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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우체통에 두고 온 마음
2024년 02월 19일(월) 16:32
<화요세평>우체통에 두고 온 마음
한은경 심리학 박사·임상심리 전문가


눈이 녹아 비가 된다는 절기, 우수를 지나고 있다. 바야흐로 봄기운이 돌고 초목이 싹을 틔우기 시작하면, 조만간 봄이 오겠지 하는 생각에 거리를 거닐다 우연히 빨간 우체통에 시선이 갔다. 우표를 붙인 편지를 우체통에 넣었던 때가 언제였지?라고 생각해보니, 기억조차 잘 나지 않을 만큼 까마득해졌고, 문득 우체통의 기능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십여 년 사이 절반 가까이 개수가 줄어들었다고 하는 우체통은 현재 연락을 주고받는 고유의 기능은 담당하면서도 분실물의 주인을 찾아주는 용도로 병행돼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스마트시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하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전달하지 못한 마음을 조용하게 나누던 옛날의 추억을 되새겨보니, 마치 ‘정’을 나누는 심리적 교신창구가 사라진 것도 같았다. 먼지만 나올 뿐 한 장의 편지도 들어있지 않을 때가 있다는 집배원의 말에서 씁쓸함마저 올라왔고, 마치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하지만 주인을 잃고 방황하는 물건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익명의 선한 마음이 그 빈자리를 메꾸고 있다는 생각에 이내 묘한 안도감도 들었다. 무언가를 잃어버렸지만, 그러면서도 뭔가를 얻었다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합리적 선택 위한 스트레스

4·10 총선이 50여 일 코앞에 다가온 요즈음, 새로운 정당의 창당이나 공천 등 다양한 정치적 변수를 둘러싸고 판도가 요동을 치고 있다. 근현대 민주주의의 꽃이자, 핵심 기능이기도 한 국가 선거에서 우리는 모두 1표만 행사할 수 있는 완전 경쟁 시장의 소비자이기도 하다. 소비자 관점에서 보면 무언가를 구매한다는 것은 욕구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최선의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는 것이다. 옷을 파는 사람에 비해 옷을 사려고 하는 사람의 스트레스가 더 적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인간은 합리적인 선택을 하고자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정치적 행동, 즉 투표에서도 이러한 인간행동은 예외가 아니다. 부동표를 결정하는 심리를 생각하면 쉽게 떠올릴 수 있겠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는 존재로, 이러한 선택은 욕구의 충돌, 즉 갈등을 전제로 하며, 갈등은 불안을 유발하고, 불안을 처리하기 위해 각자의 대응방식(습관과 성격)을 형성해왔을 것이다. 가령, 놀러 가고픈 욕구와 시험준비를 해야 하는 갈등 상황에서 집에 남기로 한 학생을 예로 들어보자. 공부하기로 했지만, 책상을 정리하거나 친구들에게 안부 문자를 보내는 것으로 시간을 쓰고 있다면, 이는 집에 남아서 놀고자 하는 욕구를 무의식적으로 충족시키는, 일종의 대응책인 셈이다. 예컨대 무언가를 계속 미루는 습관을 지닌 사람은 자신만의 패턴으로써 타협점을 찾은 셈인 것이다.

유권자 입장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투표란 후보자들을 놓고, 생각이나 느낌, 소망 등이 충돌하는 갈등 상황에서 미래(개표 후)에 대한 불안을 처리하는 각자의 대응방식을 발휘하는 장인 셈이다. 이러한 대응방식은 어떠한 정보나 상황을 특정 방식으로 인식하고 개인화된 경험으로 처리하는 방식, 일종의 사고의 틀(mental frame)과도 같은 것으로 이러한 틀의 차이가 유권자의 반응과 투표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즉, 정치적 선택상황이라는 갈등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국내의 한 연구에서도 이러한 갈등의 순기능에 초점을 두고 발전하는 과정으로 인식하는 사고 틀(학습적 마인드셋)을 지닐 경우, 갈등을 자신에 대한 위협으로 해석하고, 누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평가 과정으로 인식하는 사고틀에 비해 정치적 대립상황에 대한 긍정적 인식과 투표 참여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음이 보고되기도 했다.

타인 관계 발전시키는 가치

2024년 총선은 다양한 국내외 변수에 더해 민주주의에 대한 화두가 유독 솟구치는 현장이다. 혹자는 이러한 요동치는 정세가 유발하는 불안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이러한 불안의 근원에 작용하는 힘의 존재를 믿고, 요동치는 힘들이 뿜어내는 역동에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하자는 발언을 한 바 있는데, 이는 곧 변화와 성장의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긍정심리학적인 입장이자, 앞서 말한 갈등을 바라보는 학습적 마인드셋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투표 행동은 한 개인이 지니는 핵심가치를 실현하는 과정이면서도 그 과정에서 자신과 다른 타인과의 상호작용에서 경험하는 가치의 대립을 자신의 성장뿐만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고 발전시키는 데서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가 지향하는 자유와 평등의 가치와도 닯아있다

2024년 현재 우체통이 사라지고 있는 것처럼, 그간의 대한민국 선거를 통해 유권자가 잃어버린 마음들도 있을 것이지만 다가오는 4·10 선거를 통해 우리가 또한 얻게 될 새로운 마음들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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