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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세평>인정이 그리운 날
2023년 12월 04일(월) 17:38
<화요세평>인정이 그리운 날
김명화 교육학 박사·작가


바람이 차가워지니 잊고 지냈던 기억이 하나, 둘 떠오른다. 김채원의 ‘초록빛 모자’ 소설 한 부분이 갑자기 떠 오른 날 무작정 차를 몰고 섬진강으로 향했다. 적당히 부는 겨울바람을 벗 삼아 강 길을 달리니 그동안 묵었던 스트레스가 사라져 버린 것 같다. 김채원의 소설 초록빛 모자를 드라마로 만든 MBC 베스트셀러극장에서 남장을 한 주인공의 독백이 생각난다. ‘인정이 그리운 날, 난 사람을 만나러 길을 나선다.’ 시작되는 드라마의 한 장면의 기억을 더듬어 드라마 대사를 독백하며 섬진강 길을 달린다.

추운 날씨 섬진강 드라이브

강을 따라 달리니 어느덧 구담마을을 지나 장구목이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찻집 주인댁에게 쌍화차 한잔을 주문하고 유유히 흐르는 강변에 눈을 마주했다. 바람은 적당히 불고 계절은 그만큼 딱 멈추어 좋다. 오랜만에 만난 주인댁은 겨울 채비에 여념이 없었다. 겨울이 시작되는 무렵에 푸릇한 냉이를 뜯어와 다듬고 있다. 세월 묵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일어서야 할 시간이 되었다. 구담마을은 어디를 둘러 보아도 아름다운 곳이다. 주인댁에게 일어서야 한다니 정성을 다해 내렸던 젓국(잘 삭아서 물이 되다시피 한 젓갈)을 한 병 담아 준다. 돌아오는 길에 생채를 만들려고 무 한개를 샀다. 무로 채를 쓰는데 칼질이 서툴다. 쪽파를 듬성듬성 썰어 붉은 고춧가루를 뿌리고 젓국을 휘리릭 둘러 무친 생채는 감칠맛이다. 아마 주인댁의 정이 담긴 젓국을 넣어서 맛이 더해졌을 것이다.

찬 바람이 기세가 당당하다. 저녁 후 대추차를 마시고 컵을 씻는다. 수세미는 엊그제 P로부터 받은 선물이다. P는 그날 모인 사람들에게 뜨개질한 수세미를 선물했다. 색이 연말 분위기를 내고 있어 지인은 크리스마스 때 실로 사용해야지 하는데도 설거지할 때 쓰면 좋겠다는 생각부터 했다. 차를 마시고 새 수세미로 컵을 씻으니 기분이 참 좋다. 그릇을 닦는 즐거움을 선사한 P의 나눔에 감사한 시간이다.

연말이 되니 그동안 감사했던 분들이 생각이 난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먹거리가 지인이 나누어 준 사랑이 가득 채워져 있다. 방금 먹은 대추차를 보니 씨를 빼고 손으로 응어리를 으깨어 며칠 동안 끊이며 대추차를 만든 K의 정성이 고맙다. 그 옆에 생강차다. P는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정성껏 가꾸어 주신 생강을 채를 썰어 생강차를 만들었다. 살림을 모르는 P는 노력이 가상하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는 생강차는 겨울이면 꼭 필요한 겨울 먹거리라며 챙겨주었다. 안쪽을 들추어보니 3년 묵은 오미자다. 지인이 준 오미자를 똑같이 나누었다며 O의 정이 가득 배인 언어에 미소를 보내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L언니가 준 청국장은 시골에 계신 어머니의 정성이 그 안에 있다. 청국장에 묵은김치를 주시면서 L언니는 짤지 모르니 두부와 무를 듬뿍 넣고 끊여야 제맛이 난다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L언니의 어머니 김치는 소문이 날 정도로 맛이 있다. 그러고 보니 울 집 냉장고에 있는 음식은 정으로 그득 차 있다.

연말이 다가오니 그동안 정을 보여준 사람의 얼굴이 하나, 둘 스쳐 지나간다.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고맙고, 감사한 이들에게 작은 마음이라도 보낼까 한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도 하지만 마주 앉아 대화하는 것이 세상 사는 맛이 아닌가 한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SNS로 마음을 나누기도 하지만 오히려 인간의 고독은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시기에 음식으로 정을 나누면 인간은 고독에서 한 뼘 비켜설 수 있을 것이다.

연말 음식으로 정 나누기

쌀쌀한 바람이 불어오는 날은 인정이 그립다. 그런 날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다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동네 어귀에 있는 분식집을 기웃거리게 되고, 불쑥 들어가 어묵 한 개를 집어 들고 주인장과 두서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며 어느덧 손에는 한 봉지의 붕어빵이 들려 있다. 따뜻한 붕어빵 한 봉지 가슴에 안고 걷다 보면 겨울이 풍성해진다. 무작정 차를 몰고 섬진강을 달리며 김채원의 소설 한 부분이 갑자기 생각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찬 바람이 부니 사람의 정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인정이 그리운 날은 떠나보는 것도 좋다. 고독의 깊이를 벗어나기 위해 혼자만의 독백을 통한 대화로 자신을 위로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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