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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 삶을 위한 죽음의 법률

한은경 심리학 박사·임상심리 전문가
세계, 연명의료 환자 권리 강화
'좋은 죽음' 위한 선택 고심해야

2024년 03월 25일(월) 16:45
낮이 밤보다 길어지기 시작하고, 하늘은 점차 맑은 빛을 띤다. 논 농사일의 기초가 되는 봄 가래질을 시작하는 절기가 다가오듯 국민을 대표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국정을 심의하는 국회의 의원을 뽑는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2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국가에 의해 강제성을 갖는 사회 규범인 법률을 제정하고. 국정을 심의하는 일을 수행하는 만큼, 국회의원 선거는 향후 4년간의 국가 농사의 근간이 된다고도 할 수 있다.

국민의 선거로 선출되는 직위에 제정 권한을 부여할 만큼, 법률은 국민에게 매우 중차대한 의미가 있다. 모두가 안전하고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누구나 지켜야 하는 공동의 기준을 정의한 법률을 통해 우리는 정의롭고 안전한 사회, 즉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기대한다. 그런데, 잘 살아가기 위한 법률, 즉 삶을 위한 법률 말고, 죽음을 위한 법률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만약 대부분의 법률이 삶의 질 향상을 향해 있다면, 죽음의 질 향상을 위한 우리의 복지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영국의 한 시사주간지 산하 연구기관(EIU)에서는 완화의료정책, 즉 임종을 앞둔 환자의 통증과 그 가족의 심리적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평가하는 지표로, 80여 개 국가를 대상으로 죽음의 질(Quality of Death Index)을 측정해 발표한 바 있다. 이 지표에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이용할 수 있는 병원과 의료서비스의 질, 그리고 국가의 지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의료보험이나 국민연금이 완화의료정책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우리는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었지만, 정작 중요한 완화의료의 질이나 시스템에서는 점수가 낮았다고 한다(2015년 기준). 반면, 완화의료에 대한 포괄적 정책을 국가가 수립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시민사회에서도 관련된 봉사나 기부제도가 활성화된 덕에 국민이 거의 무상으로 호스피스 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제도화된 영국은 1위로 선정되어, 가장 죽기 좋은 나라로 알려지기도 했다.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죽음을 준비하는 교육을 제도화한 국가들도 있다. 특히, 미국은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죽음에 대한 이해와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을 교육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도 죽음의 질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국가인 대만이 있다. 2000년 아시아권 최초로 임종기 환자의 연명의료에 관한 권리를 법제화한 대만은 이어 연명의료 결정과 관련한 환자의 권리를 더욱더 강화하는 환자자주권리법을 2015년에 제정한 바 있다. 특히, 이 법에서는 말기 환자 외에도 회복 불가한 상태(혼수, 치매, 식물상태 등등)로까지 대상을 확대했고, 의료법보다 우선적 지위를 가지는 특별법으로 제정되어, 인간의 존엄한 죽음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총리 부부의 죽음으로 잘 알려진 조력 존엄사에 관한 법률에 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정은 어떠한가? 지난 2016년 「연명의료결정법」 제정된 이후 생의 마지막인 죽음을 스스로 결정해서 존엄과 가치를 보호받고자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등록한 이가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설 정도로 이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요구가 커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법의 적용에 있어 많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연명의료 결정 대상의 명확성과 확대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실효성, 그리고 대리결정자 범위의 적정성 등 다양한 이슈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말기 환자의 조력 존엄사 헌법소원이 국내에서 제기된 바 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알아야 하고, 국회의원은 어떠한 법률을 제정해야 하며, 이를 기반으로 국가는 어떠한 정책을 펴야 하는 것일까? 물론, 민생경제 파탄, 사회 양극화, 국가의 존속을 위협하는 유례없는 저출산, 지역 불균형, 그리고 평화와 기후 위기 등 너무도 많은 이슈가 산적하고 있어 이러한 이슈를 테이블 위로 올려놓기란 쉽지 않다. 또한, 좋은 죽음에 대한 의견들도 다양할 수 있지만 공통으로 발견되는 좋은 죽음은 당사자가 두려움 없이 담담히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자신이나 남겨진 가족에게 모두 좋은 죽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반하고 있다. "태양과 죽음은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라는 프랑스 작가 라로슈푸코의 말대로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태양을 바라보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생자필멸'인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태어난 순간에서부터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인 우리의 삶은 죽음을 배경으로 할 때 가장 잘 볼 수 있고, 죽음을 가까이 둘수록 역설적이게도 삶은 풍요로워질 수 있다. 우리 자신과 소중한 이들의 좋은 죽음을 위해 2024년의 총선에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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