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를 기반으로 음악과 퍼포먼스, 회화 조각 등 모든 영역을 아우르며 이분적 사회구조의 고정관념 틀을 깨부수는 전시가 광양에서 열리고 있다.

오는 6월 4일까지 전남도립미술관 전시장 5에서 열리는 ‘리처드 케네디: 에이시-듀시(Richard Kennedy: Acey-Deucey)’ 전이다.

미국 출신의 리처드 케네디(38)는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예술가다. 음악, 퍼포먼스는 물론 회화, 영상 등 전방위적인 작업을 펼치며 파격적인 예술 형식을 제시하는 작가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리처드 케네디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발레를 공부하며 예술적인 성향을 보였다. 이후에는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위키드, 포세와 같은 공연에도 출연했다. 공연예술을 시작으로 상업공간을 떠나 창작활동으로까지 활동영역을 넓혔다. 최근에는 회화, 조각, 영상의 미술 분야에도 두각을 드러냈다.

그의 작품은 흑·백, 남성·여성, 정신·육체, 스승·제자, 성공·실패, 사회·개인, 영속성·순간성 등 세상의 이분법적 고정관념과 가치 체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동시에 이를 허물어 버린다.

다분히 자전적인 소재에서 작업이 비롯되더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경험으로 승화하며, 추상적 표현이더라도 구체적인 신체의 흔적을 남겨 예술 활동의 다양한 층위를 보여주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영상 ‘기적을 만드는 중(Miracle W.I.P)’을 포함한 20여 점의 회화와 영상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전시는 크게 세 개의 방으로 구분, 방마다 특성에 맞는 색상으로 연출했다.

첫 번째 방인 ‘검은방’ 은 작가의 최신 영상 ‘기적을 만드는 중’을 만나볼 수 있다. 칠흑처럼 어두운 전시장을 배경으로 짙은 숲속을 거니는 것과 같은 느낌으로 연출됐다.

여덟 개의 모니터에서는 리처드 케네디의 퍼포먼스 영상이 상영된다. 영상 속에는 잘라진 크리스마스트리로 만든 숲이 펼쳐진다. 크리스마스 후 트리로 쓰던 버려진 나무를 주워와 가상의 숲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각자의 삶을 기적으로 만드는 과정으로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두 번째 방은 ‘하얀방’ 이다. 학교 교실처럼 꾸며놓은 ‘우유와 쿠키’ 설치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그는 학교를 사회의 축소판으로 봤다. 작품을 통해 학교에서 받았던 훈육과 그 속에서 느꼈던 모멸감을 스스로 치유하고자 퍼포먼스를 행하고 그 결과물을 전시장에 제시했다.

작품을 통해 교사·학생, 착한·나쁜 학생의 역할을 바꿔가며 기존의 가치 체계를 전복하기도 한다. 작품이 배치된 흰 전시장은 ‘계몽(enlightment)’ 그야말로 학생을 ‘빛(light)’으로 인도하려는 교육 현장인 동시에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반짝이는 호기심을 의미한다.

마지막 방 ‘장밋빛 방’은 마치 놀이방처럼 아늑하고 또 조금은 기이하게 보이면서도 다채로운 회화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리처드 케네디는 순식간에 사라지는 공연과는 달리 고정된 형태에 예술을 담을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회화 작업의 깊이를 더했다. 커다란 몸짓으로 붓을 휘두르고, 그 흔적을 캔버스에 남기고, 다시 켜켜이 붓질을 해 이전의 행위를 덮는 그의 회화는 얼핏 추상표현주의처럼 보일지라도 작가의 신체 흔적을 강하게 남겨, 퍼포먼스적 요소를 강조한다.

캔버스 조각을 천처럼 엮은 직조 작업도 선보인다. 자신의 ‘망친’ 작업을 잘라서 재구성한 것으로, 예술에서는 단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예술 형식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패마저도 다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작가는 이번 전시를 위해 찾은 전남에서 얻은 영감으로 만든 신작 음악을 추후 공개할 예정이다. 전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남도립미술관 홈페이지(artmuseum.jeonnam.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나라 기자

리처드 케네디 ‘우유에 쿠키’

리처드 케네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