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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시장의 제살 깎기

이연수(경제부장 겸 부국장)

2022년 05월 24일(화) 17:32
미국의 유명한 IT회사 HP(휴렛패커드)는 창업자 윌리엄 휴렛(William Hewlett)과 데이비드 팩커드(David Packard)가 일궈낸 세계 벤처기업 1호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시조가 된 HP는 1938년 미국의 대공황기에 캘리포니아의 허름한 차고에서 음향 발진기를 내놓으며 그 역사가 시작됐다.

스탠포드 대학교 기계공학과 동기였던 휴렛과 팩커드는 지도교수에게 빌린 538달러를 자본금으로 컴퓨터와 프린터, 서버 등의 전자제품을 제조하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HP를 성장시킨다. 창의적 실험과 인간중심의 경영으로 신화를 창조해 낸다.

HP의 독특한 기업문화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1942년 당시 기업으로서는 이례적으로 모든 직원에 대한 건강보험 계획을 세웠으며, 임원이 되더라도 되도록 개인 방을 가지지 않는 ‘오픈 플로어’ 디자인을 적용해 직원들이 쉽게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 있게 했다. 또 처음 사람을 뽑을 때 신중하게 뽑아 직원 개인을 신뢰하고 존중하며 거의 해고하지 않는 기업 문화를 강조했다. 이런 HP의 문화를 ‘HP Way’라고 하는데, 사람을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내세우는 인본주의와 열린 커뮤니케이션이 ‘HP 신화’의 동력이라 할 수 있겠다.



#HP의 인본주의 기업문화



최근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OTT)업체 넷플릭스가 실적 부진 여파로 직원 150명을 해고했다. 미국 내 본사 전체 인력의 2% 가량에 해당하는 숫자라지만 가입자 수 감소에 따른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과연 제살깎기가 최선이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넷플릭스는 비용절감 자구책으로 직원을 감축했지만 장기적으로는 구독자 감소보다 더 큰 악재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넷플릭스의 정리해고 조치와 별개로 회사를 자발적으로 떠나는 직원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스트리밍 업계에서 손꼽히는 스타급 직원들인데 HBO, 디즈니+, 애플+ 등 경쟁업체로의 이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을 자산으로 여기는 HP의 기업문화가 상기되는 대목이다.

코로나 특수를 누렸던 OTT 시장은 지금 초비상이다.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국내에서도 OTT 시장 7대 업체인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쿠팡플레이, 디즈니플러스, 시즌, 왓챠의 지난달 월 사용자 수는 연초인 1월에 비해 11.3%나 감소했다.

지난해 ‘오징어게임’과 마블 시리즈를 시청하기 위해 OTT에 가입했던 이용자들이 뚜렷한 히트작이 나오지 않자 필요없는 계정을 정리하며 가계지출을 줄이려는 분위기라는 해석이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감원이지만 가장 나중에 선택해야 할 방법일 것이다. 해결 방법은 콘텐츠에 있는데 창의력 있는 콘텐츠를 생산해 낼 직원들이 빠져나간다면 답은 멀어진다. 거기에 더해 출혈경쟁은 개인의 창의력을 말살시킬 뿐이다.

한 달 내내 매일 한 가지씩 먹을 수 있는, 31가지의 다양한 아이스크림을 갖추었다는 의미의 숫자 31(Thirty-One)으로 유명한 배스킨라빈스(Baskin Robbins)는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먹거리 기업 중 하나다. 1945년 어바인 라빈스와 그의 처남인 버턴 배스킨이 설립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육군을 제대한 라빈스는 아버지가 들어준 보험금 6,000달러를 창업자금으로 해 ‘스노우버드’라는 이름의 첫 아이스크림 가게를 냈는데, 당시엔 아이스크림만 파는 가게 같은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때였다고 한다. 라빈스는 군대에 있을 때 군인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전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모습을 보고, 항상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을 개발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비슷한 시기에 군대를 제대했던 라빈스의 매부 배스킨도 아이스크림 가게를 냈는데, 새로운 맛의 아이스크림을 개발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두 사람은 서로의 창의성을 해칠 것을 염려해 각자 사업을 따로 꾸려갔다고 한다. 3년 후에야 비로소 동업을 하게 되고 ‘31가지 맛’의 세계를 함께 개척하기 시작, 미국을 대표하는 거대 프랜차이즈로 성장시켰다.



#초비상 OTT…사람이 자산



OTT시장의 포화 속 1위 넷플릭스의 위기는 사람이라는 자산에 대해 다시 돌아볼 기회라 생각된다. 창의력은 경쟁에서 나오지 않는다. 창의적 아이디어는 주변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며, 그 중심에 인간이 있다. 절실한 도전으로 만들어 낸 아이스크림과 실험이 이뤄낸 컴퓨터, 그리고 오픈 사회가 만든 미래산업도 역시 인간이 중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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