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전매광장>‘순이 삼촌‘과 ’광주‘ |
| 2022년 09월 07일(수) 16: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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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광장>‘순이 삼촌’과 ‘광주’
곽규호 (광주문화재단 예술상상본부장)
‘순이 삼촌’이라는 창작 오페라가 지난 3~4일 이틀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KTX를 타고, 빗속을 뚫고 찾아갔습니다. 공연 시작 30분 전 공연장 로비에 몰려든 관객 수에 놀랐습니다. 폭우가 예고된 날씨 속에 3,000여 관객이 객석을 채웠습니다.
평론가들의 글이 아니더라도 큰 감동과 울림이 있었습니다. 미리 단단히 각오하고 감상을 시작했지만 엄청난 희생,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70년여의 아픈 역사 속 평범한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에 곳곳에서 눈물이 터졌습니다.
4·3사건 최대 인명피해 소재
‘순이 삼촌’은 잘 알다시피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님의 단편(중편에 가까운) 소설이 원작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순이 삼촌입니다. 제주에서는 아주 가까운 어른을 모두 ‘삼촌’으로 호칭한답니다. 전라도였다면 작품 제목이 ‘순이 삼촌’이 아니라 ‘순이 아짐’으로 나왔을 듯합니다.
1948년 9월 제주 조천면 북촌리에서 군인들에 의해 1,000여 주민 가운데 400명이 몰살당한 사건이 작품 소재입니다. 북촌리 사건은 4·3사건 피해 사례 중 가장 인명피해가 큰 마을이었습니다.
순이 삼촌은 이 사건 당시 군인들이 쏜 구구식 총탄에 생떼 같은 두 자식을 잃고 자신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학살의 현장은 더구나 자신이 일구던 고구마밭입니다. 밭 한가운데를 무덤처럼 파낸 ‘옴팡밭’은 비극의 현장이 됐습니다.
소프라노 강혜명은 이 장면에서 짐승 같은 울부짖음으로 그 가눌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을 표현합니다. ‘광란의 아리아’로 이름 붙여진 노래입니다. 구음과도 같은 단선율의 소리로 억울함 원통함 비통함이 극렬하게 전달됩니다. 순이 삼촌이 제정신으로 살 수 없게 된 사연을 알게 합니다. 작중 가장 압권이었습니다. 사실 음악 자체 보다 이야기의 힘에 감동하고 놀란 순간입니다. 학살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겠지요. 순이 삼촌은 그 한 많은 세상 30년을 돌고 돌다 아이들의 주검 자리 ‘옴팡밭’에서 생의 끈을 놓았던 것입니다.
작품은 관현악단의 연주와, 성악가들의 아리아와 합창, 연극적 대사, 춤 등 종합 예술로 꾸며졌습니다. 오페라라지만 실은 연극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지요, 징그슈필(Sing spiel·노래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자 예술감독을 맡은 소프라노 강혜명을 포함한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모두가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춤도 잘 어우러졌습니다.
이 작품은 제주시와 제주아트센터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으로 만들었습니다. 원작자 현기영, 예술총감독 강혜명, 미술로 참여한 강요배 화백, 사진작가 강정효 등 제주의 예술인과 제주도립교향악단, 제주도립합창단, 제주4·3평화합창단, 제주의 가장 오래된 극단인 ‘가람’ 등 제주도 예술 단체들이 대거 힘을 모아 만들었습니다. 원작자 현기영님이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점도 놀라웠습니다. ‘순이 삼촌’은 2024년 일본에서 공연 예정이라고 합니다. 긴 호흡으로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는 10월 뉴욕 무대에 올려질 ‘뮤지컬 광주’를 생각합니다. 쇼케이스 형식입니다. 쇼케이스라는 것은 작품의 일부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작품을 현지 공연기획자들에게 소개하여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 무대에 ‘뮤지컬 광주’가 올려진다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 폭력에 희생 유족 위로
하지만 더 큰 성공은 광주를 찾는 외지인, 외국인들에게 언제든 이 작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더 많은 광주 연극인, 음악인들이 ‘뮤지컬 광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주 4·3항쟁은 공식 기록 1만4,532명, 진상조사에서는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엄청난 사건입니다. 국가에 의해 희생당했던 광주의 역사와 유사합니다. 지난 2000년 4·3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돼 진상규명, 명예회복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민족 근대사의 굴곡과 아픔을 공유한 제주와 광주가 예술로 평화의 길을 함께 열어갑니다.
‘역사는 기록되지만 예술은 기억됩니다’. 예술의 힘을 보여준 강혜명 예술총감독의 발언에 공감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모든 국가 폭력에 희생된 분들과 유족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곽규호 (광주문화재단 예술상상본부장)
‘순이 삼촌’이라는 창작 오페라가 지난 3~4일 이틀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KTX를 타고, 빗속을 뚫고 찾아갔습니다. 공연 시작 30분 전 공연장 로비에 몰려든 관객 수에 놀랐습니다. 폭우가 예고된 날씨 속에 3,000여 관객이 객석을 채웠습니다.
