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한은경의 심리학교실] 맞고 들어온 마음 VS 때리고 들어온 마음
2023년 03월 06일(월) 15:55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글로리’ 메인 포스터 및 예고편 캡처
[한은경의 심리학교실] 맞고 들어온 마음 VS 때리고 들어온 마음
-집단따돌림의 심리학-

글 한은경 심리학박사

청소년기에 학교 친구들에게 집단 따돌림으로 괴롭힘을 당한 주인공은 학교를 중도에 포기한 채로 가해 학생들을 위한 복수를 위해 처절한 시간을 보낸다. 드디어 복수의 서막을 열기 시작한 날, 오래전 학업을 포기한 그때, 그리고 괴롭힘을 당하던 체육관에서 멈춰진 주인공의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오버더탑(OTT) 플랫폼을 통해 공개된 드라마 ‘더 글로리’의 김은숙 작가는 어느 날 자녀가 내던진 질문으로 인해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한다. “내가 학교에서 맞고 들어오는 게 좋아? 아니면 때리고 들어오는 게 좋아?”

아주 오래전에도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한 채로 집단에서 소외되는 아이들은 있었고, 이러한 왕따를 주제로 하는 영상물도 많았지만 최근 이 드라마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OTT 플랫폼의 주 고객들은 MZ세대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들은 1980년대~2010년대 출생하여 인터넷과 휴대용 디지털 기술에 접근하여 성장한 최초의 사회 세대들이다. 이들은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로 인하여 학업 스트레스와 대출 학자금으로 인해 더 많은 고통을 받았으며, 부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n포 현상(연애, 결혼, 출산, 집 등)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MZ세대가 경험한 학창 시절, 그리고 집단 내에서의 따돌림 현상은 그 이전 세대들과 달랐을까? 만약 다르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왕따로도 언급되는 집단따돌림(bullying)은 다수의 사람이 한 명(혹은 소수의 사람)을 대상으로 의도와 적극성을 지닌 채로 지속적이고도 반복적으로 관계에서 소외시키거나 괴롭힘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집단따돌림은 초기 아동기 혹은 청소년 시기에 교내 또는 또래 집단 사이에 발생할 경우, 상당한 부작용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개는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채 학업이나 진로 선택에 어려움을 경험하며, 나아가 성격 형성 과정에서 심각한 문제를 경험한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떨어뜨리면서 우울과 불안, 그리고 분노와 적대감 등의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게 되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지게도 한다.

실제로 최근 들어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상담센터를 찾는 20~30대의 비율이 증가하고 있는데, 이들이 호소하는 문제들(우울감, 불면, 불안감, 대인 갈등, 공황 및 강박 증상)의 이면에는 아동기 및 청소년기에 경험한 집단따돌림으로 인한 상처 경험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저명한 정신의학자이자 심리치료자인 어빈 얄롬(Irvin Yalom)은 인간이 고통받는 원인으로,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억압받거나 부모와 같은 중요한 인물이 내재화되어 영향을 미치는 경우, 그리고 잊혀진 외상적 경험의 영향을 꼽았다. 집단 따돌림은 일종의 외상적 사건과도 같아서 그러한 사건에 대한 사실적인 기억은 고등의 뇌(전두엽)에 저장되어 있지만 따돌림으로 인한 고통스러운 감정은 원시적인 뇌(변연계)에 저장되어 잊혀진 채로, 그리고 의식하지 못한 채로 한 개인의 삶에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즉, 집단따돌림은 한 개인의 삶에 지속적인 고통을 초래하는 명백한 선행요인이 된다.

심리치료적 접근방식의 한 가지인 심리도식치료(schema therapy)에서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틀의 부적응적 양상을 자각하고, 이러한 틀이 자신의 현재 삶에 미치는 패턴을 파악함으로써, 변화를 시도하게끔 한다. 여기서 말하는 틀은 주로 초기 아동기 때의 부모와의 관계나 학창 시절의 따돌림 같은 외상적 사건으로 인해 만들어진 부적응적인 도식(예:나는 버림받았어, 아무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아, 사람들은 나를 싫어해, 나는 사랑받지 못해)으로, 대개는 이러한 도식을 자각하지 못한 채로 주어진 환경에 대처하기 위한 반응을 결정하게 된다. 이러한 대처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먼저 그러한 도식이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굴복 반응, 도식이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는 회피 반응, 그리고 도식을 넘어서기 위해 반격을 가하는 과잉보상 반응이 있다.

집단따돌림을 당한 이들이 보이는 다양한 신경증적 증상들(우울, 불안, 분노 등)은 이러한 대처 반응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주변으로부터 소외되어 인정받지 못한 존재라는 도식을 사실로 받아들인 채로 힘겹게 살아갈 수 있으며, 도식의 존재를 인식하지 않기 위해 외부로 시선을 돌린 채 회피하며 살아갈 수도 있다. 또한 도식이 거짓임을 증명하기 위해 도식에 반격을 들고, 저항할 수도 있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단따돌림을 방관한 이들(회피)이나 따돌림을 가한 이들(과잉보상) 또한 자신의 부적응적인 도식들로 인한 대처 반응으로 그리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집단따돌림은 관련된 이들 모두가 다 아플 수 있으며, 또한 여전히 많은 것이 그들에게 가능하다는 생각, 그러한 시각은 외상적 사건으로 인한 고통과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를 앞으로 더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돌이켜서 학창 시절의 당신은 모습을 떠올려보자. 때리는 아이였는가? 때리는 아이를 말리는 아이였는가? 맞는 아이였는가? 맞는 아이를 돌보는 아이였는가? 아니면 방관하는 아이였는가? 그리고 그 당시 당신은 어떠한 틀로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는가?

. 심리학박사 임상심리 전문가 . 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광주·전남센터장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