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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광장>다시 생각하는 광주학생독립운동
2022년 11월 02일(수) 15:35
<전매광장>다시 생각하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곽규호 광주문화재단 예술상상본부장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입니다. 학생독립운동은 식민 시절인 1929년 11월에 시작하여 1930년 3월까지 전 조선에서 들불처럼 피어올랐던 우리나라의 반일 민족운동을 말합니다. 11월 3일이 기념일로 지정된 것은 이날 한일 학생 간의 싸움이 기장 치열하기도 했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싸움이 대대적이고 본격적인 반일 시위로 확대됐기 때문입니다. 그냥 확대된 것이 아니라 광주의 모든 조선인 학생들과 시민들이 함께했고, 나아가 목포 여수 강진 함평 나주 전주 등 전남북 지역의 학생들이 시간차를 두고 지역에서 지지 시위를 벌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서울 경기 경상도 함경도 평안도로까지 동맹휴학, 시위가 들불처럼 번져나갔고, 해외에 나가 있던 동포들도 지지 대회, 후원금 모금운동을 펼쳤다는 연구결과까지 있으니 얼마나 우리 민족에게 큰 의미를 남긴 의거입니까.

그래서 1919년의 3·1운동, 1926년의 6·10만세운동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 3대 민족운동으로 꼽힙니다. 어떤 학자는 3·1운동에 버금가는 양대 민족운동으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랑스러워해야 할, 자랑해야 할 역사적 가치에 비해 웬일인지 국가적 관심이 미미한 것은 큰 불만입니다.

5·18과 겹치는 장면 다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여러 장면들은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의 몇가지 장면, 인물, 공간과 겹치는 점이 많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이 발발한 곳은 광주고보, 광주역(지금의 대인동), 금남로와 광주공원(광주신사) 등이 있지만 청년·학생운동의 산실이었던 흥학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흥학관은 1921년 당시 광주의 부호인 최명구 선생이 지어 지역게 기부한 곳이랍니다. 이곳에서 광주 청년회, 노동공제회 등의 청년사회활동이 이뤄지던 공간이었습니다. 해방 이후 군사정권 하에서의 반독재운동 기독청년운동의 중심이었던 광주YMCA와 5·18 당시 투사회보가 제작되고 각종 홍보 현수막 등이 제작되던 광주YWCA가 겹쳐집니다. 흥학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YWCA도 헐리고 이사했지요.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야기 하려면 성진회와 독서회 등의 조직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성진회는 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나기 3년 전인 1926년 광주고보 5학년 왕재일 장재성 등이 주축이 되어 결성됐으며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끈 중추로 평가됩니다. 이를 이어 발족됐던 1929년의 광주고보독서회, 1928년 광주여고보생들의 소녀회도 기억돼야 할 이름입니다.

이는 80년 5월의,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박관현 열사, 들불야학을 연상시킵니다. 투쟁 소식지로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내던 투사회보를 만들었고 끝까지 도청을 지키던 들불열사들의 모습은 일제의 탄압 속에서 민족 자존과 독립을 외치다 투옥당하고 고문을 겪었던 광주고보 선배들의 고난의 길을 따라간 듯합니다.

공간·사람, 정신 기억하기

역사학자들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성격을 항일독립운동으로 규정합니다. 광주에 국한되어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독립운동’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광주의 학자들은 그 정신이 1960년 4·19 혁명으로,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과 1987년 6월 항쟁으로 계승되었다고 평합니다. 하지만 평가에 비해 오늘날의 학생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 기성세대 사이에도 잊혀지고 있는 현실은 참 안타깝습니다. 깨어 있는 ‘학생’을 두려워한 정권들이 국가기념일 제정과 폐지를 반복하고 의미와 성격을 축소 왜곡해온 결과로 해석됩니다.

그래서 더 불온한 시대 부당한 지배에 맞서 목숨을 내던지셨던 ‘광주의 선배’들이 그립습니다. ‘왕년에’ ‘라떼’를 되뇌이는 어른이 아니라 행동하고 앞장서는 멋진 선배들. 아무리 현실이 어두워도 반드시 올 새벽을 믿고 희생도 마다하지 않던 선배들. 그 정신을 잇고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의 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던 장소와 공간들을 다시 찾아다니고 널리 알려야 하겠습니다. 특히 흥학관은 광주의 근대화는 물론 근대 반식민주의 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공간이고 학생독립운동의 꿈도 이 건물에서 키워졌다고 합니다. 원래의 장소를 찾아 꼭 복원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더불어 장재성 빵집, 김기권 문방구점도 다시 만드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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