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인가 가을이었지 싶다. 깊은 산골짜기에 세상과의 인연을 접고 숨어 있는 한 부부를 찾아간 적이 있다. 부부는 자식을 버린 죄인이 살아 무엇하겠냐며 빛조차 차단된 방안 깊숙이 웅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조용하고 아름다운 읍내(邑內)에서 함께 자랐다. 심하게 앓은 소아마비 때문에 몸 상체를 앞뒤로 절하는 것처럼 흔들어대야만 겨우 걸음을 떼는 갈래머리 소녀의 모습이 더벅머리 소년의 눈에는 조금도 흉해 보이지 않고 예쁘기만 했다.

서로를 마주보기도 하고 돌아보기도 하는 사이 어느덧 성인이 되었다. 움직이는 일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피아노 앞에서만 살았던 그녀의 연주 솜씨는 전문가 못지않았다. 백목련 꽃송이마다 달빛이 곱게 쏟아지던 밤, 갸름하고 하얀 얼굴로 성당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천사 같은 아가씨를 보고 청년은 영원히 그녀 옆에 있겠다고 성모마리아께 약속했다. 그 결심은 부모와 절연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내린 굳은 맹세였다.

욕심 없이 순결하게 맺어진 부부에게 축복만 내려 주면 안 되는 것이었을까. 신의 장난은 짓궂기만 했다. 희망 속에 탄생한 첫아들이 정상이 아니었다. 의사소통도 안 될 만큼 자폐증이 심했다. 그녀는 꼭 건강한 아이를 낳아서 남편에게 안겨주고 싶었다. 간절한 기도 속에 얻은 둘째 아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뇌성마비로 태어난 아이는 일어서서 걸음마를 할 기미마저 보이지 않았다. 학교 갈 나이가 되어도 그 모양인 둘째와 말문을 닫아버린 큰아이. 그녀 혼자서는 먹이고 씻기는 일마저 제대로 해결할 수가 없었다. 남편 역시 그런 가족을 놓고 일터로 나가는 발길이 무겁기만 했다.

대소변도 받아내야 하는 작은 아이가 10살이 되던 해, 드디어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눈물로 남편을 설득한 후 아이를 시설에 맡기고 돌아온 부인은 차마 눈을 뜨고 세상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부부는 끝내 산속 외딴집 빛이 없는 시간 속으로 숨어들고야 말았던 것이다.

우연하게도 산골이 아닌 도회지 번화가에서 부부를 다시 만났다. 한데 산골에서 보았던 부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누구보다 밝고 씩씩했다. 산속에서는 해도 달도 별도 아주 작은 미물들에게까지 빠짐없이 골고루 빛을 비춰주더라고 했다. 그 작은 생명들을 보면서 세상에 나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용기를 얻었으며, 더구나 돈을 많이 벌어야 자식들에게 부모 노릇을 할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물과 누룩이 만나 어둑한 은둔의 공간에서 남모르는 숙성의 시간을 보낸 후에야 향 가득한 술이 되듯, 인간에게도 혼자서 갖는 사색은 저다움을 지닌 빛과 향을 갖게 해 준다.

누군가가 금방 차지해버릴 것만 같아 자리에서 잠시도 내려서지 못하고 기진맥진해 있는 현대인들 앞에, 은둔의 시간 속에서 삶의 의미를 다시 찾아낸 한 부부가 우뚝 서 있다. 남편의 팔에 의지해 절뚝절뚝 간신히 걷고 있지만 분명히 슬픔의 그림자는 거두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