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경의 심리학 교실] 아이들은 왜 학교에 가야 하는가?
- 학교 교육에 숨겨진 진화심리학 -

글 한은경(심리학 박사, 임상심리전문가)

바라만 봐도 좋은 춘삼월이 우리 곁을 지나고 있고, 온갖 만물이 소생해서 각자의 전성기를 준비하는 시기이다. 팬데믹에서 엔데믹을 향하는 시점이지만 어느새 학교는 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을 맞이했고, 새로운 학기가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는 학교 교육 환경에 있어서도 실로 다양한 변화를 초래했는데, 가정에서 컴퓨터 화면을 통해 만들어진 수업에 참여하고, 낯선 이들과 대면하지 못한 채로 같은 반 친구가 되며, 온라인 시험과 진로탐색 등 수많은 변화에 직면하게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학교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곳이고, 그리고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에 관한 성찰의 시간을 보상으로 받았다.

일본의 대문호 오에 겐자부로는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쓴 교육 에세이집 ‘나의 나무 아래서‘에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를 서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일본 패망 당시, 학교에 관심을 잃고 숲에서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던 그는 한번은 심하게 앓던 중 죽게 될 것을 두려워했고, 자신과 똑같은 소년을 낳아줄 거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회복한 다음, 학교를 다시 찾는다. 그는 교실과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 모두 채 자라지 못하고 죽은 아이들 대신에 살고 있으며, 죽은 아이들이 생전에 보고 듣고 읽은 모든 것들을 지금의 아이들이 나중에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고, 죽은 아이들의 경험과 언어를 넘겨받기 위해서, 그리고 국어뿐만 아니라, 과학, 수학, 운동까지도 배워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그리고 학교를 가지 않고 숲에서만 지냈더라면 죽은 아이들을 대신할 수 없고, 똑같은 아이도 될 수 없기 때문에 아이들은 모두 학교에 가서 함께 공부하고, 또 함께 노는 것임을 깨닫는다. 또한 장애가 있는 자녀를 양육하는 경험을 통해 오에 겐자부로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다양한 감정들을 스스로 확인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며, 나아가 사회와 연결시켜 나가는 일들은 가정에서 출발을 시작하지만 온전한 형태를 갖기 위해서는 학교가 필요함을 피력하였다. 어느 세상에서나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이유는 바로 이것을 배우기 위함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자, 그렇다면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학교를 바라보면 어떨까? 아이들은 연령별로 나누어진 교실에서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서 낯선 비친족 어른으로부터 장시간 교육을 받게끔 진화하지 않았다고 한 진화발달심리학자는 언급한 바 있다. 과거 수렵채집생활을 해왔던 우리의 머나먼 조상들에게는 학교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금의 학교가 생겨난 것은 고작 수천 년 전의 일일 뿐이며, 초등교육을 의무화하는 제도 또한 정착한지 불과 200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지금의 학교는 왜 생겨난 것일까? 지구상 어느 아이들이건 생후 2세가 넘으면 말문이 저절로 트이면서 재잘대기 시작하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기 시작한다. 이때 어른들은 굳이 모국어를 별도로 아이들에게 학습시킬 필요가 없으며, 아이들은 저절로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면서 듣고 말하는 능력을 자연스레 터득한다. 이러한 모국어를 듣고 말하는 능력은 이미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것으로, 10만 년 전부터 이미 음성언어는 인간의 적응을 위해 출현하였다. 즉, 누구나 저절로 갖게 되는 일차적인 지식인 셈이다. 그렇다면 읽고 쓰는 것은 어떠한가? 문자가 발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거의 8000여 년 전의 일로, 음성언어의 출현과는 시간적 간극이 매우 크다. 따라서 우리가 문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자연스럽게 생성하기에는 그만큼 진화적 시간이 짧았기에 학교와 같은 체계를 통해서 읽고 쓰는 능력, 즉 이차적인 지식을 습득할 필요성이 대두한 것이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전과 학문적 진보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지식과 기술 또한 축적되는데, 이는 그간 인류가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갖게 된 일차적 지식과 학문적 체계에 의해 생겨난 이차적 지식간의 간극을 초래했으며, 이러한 간극이 점차적으로 커지면서 이 틈을 메우기 위해 학교는 필요했다. 즉, 태어나면서부터 저절로 갖고 있지 않지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기능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정보들을 학교를 통해 배워야 했던 것이다.

아이들은 굳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처음 만난 아이들과도 뛰어다니며 노는 것을 좋아한다. 왜 그럴까? 이미 아이들은 태어날 때 머나먼 과거의 조상들로부터 생존과 번식에 중요한 정보들(여기서는 사회적 지능과 운동능력)을 자연스레 잘 습득하게끔 되어있었을 것이며, 이는 일차적인 지식인 셈이다. 반면, 상대의 감정이나 언어의 숨겨진 의미를 잘 파악하고 처신해야 하는 사회구성원으로써의 성인은 이미 학교를 통해 다양한 이차적 지식들을 습득해왔을 것이다.

이렇듯, 학교라는 곳은 스스로 알아서 척척 잘 깨우치게끔 타고 나지 않은 수많은 이차적 지식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쳐 주고, 또 함께 고민하는 곳이어야 한다. 진화론적으로 생소한 수많은 지식들을 습득하기 위해서 아이들은 친절하고도 자세한 안내를 받아야 하며, 적절한 보상과 훈련, 그리고 또래들과의 연결을 통해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아야 한다. 그렇지만 코로나 19로 인한 학교환경의 변화, 즉 비대면 방식의 학교는 이전의 학교환경에서 습득할 수 있었던 이차적 지식을 그대로 제공할 수도 없으며, 아이들 또한 학교에 가지 않으면서도 학교에 가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깨우치는, 즉 누가 따로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 해법을 찾아내게끔 진화하지도 않았다. 아니, 진화할 시간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대면 방식의 학습의 효율성과 효과성, 시간의 효용가치와 자율성, 자아개념에 대한 인식과 발달을 위한 기회, 비대면 방식의 관계가 주는 친밀감과 연대감 등은 여전히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는 이유이자 학교에서 습득해야 할 이차적 지식일 것이다.

△심리학 박사 △전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광주·전남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