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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 인간 <21>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자유의 경계에 대한 색다른 성찰
통제·억압·강요 벗어난 신가치 추구
뻐꾸기 둥지는 억압된 인간 삶 상징
평등이란 자유를 찾아 멀리 날아간 새

2022년 05월 12일(목) 17:31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포스터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ew Over the Cuckoo’s Nest, 1975)는 기성세대의 권력과 시스템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영화다.

기존 사회통념, 관습, 도덕, 제도를 부정하고 순수한 자유, 인간성 회복, 자연에 귀의 등을 외치고 있다. 특히 영화는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통제, 억압, 강요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

영화는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의 잔상을 남긴다. 정신병원 안과 밖. 그 경계는 무엇이며 어느 곳에 사는 인간의 삶이 정상적인지에 대한 판단도 흐려진다. 그리고 정말로 병든 사람은 누구인가를 성찰하게 한다.

이 영화는 제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영화 제목 속 뻐꾸기 둥지와 새 그리고 날아간다는 의미와 상징에 궁금증이 시작하기 때문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뻐꾸기 둥지는 인디언 우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으며, 영화 속에선 정신병원을 의미한다. 더욱이 보이지 않는 억압과 폭력에 대한 시스템을 뻐꾸기 둥지로 표현한다. 그 시스템을 벗어나려는 자유의지는 새로 비유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뻐꾸기는 둥지가 없다. 알을 자신 둥지에 낳지 않고 다른 새 둥지에 위탁해 낳는 것을 탁란이라 한다. 뻐꾸기는 그런 탁란 조의 대표 격이다. 결국, 뻐꾸기 둥지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영화는 둥지 자체가 없는 뻐꾸기들을 억지로 모아 넣어놓은 장소인 정신병원에 대한 은유다. 제목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도 뻐꾸기 둥지에 갇혀있는 것은 아닌지 반문하게 한다. 어딘가에 존재하는 잘못된 억압과 질서의 집합을 꼬집는다.

주요 등장인물은 세 사람이다. 미치광이 흉내를 낸 덕분에 정신병원에 위탁된 랜들 패트릭 맥머피,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척하는 1인칭 서술자인 추장 브롬든 그리고 정신병동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수간호사 래치드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영화는 통제 불가능한 가짜 환자 맥머피가 정신병원에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마음에 상처를 입은 채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환자와 그들을 공포라는 무기로 억압하고 통제하는 수간호원 사이의 갈등을 주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맥머피는 교도소보다 편히 지내려는 속셈에 정신병자로 위장해 병원으로 이송된다. 하지만 그곳이 치료라는 명분 아래 환자들의 의식과 사고가 획일적으로 다스려지고 강제당하는 또 다른 감옥임을 발견하고 저항한다.

자유를 찾아서 온 정신병원. 하지만 그곳은 모든 것이 통제되고 억압된 곳이었다. 수간호사 래치드는 관리와 통솔을 넘어 정신질환자의 권리를 빼앗고 정신적 폭력까지 가한다. 수간호사는 환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맥 머피는 과도하게 그녀를 무서워하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고 이상하다고 느낀다. 그리고 그녀가 세운 성을 무너뜨리기로 결심한다. 환자들과 무단 외박을 하고 병원에서 파티를 벌이는 등 대항한다.

당연히 맥머피는 래치드에게 눈엣가시가 된다. 자신의 성이 함락될 것 같은 불안감에 수간호사는 그에게 전기충격 등 가장 높은 강도의 제재를 가한다. 심지어 그를 로보토미의 희생양으로 만들어 버린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이후 브롬든은 맥머피가 불어 넣어준 용기에 힘입어 정신병원을 탈출한다. 그는 식물인간이 된 맥머피의 존엄사를 도운 후 마침내 오래된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게 된다.

영화 속 맥머피는 죗값을 치러야 하는 범죄자다. 사회적으로 옹호될 이유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잘못된 체제와 시스템에 대항하는 그를 보며 어느새 그를 응원하는 나를 발견한다. 동시에 현실 속 우리 모습 같아 씁쓸함도 느끼게 된다.

특히 영화는 억압된 자유와 강요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정신병원의 관리체제를 통해서 당시 미국 사회가 가진 경직된 조직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뻐꾸기 둥지는 현시대에 정형화되고 억압된 우리의 삶을 상징한다. 진정한 자유의 경계에 대해 성찰하게 한다. 더욱이 갇혀있는 뻐꾸기들이 다시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하게 한다.

한편 맥머피를 연기한 잭 니콜슨의 살 떨리는 연기는 일품이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그의 얼굴에서 뿜어나오는 연기력은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이다. 인물을 살아 숨 쉬도록 느끼게 한다.

맥머피가 무거운 세면대를 들어 올리다 실패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무기력한 환자들을 향해 그는 “그래도 난 해봤잖아”라고 소리친다.

피로 사회를 살아가는 나머지 인간은 한 번이라도 자유를 얻기 위한 시도나 노력을 해 봤는지 반문하고 싶다.

억압과 통제의 익숙함 뒤에 숨어 사는 평등이란 자유를 찾길 바란다.

/사진 출처 = 한진흥업주식회사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뇌에 가해진 비윤리적 치료’

- 로보토미와 전기충격요법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전두엽 절제술은 중요한 소재로 나온다. 권력의 주체인 정신병원이 통제하기 어려운 인간 맥머피에게 마지막으로 뇌수술을 감행한다. 그것은 전두엽 절제술을 말하는 로보토미(Lobotomy)다.

뇌의 특정 엽을 지나가는 신경을 다른 엽으로부터 잘라내는 수술이다. 과거 한때 심한 정신분열증과 조울증, 다른 정신병의 근본적 치료법으로 사용됐다. 전두엽 절제술을 고안한 에가스 모니스는 1949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지만 이후 가장 많은 수상 논란을 일으킨 인물이 된다.

이 수술은 인간성 상실, 간질 발작, 부분 마비 등 심각한 후유증과 부작용은 물론 뇌에 가해진 비가역적 손상에 대한 윤리적 비판으로 결국 사라진다. 노벨상 수상이란 화려한 이름으로 출발해 결국엔 끔찍한 부작용만 남기고 역사에서 사라진 수술로 남는다.

또 영화 속에는 전기충격요법(ECT)이 잔인하고 폭력적인 치료법으로 생생하게 묘사된다. 전기충격요법은 우울증 환자의 뇌에 전기적 충격을 가해 30~60초간 발작을 일으킴으로써 증상을 완화하는 우울증 치료법이다.

처음 사용됐을 때에는 마취 없이 높은 세기의 전류를 사용해 비인간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마취제를 사용하며 우울증 완화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다. 전기충격요법 치료를 받는 환자 중 75~85%가 회복에 성공하는 등 그 효과는 입증됐다.

반면 전기충격요법의 원리나 뇌에 미치는 영향은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않아 여전히 논란이다. 단기 기억상실과 심장질환 등 부작용 위험도 있어 전기충격요법은 자살 충동을 느낄 정도로 극심한 우울증 환자나 약물치료에도 반응이 없는 환자에게만 시행하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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