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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광장> 지역과 책 서로를 보듬다
2022년 10월 05일(수) 15:57
<전매광장> 지역과 책 서로를 보듬다
곽규호 광주문화재단 예술상상본부장


‘소박하다 /허둥지둥 먹고 살기 바빠서 /꿈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지 /
어쨌거나 /그냥 밥만 안 굶고 살면 /그마저도 고맙고 다행이라며 /살았다지 /
서러운 가난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으려고 /살았다지 /그저 자식이 꿈이고 /희망이었다지’. (이은자 시 ‘광부 아내의 꿈’ 중에서)

지난 연휴 시집 한 권을 사서 읽었습니다. 충남에서 활동하는 시인 이은자님의 ‘사라지는 것들에 대해서’ (2021년 ‘모두의 책’ 간)입니다. 탄광촌 사람들, 특히 그곳에 살던 탄부의 아내, 여자 광부들의 삶이 구체적이면서 감성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우리 세대의 가난했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을 힘겹게 이겨내고 우리를 키워내신 어머니들 모습이 겹쳐집니다.

협동조합 형태 대전 출판사

시집을 통해 몰랐던 여러 사실을 알게 됩니다. 대천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충남 보령에 탄광이 있었고, 그곳에 ‘석탄박물관’이 세워져 있다는 건 시집을 읽고서야 알았습니다. 일곱 권 시집을 낸 이은자 시인이 고향 보령의 탄광을 소재로 준비한 이 시집을 펴낸 곳이 ‘모두의 책’이라는 대전의 한 출판사임을 알고 또 놀랍니다.

‘모두의 책’은 협동조합 형태로 2015년 인가를 받은 대전의 출판사입니다. 회사의 두 가지 신념이 눈길을 끕니다. ‘기억하고 기록하고 기여하라’, 다른 하나는 ‘중부권 최고의 소셜리싱 출판사’라고 합니다. 소셜리싱은 ‘Social’과 ‘publishing’를 합한 말입니다. 사회적 출판, 사회적으로 유익한 콘텐츠, 공공의 이익을 위해 꼭 만들어야 할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되겠다는 뜻입니다. 이익과는 거리가 멀겠지요. 협동조합 형태로 회사를 만들어 단행본 잡지 신문 자서전 등 여러 형태의 소셜리싱을 합니다. 마을기록·단체기록 등의 기록사업은 “기억과 기록”이라는 신념을 실천하는 방안입니다. 서울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대전 충청 지역을 지키는 사람들의 역사와 문화가 이들의 기억과 기록, 글쓰기와 출판으로 단단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시집을 산 곳은 광주 푸른길이었습니다. 지난 9월 30일부터 10월 2일까지 사흘간 광주 동구 동명동 산수동의 푸른길을 무대로 2022광주동구한국지역도서전이 열렸습니다. ‘지역과 책 서로를 보듬다’라는 주제로 개최도시 특별전, 천인독자상 수상작 전시, 잡지전, 심포지엄, 북마켓과 북아트마켓, 영화속 책 이야기 등 동명동 산수동 푸른길을 책으로 덮었습니다. 사라질 뻔한 폐선부지를 시민의 힘으로 지켜내 공원으로 만들어진 그 푸른길은 광주가 자랑할만한 명소임이야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만 그 길에서 그간 벌어진 많은 좋은 일 가운데 이번 한국지역도서전은 참 아름다운 일이 아니었을까요.

한국지역도서전은 2017년 제주에서 1회 행사 이후 매년 지역을 돌며 열린 지역 출판인들의 잔치입니다. 어쩌면 잔치라기보다는 지역 출판인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입니다. 출판 사업도 중앙 집중에 밀리고 밀려 지역에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영역 중 하나입니다. 서울이나 수도권 사람들이 지역 이야기에 무슨 관심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전라도 이야기를 전라도 사람들이 기록하지 않으면 먼 훗날 누가 우리를 기억해 줄까요.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전라도의 선비정신, 절의정신, 동학정신 같은 거대 담론 뿐 아니라 장터 섬, 갯마을, 나루터에 구비구비 숨은 우리의 지리와 생활 속 이야기를 누가 전해줄까요.

공익 위한 ‘소셜리싱’ 기대

2002광주동구한국지역도서전은 적절한 시기에 광주에서 열렸습니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지역 출판과 지역의 독립서점, 독립출판 현장에 힘을 실어주었고, 동구에 인쇄의 거리를 대상으로 한 도시재생 뉴딜사업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사 주최자인 광주 동구는 두 가지 주제전을 준비해 알찬 의미를 전했습니다. ‘책에 담은 5.18민주화운동’과 ‘동구의 시간을 걷다’가 그것입니다. 특히 ‘동구의 시간을 걷다’ 전시를 통해 광주 동구가 참 좋은 기록 작업, 책 만드는 일과 시민독서운동을 열심히 해왔음을 보여줬습니다.

때마침 도서전이 가을의 한 가운데인 10월 열렸습니다. 낡고 상투적인 말 같지만 다시 책을 찾아 서점으로 가봐야겠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전라도에 대한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기록할 수 있는 이는 기록을 준비하고, 찍을 수 있는 이는 카메라를 들고 나갈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광주에서도 더 많은 출판사들이 우리들의 소셜리싱으로 바빠지기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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