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부재로 잃은 것들이 많다. 페퍼저축은행이 ‘윈나우’를 선택한 대신 하루아침에 귀중한 미래 자산을 잃었다.

페퍼저축은행이 지난 2일 발표한 트레이드로 여자프로배구계가 들썩였다. 페퍼저축은행은 불과 6일전 FA 박정아 보상선수로 한국도로공사에 떠나보냈던 이고은을 트레이드로 재영입했다. 대신 최가은과 2023-2024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한국도로공사에 건넸다.

FA시장에서 과감한 투자에 나선 페퍼저축은행이었으나 상대팀의 전략을 읽지 못하면서 결론적으로 신인 지명권만 날렸다. 국내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악의 행보라는 불명예까지 안았다.

페퍼저축은행은 FA시장에서 FA 박정아를 품고 채선아까지 영입하며 ‘탈꼴찌’의 희망을 부풀렸다. 내부 FA인 이한비와 오지영도 잡았다. 아울러 블로킹 높이를 보강하고자 아시아쿼터로 182㎝의 장신 미들 블로커 필립스를 품에 안았다.

페퍼저축은행의 순조로운 전력보강은 올해를 기점으로 빠르게 성장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페퍼저축은행은 박정아 보호 선수 명단에서 주전 세터 이고은을 제외하는 악수를 뒀다. 도로공사의 세터진은 이미 갖춰져 있어 이고은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고 샐러리캡과 유망주 보호도 고려한 판단이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페퍼저축은행은 상대의 수를 읽지 못했고, 한국도로공사는 망설임없이 이고은을 선택했다. 기존 세터진이 있어도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허를 찔린 페퍼저축은행은 부랴부랴 최가은과 함께 1순위 가능성이 가장 높은 2023-2024시즌 1라운드 신인 지명권을 내주는 트레이드로 이고은을 재영입했다. 자신들의 패착을 인정한 셈이다. 유망주를 보호하려던 목적도 이루지 못한채 결국은 도로공사로 보내고 말았다.

페퍼저축은행은 이고은을 재영입하며 간신히 라인업을 꾸렸으나 이번에는 주전 미들블로커에 큰 구멍이 생긴 채 새 시즌을 준비하게 됐다.

최가은 /한국배구연맹 제공

가장 큰 손실은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이다. 드래프트 최대어로 평가받는 188㎝의 장신 미들블로커 김세빈(한봄고)은 지난해 전국대회 5관왕에 오른 유망주다. 당연히 드래프트 순위에서 앞서는 페퍼행이 유력했으나 손해를 보게 됐다. 게다가 페퍼저축은행은 내년에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권이 없다. GS칼텍스에서 오지영을 영입하면서 2024-2025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내줬기 때문이다. 비난 여론이 거셀 수밖에 없다.

한 배구 팬은 “2년치 지명권을 다 팔아먹었다. 이번 일로 선수 본인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클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다른 팬 역시 “이번 트레이드는 이고은, 최가은 두 선수에게 모두 상처를 준 행보”라며 “배구계 최악의 선택으로 남을 것 같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 아니냐”고 비난했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다른 종목의 프로스포츠 구단 관계자는 “프런트에서 전문적이지 못한 분석과 판단으로 벌어진 일인 것 같다.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페퍼저축은행 관계자는 “우리팀은 현재 타 팀에 비해 신인 선수들이 여전히 많다. 또한 팀이 신인 드래프트 지명 확률을 100% 가지고 있지 않은 상황(35%)에서 더욱 경쟁력 있는 팀으로 가기 위해 고려한 사항”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선수권대회들을 보면서 미들블로커 포지션을 보강할 계획이다”고 덧붙였다.

한편, 손가락 부상으로 재활중인 이고은은 3일 광주로 이동했다. 트레이너와 조율 후 훈련에 합류할 예정이다.

/조혜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