평론가들의 글이 아니더라도 큰 감동과 울림이 있었습니다. 미리 단단히 각오하고 감상을 시작했지만 엄청난 희생, 숨죽이고 살아야 했던 70년여의 아픈 역사 속 평범한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에 곳곳에서 눈물이 터졌습니다.
4·3사건 최대 인명피해 소재
‘순이 삼촌’은 잘 알다시피 제주 출신 소설가 현기영님의 단편(중편에 가까운) 소설이 원작입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순이 삼촌입니다. 제주에서는 아주 가까운 어른을 모두 ‘삼촌’으로 호칭한답니다. 전라도였다면 작품 제목이 ‘순이 삼촌’이 아니라 ‘순이 아짐’으로 나왔을 듯합니다.
1948년 9월 제주 조천면 북촌리에서 군인들에 의해 1,000여 주민 가운데 400명이 몰살당한 사건이 작품 소재입니다. 북촌리 사건은 4·3사건 피해 사례 중 가장 인명피해가 큰 마을이었습니다.
순이 삼촌은 이 사건 당시 군인들이 쏜 구구식 총탄에 생떼 같은 두 자식을 잃고 자신만 겨우 살아남았습니다. 학살의 현장은 더구나 자신이 일구던 고구마밭입니다. 밭 한가운데를 무덤처럼 파낸 ‘옴팡밭’은 비극의 현장이 됐습니다.
소프라노 강혜명은 이 장면에서 짐승 같은 울부짖음으로 그 가눌 수 없는 커다란 슬픔을 표현합니다. ‘광란의 아리아’로 이름 붙여진 노래입니다. 구음과도 같은 단선율의 소리로 억울함 원통함 비통함이 극렬하게 전달됩니다. 순이 삼촌이 제정신으로 살 수 없게 된 사연을 알게 합니다. 작중 가장 압권이었습니다. 사실 음악 자체 보다 이야기의 힘에 감동하고 놀란 순간입니다. 학살에서는 살아남았지만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겠지요. 순이 삼촌은 그 한 많은 세상 30년을 돌고 돌다 아이들의 주검 자리 ‘옴팡밭’에서 생의 끈을 놓았던 것입니다.
작품은 관현악단의 연주와, 성악가들의 아리아와 합창, 연극적 대사, 춤 등 종합 예술로 꾸며졌습니다. 오페라라지만 실은 연극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지요, 징그슈필(Sing spiel·노래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자 예술감독을 맡은 소프라노 강혜명을 포함한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모두가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와 춤도 잘 어우러졌습니다.
이 작품은 제주시와 제주아트센터 제주4·3평화재단이 공동으로 만들었습니다. 원작자 현기영, 예술총감독 강혜명, 미술로 참여한 강요배 화백, 사진작가 강정효 등 제주의 예술인과 제주도립교향악단, 제주도립합창단, 제주4·3평화합창단, 제주의 가장 오래된 극단인 ‘가람’ 등 제주도 예술 단체들이 대거 힘을 모아 만들었습니다. 원작자 현기영님이 나레이션으로 참여한 점도 놀라웠습니다. ‘순이 삼촌’은 2024년 일본에서 공연 예정이라고 합니다. 긴 호흡으로 작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는 10월 뉴욕 무대에 올려질 ‘뮤지컬 광주’를 생각합니다. 쇼케이스 형식입니다. 쇼케이스라는 것은 작품의 일부를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작품을 현지 공연기획자들에게 소개하여 뮤지컬의 본고장 브로드웨이 무대에 ‘뮤지컬 광주’가 올려진다면 성공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가 폭력에 희생 유족 위로
하지만 더 큰 성공은 광주를 찾는 외지인, 외국인들에게 언제든 이 작품을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앞으로 더 많은 광주 연극인, 음악인들이 ‘뮤지컬 광주’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제주 4·3항쟁은 공식 기록 1만4,532명, 진상조사에서는 2만5,000~3만명이 희생된 엄청난 사건입니다. 국가에 의해 희생당했던 광주의 역사와 유사합니다. 지난 2000년 4·3사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공포돼 진상규명, 명예회복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다행입니다. 민족 근대사의 굴곡과 아픔을 공유한 제주와 광주가 예술로 평화의 길을 함께 열어갑니다.
‘역사는 기록되지만 예술은 기억됩니다’. 예술의 힘을 보여준 강혜명 예술총감독의 발언에 공감하며 박수를 보냅니다. 모든 국가 폭력에 희생된 분들과 유족들에게 위로를 전합니다.
등록일 : 2015년 1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