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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철학 충만’
2022년 05월 15일(일) 17:59
<열린세상>‘철학 충만’
정진탄 월간국장 겸 논설위원

어느 날 지인이 지금은 종영된 태종 이방원 드라마를 얘기하면서 사극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프로그램에 대해 필자에게 의견을 묻자 고개를 흔들며 사극을 본지 오래됐고 앞으로 수년 내에 볼지 모르겠다고 했다. 권력 투쟁과 관련된 사극은 일부러 시청하지 않고 있다. 그런 책도 읽은 지 상당기간 흘렀다. 일종의 영감과 영성을 오염시키지 않기 위한 방법으로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다고 사극이나 역사 독서가 필요 없다는 말은 단연코 아니니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권력투쟁’ 역사극 거리 둬

과거 종종 찾아보던 춘추전국시대의 고전도 관심 밖의 카테고리다. 혹자는 무한경쟁시대에 생존하려면 전략과 처세술, 인간사를 관통하는 춘추전국시대 지혜, 그 맥락을 짚어주는 독서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고 지적할 수 있겠다. 옳은 지적이다. 10여년 전 후흑학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킨 작가 겸 역자 신동준씨 또한 그 필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20여년 전에 필자와 인연이 있었던 신씨는 중국 고전 방면에 달통해 천재적으로 글을 써왔고 후대에 엄청난 지적 영향을 줬다.

그런데 ‘애플 제국’과 경쟁하기 위해, 아니 그 기업을 따라잡거나 눕히기 위해 중국사서 관련 공부의 필요성을 말할 수 있겠지만 무한경쟁시대에 이미 제패하다시피 한 애플 제국의 황제 스티브 잡스가 얼마나 많은 권력투쟁, 흥망성쇠의 서적을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잡스가 구루(Guru·영적 스승)를 만나기 위해 인도를 순례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그가 순례를 통해 어떤 영감을 받았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아이폰이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는 기기를 만들어내는데 지대한 도움을 받았을 것은 분명하다.

지금 세계 최첨단 기업 가운데 많은 곳이 다시 철학을 공부한다고 한다. 여기서 철학은 통상적인 철학 영역이기보다 인간의 영혼과 연결을 맺는 그런 쪽 분야다. 철학 대신 영혼이란 말로 대체해도 좋을 듯하다. 이 영혼은 개인적으로 국한된 게 아니라 전 지구적, 우주적 관점에서 인류 전체, 보편성과 직결된다. 인간을 제대로 모르고서, 인류에 이바지하겠다는 개념이 없이 잡스의 아이폰 탄생이 가능했겠는가. 세계를 상대로 하는 기업, 최첨단 업종 종사자들은 인류를 한 가족으로 보고 최신상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경영전략과 목표, 기업 간 경쟁, 승리 이데올로기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일 것이나, 보다 차원 높은 일류기업은 인류애를 위한 지구적, 우주적 뜻을 품는다. 개인적으로 기업들이 왜 이제야 인간을 위해, 인류를 위해, 광활한 사고를 하는지, 지구인을 염려하는 경영을 좀 더 앞당길 수 없었나 하고 질타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이제라도 인류의 보편성을 인식하고 기업이 궁극적으로 나아갈 방향을 잡은 것에 대해선 대단히 다행스럽게 여긴다.

이런 인류 공존공영의 정신은 국가, 지역사회의 내부로까지 연장할 수 있어야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결사옹위라는 말이 심하지 않을 정도의 진영 논리와 지역사회 내부의 인정 및 이익투쟁이 점철돼 있다. 광주·전남의 경우 하나만 보자면 군공항 및 민간공항 이전은 광주와 전남이란 행정적, 심리적 경계에 갇혀 진척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넓게 보면 호남과 국토 서남부의 관문 역할을 할 공항이 이익 충돌의 소용돌이에 있는 형국이고, 이해 당사자 간 조율이 잘 되지 않으면 파국도 감수해야 할 판이다. 대구와 경북은 대타협으로 신공항 건설, 부산과 경남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가덕도 신공항을 건설하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는데 광주와 전남은 여태 그 모습이다. 정치권과 정부 지원만 재촉할 일은 아니다.

5·18 대동세상 인류애 관통

단언컨대 자기지역 이익에 연연해선 큰 진척이 없다. 거기에는 공존공영, 상생을 위한 철학의 빈곤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광주와 전남을 한 덩어리로 보는 보편성에 기초한 상생에 대한 인식이 충분해야 한다. 상생 함양은 서로 마음의 문을 열어가는 것이다. 우리 지역 5·18 정신인 민주·인권·평화를 구현하고 대동세상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족할 것이다. 이 같은 정신을 얼마나 본받아 생활하는지 우리 스스로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하나의 마음으로 통하는 세상, 대동세상은 초일류 기업이 꿈꾸는 인류애, 공존공영과 너무나 잘 들어맞는다. 이런 가치가 초일류 기업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면 언제 우리는 투쟁과 대립의 굴레, 그 노정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철학의 재충전, 충만으로 다시 나아갈 길을 밝혀야 한다.

이런 지구적, 우주적 마인드에 대한 요구가 작금의 각박한 현실에선 허황되거나 잠꼬대 같을 수 있겠지만, 세상을 앞서가는 이들의 눈엔 이런 우리가 참 안타까워 보일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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