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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동하는 공간’ 남도로의 초대

손병현 소설집 '순천 아랫장 주막집 거시기들'
생명력 넘치는 삶의 활기
포용력 깃든 남도인 조명

2023년 02월 14일(화) 18:00
‘오월문학’작업을 꾸준하게 이어 오던 손병현 작가가 소설집 ‘순천 아랫장 주막집 거시기들’을 펴냈다. ‘갑숙 씨는 괴로워’, ‘길 위의 남녀’, ‘트럭’, ‘순천 아랫장 주막집 거시기들’, ‘포커페이스’, ‘목어’, ‘一國의 詩人(일국의 시인)’ 등 7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이번 소설집에서 작가가 주목하고 있는 것은 숭고한 이름으로 남아 있는 전시장이나 기념비적인 공간의 남도가 아니다. 남도라 이름 지어진 경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과 언어에서 보이는 생기와 활력, 그리고 유대와 환대의 정동들이다. 남도인의 삶에는 그 어떤 증명도 요구하지 않는 무조건적 환대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포용력이 깃들어 있다.

‘순천 아랫장 주막집 거시기들’에서‘거시기’들이 여순사건을 이야기할 때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좌익학생을 사형 직전에 살려내셔서 양자로 삼아 키우셨다”(102쪽)는 손양원 목사의 일화가 언급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원수에 대한 복수 대신 그들을 통해 죽은 자식들의 삶을 대신하게 한 목사의 모습은 절대적 환대에 가깝다. 그리고 이는 봉만과 같이 ‘못 보던 낯짝’을 ‘문목’의 후배라는 설명만으로 포용하고 안아 준 순천 장터의 지워진 문지방, ‘거시기들’의 열린 마음과 공명한다.

작가는 그동안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동문다리 브라더스’와 소설집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를 펴낸 바 있다. 이번 소설집은 손병현 작가의 새로운 변신이라면 변신이라고 할 만하다. 타자를 환대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작가는 ‘가난’이라는 장치를 소설에 부착한다. 일찍이 그가 타워팰리스 고시원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내 곁에 유령’과 젊은이들이 곤혹스럽게 직면한 현실들을 그려 낸 소설집 ‘해 뜨는 풍경’에서 익히 사용했던 장치이며, 독자에게도 결코 낯선 단어가 아니다. 가난은 익히 많은 현대 작가들의 제재였다. 전통문화체험관의 구박 덩어리 황 국장(갑숙 씨는 괴로워)이나 서울살이의 매정함과 건조한 인간관계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낙오자, 패배자로 표현되는 인간의 군상들(포커페이스) 또한 낯설지 않다. 환대 이전에는 당연히 쓰라린 패배와 낙오의 경험이 공유되기 때문이다. 적자생존이라 할 수 있는 도시 정글에서 살아남았다는 건 승리가 아니라 다음의 도전을 끝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김영삼 문학평론가는 작품해설을 통해 ‘손병현 작가의 새로운 변신’이라 했다.

김 평론가는 “이 소설집이 유쾌하면서도 힘있게 읽히는 이유는 패배자 또는 낙오자들의 집합적인 열패감들을 단번에 역전시켜버리는 새로운 장소성과 언어를 작가가 찾아냈기 때문”이라며 “작가가 말하는 남도는 서울 중심의 공화국에서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갔던 이들이 뒤에 남겨 둔 그 장소가 버려지고 잊힌 장소가 아니라, 들여다보면 그곳이 바로 생명력이 넘치는 풍요와 삶의 활기가 돋는 환대의 장소”라고 밝혔다. 이어 “세계의 패배자들에게 남도로 오라고 유혹하는 이 소설집을 통해 남도는 더 이상 ‘기념비적 장소’로 희석화되지 않고 ‘생동하는 삶의 공간’으로 거듭난다. 독자는 한 뛰어난 재담꾼의 탄생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고 전했다.

/최진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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