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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피의사실 공표와 한 연예인의 죽음
2024년 01월 01일(월) 16:12
<화요세평>피의사실 공표와 한 연예인의 죽음
강성두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


우리 형법 제126조는 검찰, 경찰 그 밖에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수행하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표한 경우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는 처벌규정이 있습니다. 피의사실 공표를 처벌하는 이유는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헌법 제27조 제4항에 따라 모든 국민은 유죄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무죄로 추정되는데, 수사기관이 파악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에 공개 발표하게 될 경우 당사자는 나중에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이미 그 발표로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게 되므로 이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위 규정이 수사기관의 잘못된 관행과 국민의 알권리와 충돌되면서 잘 지켜지지 않아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적 대화까지 보도 심각

며칠 전 마약투약 혐의로 수사를 받던 영화배우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였습니다. 연예인이 공인으로 어느 정도 사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감수하여야 한다는 논리를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그 정도를 넘어선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이번 사건은 수사를 받던 피의자에 대한 혐의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는 것뿐만 아니라 피의자의 범죄사실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적 대화내용까지 여과 없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다는 점에서 그 문제가 심각합니다. 변호사로 고소인을 대리하거나 피의자를 변호할 때 피의자의 변소내용이나 고소인의 고소내용은 수사기관에 대한 정보공개를 통하여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소제기 전에 피고소인의 진술내용을 확인하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또한 신상에 관한 정보는 모두 지워진 상태로 조서를 열람하거나 복사할 수 있고, 구체적인 진술내용은 수사결과가 나온 후나 공소제기 후 재판과정에서만 열람할 수 있을 정도로 철저히 제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신문이나 방송을 통하여 수사를 받는 피의자의 구체적인 진술내용이 조사 후에 바로 기사화되고 어떤 조사를 받았고 어떤 결과가 나왔다는 것까지 모두 시시각각 생중계되다시피 공개되었습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범죄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는 사적대화의 내용이 공중파를 통하여 여과 없이 보도된 것입니다. 공개된 사적 대화의 내용을 보면 우리가 지금 문명국가에 살고 있는가를 의심하게 할 정도로 저급하기 짝이 없습니다. 가십거리로 일반 대중의 흥미를 유발하는 황색언론이나 개인 유튜브가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이런 내용을 무차별하게 방송하는 것도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현실에서 이런 곳이 아닌 공중파에서 사생활이 무분별하게 보도된 것은 깊이 되짚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 폐해가 해당 개인의 피해에 한정되지 않고 가족들의 명예와 사생활까지 침해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입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수사기관이나 언론기관 모두 자신들의 잘못이 없었다는 변명만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경찰은 피의자의 변호인이 비공개 소환 요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청 훈령인 ‘경찰 수사 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에 어긋나게 이를 거절하였고, 사적 내용을 방송한 언론은 마약 남용이 공중보건과 사회 질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중대 범죄이고, 유명 연예인이 연루돼 사회적 관심이 큰 사안이라는 점에서 언론이 실체를 규명할 필요성이 컸다고 하면서 보도의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마약 사건과 직접 관련이 없는 사적 대화를 다룬 해당 보도가 뉴스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변은 없습니다.

희생양 삼는 것 아닌지 질문

이씨의 죽음으로 수사기관과 언론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고 있고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현실적인 제재 조치가 논의되고 있지만 우리 모두는 이러한 잘못된 수사나 보도관행에 일조한 잘못은 없는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가르침을 주실 때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끌고 와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습니다. 사랑과 율법이라는 모순된 선택지를 주고 예수님을 시험하려는 속셈이었습니다. 계속하여 물어 대는 그들을 향해 예수님이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말씀하시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뜨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그 여인과 예수님만 남았다는 얘기가 성경에 나옵니다. 우리 스스로가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며 타인의 잘못을 비난함에 주저함이 없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하여 누군가를 희생양 삼아서 타인의 흠을 드러내고 비난하는 것에 익숙한 것은 아닌지를 한 사람의 안타까운 죽음 앞에서 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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