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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뮤직줌 <61> 슈베르트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사랑을 이루지 못한 슬픈 청년 이야기
자신을 방랑자의 모습으로 투영
젊은이·자유로움·신선함 떠올라
깊은 안목과 음악적 영감 묻어나

2022년 09월 29일(목) 17:20
프랑수와 부세의 물방앗간 풍경
삶에 있어서 방향성을 갖고 사는 것은 중요하다. 목적이나 계획이 없이 성과를 일구기는 그래서 더 어려운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상에서 목표나 계획 없이 우연히 발견되는 무엇인가에 우리들의 감정이 더 몰입되고, 매료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젊은 슈베르트는 자신을 방랑자에 비유하며 아름다운 시를 보면 멜로디를 붙여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자신의 음악을 공유하는 천성이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1823년 5월 어느 날 슈베르트는 자기 친구인 란트하르팅거(Benedikt Randhartinger, 1802~1893)를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를 만나진 못하고, 대신 그의 책상에서 우연히 한 권의 시집을 읽게 됐다. 그 책은 뭘러(Wilhelm Muller, 1794~1827)의 ‘발트호른 연주자의 유고에 의한 시집’으로 슈베르트는 이 시집에 심취돼 그의 첫 번째 연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Die schone Mullerin)’ D.795(op.25)를 작곡했다.

뭘러는 베를린 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고, 김나지움의 교사와 인기 있는 작가로 활동했다. ‘발트호른 연주자의 유고에 의한 시집’은 그의 대표적인 시집으로 1821년 출판됐다. 이 시집은 뮐러의 자전적인 내용으로 그가 예술 사교모임에서 만난 여성 루이제 헨젤(Luise hensel)을 사랑했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자 크게 낙담한 나머지 홀로 여행을 떠난다는 그의 경험을 담은 연작 시집이었다.

비엔나에 있는 슈베르트 기념비
슈베르트는 위 시집에서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포함해 물방앗간 아가씨를 그린 6번, 질투의 감정을 표현한 16번, 작은 꽃의 그리움을 노래한 20번을 빼고, 모두 스무 곡에 선율을 더해 첫 곡 방랑(Das Wandern)을 시작으로 어디로?(Wohin?), 멈춰!(Halt!), 시냇물에 대한 감사(Danksagung an den Bach), 일을 마치고(Am Feierbend), 호기심 많은 청년(Der Neugierige), 조바심(Ungeduld), 아침 인사(Morgengruss), 물방앗간의 꽃(Des Mullers Blumen) 눈물의 비(Tranenregen), 나의 것(Mein!), 휴식(Pause), 라우테의 초록색 리본으로(Mit dem grunen Lautenbande), 사냥꾼(Der Jager), 질투와 자존심(Eifersucht und Stolz), 사랑스런 색깔(Die liebe Farbe), 싫어하는 색깔(Die bose Farbe), 시든 꽃(Trockne Blumen), 물방앗간 청년과 시냇물(Der Muller und der Bach), 시냇물의 자장가(Des Baches Wiegenlied) 연가곡 형식으로 완성했다. 이렇게 나열된 노래의 제목만 봐도 이 작품의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가스파르 프리드리히의 안개 바다위의 방랑자(1818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숲속의 시냇물을 따라 방랑하는 청년이 ‘물방앗간’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정착하게 되는 내용이다. 그 방앗간 주인은 어여쁜 딸이 있고, 방랑자는 이내 곧 그녀를 짝사랑하게 됐다. 그리고 그는 방앗간 주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일했지만, 소녀의 마음을 사지는 못했다. 결국 물방앗간의 아가씨는 방랑하는 청년이 아닌 사냥꾼에게 마음을 주고 만다. 괴로워하는 청년은 사랑을 이루지 못한 채 시냇물에 몸을 던지며 최후를 맞는 슬픈 사랑 이야기다.

‘젊은이’와 ‘물’이 갖는 공통점은 ‘자유로움’, ‘신선함’, ‘유연함’, ‘무언가에 영향받기 쉬움’, ‘에너지’ 등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뮐러와 슈베르트는 젊은 방랑자에게 자신을 투영하고, 그래서 더 청년의 이야기에 몰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표현하고자 한 사랑과 낭만은 우연히 접하게 된 그들의 감정에서 비롯돼 가슴 시린 사랑으로 승화해 냈다. 당시 현실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이야기를 시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그들의 감성이 놀라울 뿐이다. 아울러 슈베르트의 깊은 안목과 ‘음악적 영감’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친구의 책상에서 발견한 이 시집에서 20곡의 연주 시간만 1시간이 넘는 대곡을 잠시도 지루하지 않게 아름다운 선율로 만들어내는 그의 음악적 천재성에 매료당한다.

계획된 삶과 목표지향적인 우리들의 일상과 다르게 우연히 발견된 작품 속에서 변화무쌍한 선율로 만들어낸 슈베르트의 노래에 잠시 귀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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