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으로부터 매미 무늬가 있는 수석을 선물받았다. 금방이라도 날갯짓을 할 것만 같았다. 저 매미 무늬는 수천 년 동안 돌 속으로 들어간 비바람과 햇빛과 움직이는 지층의 힘으로 목숨을 이어왔을 것이다. 여름과 겨울을 뒤집어쓰고 천적이 없는 돌 속에서 짱짱한 날개와 푸른 목소리를 완벽하게 꿈꾸었을 것이다.

과거 한때 수석에 미쳐 산 적이 있었다. 수석은 수천 년의 세월을 요약한 시간의 압축 파일 같아서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때부터 수석은 나만의 종교가 되었다. 쉬는 날이면 신의 발자국 소리를 매만지며 신전이 있을 법한 곳을 찾아다녔다.

한 번은 지인들과 함께 지리산 천왕봉으로 산행을 갔다. 산 정상 가까이 한 등성이에서 눈이 휭 돌아갈 정도로 멋진 검은색 수석 하나를 발견했다. 모양이 코뿔소처럼 생겼고 몸통이 아주 튼실했다. 무언가에 쫓기던 코뿔소가 숨을 곳을 찾다가 돌 속으로 뛰어든 듯했다. 완벽한 돌이 되어 자신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았다. 30㎏ 가량 된 코뿔소 모양의 수석에 마음을 빼앗긴 나는, 배낭 안에 수석교(敎) 전도하듯 담았다. 입교(入敎)를 결심한 배낭 덕분에 겨우 지퍼를 닫을 수 있었다.

무거운 수석을 등에 지고 내려오는 비탈길은 매우 위험했다. 수석신(神)의 말씀이 묵직하고 어려워서였을까, 엉덩방아를 쪘고 발목까지 삐끗했다. 게다가 산중턱에서 개종을 거부한 배낭의 반항으로 한쪽 끈이 떨어졌다. 그때부터 두 손으로 수석을 안고 내려와야 했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낮의 짐승처럼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웠다. 삐끗거린 발목을 노리는 오후의 소란함을 밀어내면서 점자책 같은 산길을 더듬거리며 걸었다. 깊은 웅덩이의 바람 속으로 발목이 푹푹 빠지면 빠진 발목을 빼내어 다시 걸었다. 이교도의 핍박처럼 지인들은 수석을 당장 버리라고 했다. 하산길은 고난의 십자가인 양 신앙심의 시험대였다. 절실하게 몸붓으로 써 내려간 경전의 한 글자 한 글자, 그 걸음을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나의 걸음은 푸른 숲 가득한 강대상 앞에서 무릎 후들거리는 기도와 같았다. 산 아래서 대기하고 있던 버스까지 겨우겨우 수석을 안고 왔다.

하지만 무사히 집에 돌아온 이후, 일주일가량 앓아누웠다. 끈질긴 생을 잘라야 한다며 숨통을 끊는 표정들이 헛소리로 요동쳤다. 입술에 달라붙은 생각들이 끙끙 앓는 소리까지 내어 거의 사경을 헤맸다. 급정거한 시간이 신열 앓는 악몽 속에서 나는 겨우 내일의 일정표를 구걸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 후로도 한동안 입과 눈을 버리고 신의 길을 선택한 수석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타 종교에 입문하듯 조개 껍데기로 눈을 돌렸다. 한때 독실하게 믿었던 수석교(敎)를 멀리하고, 조개 껍데기를 모으기 위해 새 신자처럼 또 열심히 돌아다녔다.

집밖에서 들어온 매미 소리가 매미 무늬 수석에 내려앉았다. 돌에 갇힌 어떤 소리가 시간의 국경을 뛰어넘고 있었다. 날뛰는 자동차 소리를 제압하고 천기를 누설하듯 방안 가득 매미 소리 넘쳐흘렀다. 돌아온 탕자를 환영한다는 듯 맑고 환한 소리. 여름을 통째로 걸어 잠근 매미 소리가 수석의 여름 성경학교로 푸르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