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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뉴DJ는 누구인가
2023년 01월 01일(일) 15:31
<열린세상> 뉴DJ는 누구인가
정진탄 뉴미디어본부장 겸 논설위원


광주·전남지역 안팎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당대로 소환하는 사례가 무척 잦아지고 있다. DJ를 배우려는 토론회가 열리고, SNS에서 관련 논의와 그를 기리는 내용의 포스트가 심심찮게 올라온다. 더군다나 이곳 전라도, 광주에서 그런다면 모를까, 아예 중앙 정치권과 언론 등에서도 그에 대한 향수가 자극되는 현상이 목격된다. 보수신문에서 DJ 때의 야당 정신과 정치활동을 언급하며 그때는 어떤 의회주의적인,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소통이 됐으나 지금은 아니라는 지적을 빼놓지 않는다.

DJ에 대한 향수는 그가 떠난 지 10여년이 지나 자연스럽게 추모하는 성격에서 나오는 것만이 아니란 예기다. 지금 DJ를 불러내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작금의 여야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고 뭔가 돌파구를 뚫어야 하는데 그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아 DJ를 향한 마음이 간절한 것으로 사료된다. 특히 현재의 야당, 민주당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서 비롯된 바 클 것이란 생각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쟁의 카운터파트가 되는 이재명 대표가 여러 측면에서 국민적, 광주시민적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현재 ‘김대중’ 보고 싶은 이유

왜 그런지는 윤석열 정부에 대한 투쟁의 장에서 이 대표 신뢰도가 높지 않음을 전제해야 할 것이다. 대장동 개발 등과 관련한 의혹이 있고, 이 대표의 개인 캐릭터에 대한 시선도 따뜻하지 못한데서 연유할 수 있다. 현 정부에 대한 올곧은 지적과 비판, 참신한 대안을 제공해줘야 하는데 충분치 못하다는 국민적, 광주시민적 정서가 작용하는 것 아닌가 한다.

이러한 때에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강조한 DJ의 철학, 그의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 및 삶의 여정이 갈수록 현실의 팍팍함을 달래는데 심리적 약리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정치인들은 이런 사회심리적 현상을 잘 짚어 유권자의 마음을 어떻게 달래주고 어떻게 비전을 제시해 줄 것인지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김대중이란 이름은 DJ의 고유명사가 아니어서 동명이인이 많이 있으며 그중에서도 알 만한 교육단체장 등 직업인이 있어서 요즘 같아선 꽤나 그의 이름값이 상승작용을 할 것 같다. 천주교 신자가 세례명을 받아 성인을 기리는 의식처럼 같은 이름으로 DJ의 높은 뜻을 추앙한다면 덩달아 인기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어쨌거나 DJ는 우리 곁을 떠났고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열정 레거시는 계승되고 있다. 앞으로 뉴DJ가 우리 앞에 떡하니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다시 등장하는 DJ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것이다. 생각해 볼 점은 과연 지역과 국가를 리드해갈 도량 큰 정치인, 새로운 DJ는 필요충분조건으로 반드시 미래 한국전체를 짊어지고 이끌 지도자이어야 하는가이다. 실제 DJ와 버금가는 역량과 혜안을 가진 분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으므로 이에 대한 희망을 미리 꺾을 필요는 없다. 어려운 시대에 현자를 찾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필자는 우리에게 오는 뉴DJ는 지극히 현대적인 모습이어야 한다고 본다. 향수를 느끼며 소환하는 신안 태생의 DJ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삶을 마감했다. 이제는 군부에 항거하던, 민주화 투쟁의 대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영웅, 아니 영웅들이어야 한다고 본다. 단수형이 아니고 복수형이어야 한다.

우리는 집단적 추앙 대상을 발원하는 심리가 바람직하고 적절한 가에 대해 반추해볼 필요가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신안 태생 같은 분의 뉴DJ가 설령 나온다 해도 그가 사라지면 우리는 또 ‘뉴DJ 어게인’을 목청 높여 부르지 않겠는가 하는 근본적 문제 제기다. 한 시대를 이끌어간 DJ를 기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이제는 삶의 환경이 현격하게 바뀌었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첨단과학기술 시대엔 한 명의 DJ보다는 여러 명의 DJ가 나와야 한다고 본다. 지긋지긋한 국가주의적 거대담론을 탈피해 자신의 영역에서, 개인 삶의 현장에서 아름다움을 알고 이를 공유해 가는 미래가 올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누구나 ‘리틀DJ’ 되는 시대

다시 말하면 빅DJ가 아니라 각자가 리틀DJ가 되어서, 그러니까 민주시민의 삶으로서, 자기 전문분야에서 탁월함을 드러내는 것이 진정한 뉴DJ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다.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건대 빅DJ, 한 시대를 주름 잡은 ‘김대중’이란 인물을 갈구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고 절실할 것이라고 할 수 있을지라도 결국 리틀DJ를 구현해 가는 것이 미래 뉴DJ의 바람직한 상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나 뉴DJ가 될 수 있으며 그렇게 가는 것이 미래지향적이리라. 어떤 메시아적 삶을 구하는 환경보다는 개개인이 깨어 있어 현재의 삶, 당대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 보다 건강한 경로가 아닐까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큰 무엇을 상정하는 분에게는 매우 밍밍하고 싱거운 소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무엇인가에 의존적인 상황을 이어가는 삶을 자꾸 반복·재생하지 않고 스스로 주체가 돼, 삶의 환경 주인공이 돼 창조적인 삶을 영위하는 게 궁극적인 인간상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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