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광주 ‘영어 상용화’ 논쟁은 언제
정진탄 뉴미디어본부장 겸 논설위원


제2의 대도시 부산이 시끄럽다고 한다. 2030년 부산엑스포를 유치하려는 적극적인 움직임과 때를 같이해 영어 상용화 논란이 일고 있다. 부산시는 애초 영어 공용화란 용어를 사용하다가 반대 세력의 목청이 높아지자 공용화 대신 상용화란 말로 대체했으나, 그게 그것이 아니냐는 저항의 물결에 부딪혔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부산엑스포 같은 국제 행사에 대비해 영어 대중화를 밀어붙이려다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실제 부산시민의 의견을 물어보니 반대가 많긴 했으나 유보적인 입장도 상당수란 소식이다.

부산시가 이처럼 영어를 대접하려는 데는 영어 자체가 중요한 것도 있겠지만 부산지역이 갈수록 국제화의 풍모를 보이고 있음에도 시민의 영어 수준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문제의식이 깔려있다. 그렇더라도 영어 필요성을 절감하는 관계기관이나 업계에서 영어 전문가를 별도로 키울 것이지 왜 애꿎은 시민들까지 피곤하게 하려는 것이냐, 그리고 그렇게 해서 한국어를 제대로 보존·유지하기가 되겠느냐 하는 반발의 목소리가 높다.

부산엑스포 국제 행사 대비

어쨌든 영어는 상용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했으면 하는 마음은 상용화 반대 목소리를 내는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한국어도 잘 하고 영어도 잘 하면 나쁠 것 없지 않은가. 최근 광주지역 한 지자체장이 영어를 능통하게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필자에게 물어온 적 있다. 이 지자체장은 꽤나 영어학습을 해왔는데 정치적 행보에 신경쓰다 보니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졌고, 이제 다시 학습을 하려보다 보니 막막한 기분이라고 하면서 비법을 물었다.

필자는 영어 달인이 아니지만 과거 뉴스통신사에서 10여 년 국제담당 기자를 해온 터라 영어 향상법에 관한 질문을 곧잘 받는다. 나름 터득한 방법도 있고 해서 알려줬다. 그것은 영어사전을 절대 찾지 말고 영어소설 읽기였다. 분명히 말하지만 읽는 도중 모르는 단어나 표현이 나오더라도 절대 영어사전을 뒤적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런 방법은 필자 고유의 것이 아니라 안정효 선생의 학습법이라고 전했다. 안 선생은 우리나라 번역의 황제로, 실제 자신의 소설을 한국어로 쓰고 영어로 옮긴 분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하얀 전쟁’(영어명 White Badge)의 저자이다. 영어소설을 펴내고 뉴욕타임스의 이례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이후 작품과 번역 활동을 다양하게 해왔다. 그분도 대학 재학 당시 영어 능력이 제자리를 맴돌자 외국인 대학교수에게 어떻게 하면 영어 능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외국인 교수가 알려준 학습법이 영어사전을 찾지 말고 영어소설을 읽기였다고 했다. 그 뒤 안 선생은 대학도서관에 있던 영어소설을 모조리 읽었다는 전설이 있다.

필자도 안 선생을 오래 전 직접 만나 이런 영어학습법을 전해 들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일취월장의 영어 능력 향상 체험을 했으며, 이런 내용을 간증 형태로 책을 발간한 바 있다. 이런 영향으로 영어학습에 대한 조언을 얻으려는 분이 종종 있는데, 최근에는 지자체장이 비책을 달라는 것이었다. 이 지자체장은 곧 지자체 교류·협력 차 외국을 방문할 예정인데 통역 없이 본인이 직접 대화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통역이란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고 외국인과 직접 소통하면 공감대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으며 개인적인 친분이 돈독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코로나19가 퇴장하는 시기를 맞아 해외로 나가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고, 지자체장들도 그동안 중단된 외국 자매도시와의 교류·협력을 비롯해 해외시장 개척, 관광객 유치 등을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이러한 때에 필요한 것이 대외 접근 능력일 것이며 그 핵심 요소라면 해당 언어 또는 국제 통용어인 영어가 될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아직 개발 영역 많은 호남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상정해볼 필요가 있다. 부산시장이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외국인들이 지자체에 몰려와 행사장은 물론, 거리 곳곳 각종 편의시설를 둘러보며 영어를 자유스럽게 구사할 수 있게 주민들의 영어 능력이 뒤따라준다면 뿌듯한 모습이 연출될 수 있다. 영어 상용화를 대놓고 무조건 거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아직은 여론이 분분한 데, 여하튼 기본적으로 부산시가 보유하고 있는 각종 인프라와 국제 인지도, 큼직한 대외 행사를 치를 수 있는 물적 토대와 스킬을 갖고 있다는 자신감이 드러난다. 한마디로 부산이 이미 국제도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제2의 대도시로서, 항구 도시로서 국제적 역할과 기능을 할 수 있고 그 흐름을 원활하게 할 영어에 대한 욕심을 부리는 게 잘못된 것만은 아니다. 이에 비해 우리 지역 광주와 전남, 전북은 영어 공용화 또는 상용화를 논의할 만큼 여건이 안 돼 있다는 것은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외국인이 많이 와야 할 굵직한 행사, 이를 테면 꺼리가 많지 않다 보니 영어 또는 제2외국어 대한 필요성이 절실하지 않다. 호남지역 전반적으로 개발·발전해가야 할 부분이 많다는 방증으로, 부산시의 영어 상용화 논쟁을 뭐라고 할 수 없는 고약한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