이 된 채 조금전 헌혈을 마친 병원 응급실로 실려왔다. 자신이 헌혈한 피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이었다.

평범한 가정의 4남 4녀 중 막내딸이었던 열일곱 여고생의 비극적인 죽음은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에 기록되기도 했다.

박 열사가 참여한 헌혈은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나눠 먹던 주먹밥과 함께 ‘오월 공동체’와 ‘광주 대동정신’의 상징으로 꼽힌다.

취임 후 3년 연속 5·18 기념식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은 5·18 유가족과 함께 박 열사와 김용근·한강운 열사의 묘소를 찾았다.

역사 교사를 지낸 김 열사는 1980년 당시 수배 중인 제자들을 숨겨준 죄목으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5·18 마지막 수배자였던 고 윤한봉이 그가 숨겨줬던 제자 가운데 한 명이다.

1917년생인 김 열사는 일제 강점기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총독암살단을 구성해 학생 신분으로 2년여 옥고를 치렀던 독립유공자이기도 하다.

한 열사는 19세의 나이로 항쟁에 참여한 차량 정비공이다.

그는 계엄군의 도청 진압 작전이 끝난 5월 27일 아침 광주 사직공원에서 다른 시민군들과 함께 경계를 살피다가 계엄군에게 체포됐고, 고문 후유증에 20여 년을 시달린 끝에 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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