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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 인간 <22> 러빙 빈센트

영화도 그림이 된다
고흐의 캔버스에서 춤을 추는 풍경
화가가 직접 그린 유화 애니메이션
그의 그림·사랑·삶·죽음 향한 오마주

2022년 05월 26일(목) 17:37
사는 게 힘들다고 느껴질 때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의 자화상을 보라는 말이 있다. ‘러빙 빈센트’(Loving Vincent, 2017)는 영화 자체가 고흐를 향한 오마주다. 특히 그의 그림, 삶, 사람에 대한 아픈 자화상을 투영한다.

러빙 빈센트는 화가들이 직접 손으로 그린 그림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초 유화 애니메이션이다. 기획부터 완성까지 10년이 걸렸으며 오디션을 통해 뽑힌 107명의 화가가 투입돼 완성된다. 영화도 그림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다.

영화 속에는 고흐의 작품 130여 점이 녹아있다. 이 중 90여 점 이상은 원작과 유사하게 표현됐으며 모든 인물과 장면이 고흐의 작품을 재현한다. 짙게 바른 물감의 질감이 그대로 전해지는 미디어아트 전시를 보는 듯하다.

이야기는 고흐 사후 1년인 1891년 프랑스 아를 지역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배달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추적해 나가는 줄거리다.

‘러빙 빈센트’
영화는 고흐의 명작을 스크린에 볼 수 있다는 시각적 만족과 더불어 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의문을 던지면서 관객의 호기심도 자극한다. 고흐의 삶과 죽음을 통찰하다 보면 안도현의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 떠오르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는 범인을 찾는 것에 중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고흐가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무게를 둔다. 그의 죽음에 대한 미로를 풀어가면서 고흐의 마지막 삶을 보여주고 아픈 자화상을 그려낸다.

영화에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가셰의 딸은 “당신은 그의 삶에 대해 얼마나 알죠?”라고 반문한다. 특정인의 모든 삶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한 개인의 단편적 경험과 정보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고흐에 대한 평가도 그랬을 것이다.

‘러빙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20세기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이다. 이십대가 지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마흔도 안 돼 세상을 떴다. 결국, 그가 그림에 몰두한 시간은 극히 짧았다.

더욱이 고흐가 남긴 걸작으로 꼽히는 것 대부분은 죽기 2∼3년 전에 완성한 작품이다. 반면 살아생전 그가 판매한 그림은 ‘아를의 붉은 포도밭’ 단 한 점뿐이다. 아이러니다. 고흐의 자살 원인 일부분에는 경제적 부담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고통은 영원하다’라는 말을 남긴다. 고흐의 삶을 관통해 살펴보면 이 말에 공감이 간다. 출생부터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늘 사랑에 실패했으며 그의 영혼 같은 그림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현병과 인격장애 등 고흐의 생은 항상 비틀거렸다.

‘러빙 빈센트’
그의 옆을 지킨 유일한 사람은 동생 테오였다. 수백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고흐를 정신적, 물질적으로 후원했다. 아이러니하게 고흐가 죽고 6개월 뒤 테오도 세상을 떠난다. 형제애가 강했음을 방증한다. 영화 제목인 ‘러빙 빈센트’도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쓴 서명이다.

영화는 오프닝부터 관객이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별이 빛나는 밤을 시작으로 아를의 노란 집을 지나 즈아브 병사의 반신상으로 끝난다. 오프닝 장면에만 3점의 고흐 걸작을 만나볼 수 있으며 이를 위해 총 729장의 유화가 제작된다.

더불어 고흐가 고갱과 즐겨 찾던 장소인 아를의 포룸 광장에 위치한 카페 테라스가 등장한다. 이밖에도 오베르의 평원, 까마귀가 있는 밀밭, 몽마르트르 언덕의 전망대 등 그의 유명 풍경화를 만날 수 있다.

‘러빙 빈센트’
그뿐만 아니라 고흐의 죽음을 추적하는 아르망이 고흐의 이야기를 전해 듣기 위해 만난 인물들도 명화의 일부가 된다. 탕기 영감의 초상, 라부 양의 초상, 피아노에 앉은 가셰의 딸, 가셰 박사의 초상 등이 그의 대표 초상화로 실현한 부분이다.

특히 고흐의 수많은 그림 속에는 타오르는 태양, 해바라기, 밀밭, 사람들이 강렬하게 표현된다. 이 모든 풍경이 고흐의 캔버스에서 춤을 춘다. 영화는 그런 고흐의 그림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영화라는 캔버스 속에서 춤을 추게 만든다.

‘러빙 빈센트’
영화는 끝나면서 돈 맥클린(Don McLean)의 노래 ‘Vincent’가 흘러나온다. 고흐의 전기를 읽고 작곡한 헌정 곡이다. 클라이맥스에 ‘빈센트. 이 세상은 당신 같은 아름다운 이가 있을 곳이 못 돼’라는 가사가 머리를 맴돈다.

풍경이 빈센트 반 고흐의 캔버스에서 춤을 춘다. 그리고 영화도 고흐를 만나면 그림이 된다.

/사진 출처 = ㈜스튜디오디에이치엘, 판씨네마㈜

‘러빙 빈센트’
‘아픈 자화상 속 고흐’

- 자신을 표현하고 위안이 된 그림.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의 37년 삶은 아픈 자화상 같다. 부모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정신병과 불안에 시달렸으며 그의 그림마저 사람들에게 외면당했기 때문이다.

부모는 빈센트라는 사산한 아이의 이름을 고흐에게 붙여줬다. 첫째였지만 부모에게 첫 자식은 아닌 셈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가족과 어울리고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노력했지만, 부모는 냉랭했다. 시작부터 고흐의 삶은 비틀거리고 위태로웠다.

성인이 된 그는 아버지를 따라 목사가 되고자 했지만 낮은 성적으로 전도사가 됐다. 부모는 전도사가 된 그를 외면했다. 이후 고갱과 그림 작업을 시작했지만, 고갱마저 그를 떠났다. 그를 지지하고 잡아준 유일한 끈은 동생 테오였다. 하지만 고흐는 동생에게 오랫동안 후원을 받으며 경제적 부담만 주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을 것이다.

고흐의 자살은 유년기부터 시작한 가족과의 부적절한 애착 관계, 사회생활에서 반복된 거절과 외면 그리고 단절, 극단적인 경제적 빈곤 등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고흐가 정신 질환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발작, 충동적 행동, 환각, 우울 등을 고려할 때 측두엽 간질이라는 소견을 밝힌다. 또 불안정한 기분, 급격한 불안감, 귓불을 자르는 등 자해행위 등을 이유로 경계선 인격장애라는 의견도 있다.

고흐에게 그림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위안이었을 것이다. 그의 그림은 친숙한 소재에서 오는 따뜻한 색채와 두꺼운 터치에서 묻어나오는 온화한 느낌 때문에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

아이러니하게 우리는 굴곡진 삶을 살아온 고흐의 그림에서 위안을 받고 살아간다. 고흐는 내면의 눈으로 캔버스에 빛을 칠했다.

그리고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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