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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햇살

박덕은 문학박사·화가·전 전남대 교수

2022년 04월 13일(수) 17:58
오랜만의 외출이다.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올봄은 유난히도 더디게 오는 듯하다. 찬바람이 제법 불어오지만 쾌활한 표정의 봄이 다가오고 있다. 그 봄을 제일 먼저 마중하고 싶어, 산에 간다.

얼마 전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은 지인이 죽었다. 지인의 유가족들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곧바로 화장터로 향했다. 화장터로 향하던 그날, 사르륵 눈이 내리고 나뭇가지마다 하얀 울음이 내려앉았다. 허공의 영정 앞에 예를 갖추고 향을 피우는 눈보라의 애도만 그 뒤를 따랐다. 마지막 인사마저 나누지 못한 지인의 죽음으로 허무가 덮쳐 와, 나는 한동안 집밖을 나가지 않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듯, 3월은 산 여기저기에 듬성듬성 큰봄까치꽃을 피우고 있다. 집합금지명령 같은 꽃샘추위가 불어닥친 탓인지, 곳곳에 큰봄까치꽃이 시들어 있다. 봄으로 들어선 꽃빛은 절정으로 채 치닫기도 전에, 코로나 확진 판정이라도 받은 듯 이울어지고 있다. 바이러스에 떠밀려 장사를 접은 상인들처럼, 어쩔 수 없이 환한 꽃빛을 접은 3월의 쓸쓸함이 느껴진다. 꽃샘추위로 봄을 찾는 발걸음이 적어, 오솔길은 전기 플러그를 뽑은 가게처럼 적막하다. 경기 침체의 통장 잔고처럼 기온은 뚝 떨어지고 바람은 우수수 흩어지고 있다.

산기슭으로 접어들면서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마스크를 쓴 듯 입술을 꾹 다문 나무 밑동에게 무슨 할 말이 있는지, 봄 햇살이 빗살무늬로 드리워져 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 없듯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어둠도 끝내는 환한 봄빛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걸까. 아니, 봄빛 같은 입술과 귀로 서로의 마음에 다가가라고 사람들에게 호소하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코로나가 시작되고 마스크를 쓰면서부터 사람들은 소통의 입술을 잃어 버리기 시작한 것 같다. 이제는 소통의 귀까지 닫아 버린 걸까. 봄 햇살은 나무 밑동의 말에 귀기울이느라 몸을 낮추고 있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나무 밑동은 봄 햇살의 맞장구에 생기가 돌아 수다스레 환하다. 저 봄 햇살처럼 우리도 몸과 마음을 낮춰 마주 보기를 하면, 코로나에서 벗어나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까. 지인이 살아 있었을 때 전화라도 한 번 걸어 마음의 마주 보기라도 했었더라면, 이렇게 마음이 무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연락 한 번 해야겠다라고 차일피일 미루다, 지인은 영영 떠나 버렸다. 나의 무심함이 후회스럽다.

산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데, 벌써 산을 내려오는 등산객이 있다. 멀뚱멀뚱 지나가는 나에게 인사를 하며 산을 내려간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그가 건넨 ‘안녕하세요’라는 봄 햇살 같은 관심의 한마디가 따스해서 나도 화답한다.

“예, 안녕하세요.”

코로나 속에서 내 마음의 마주 보기는 안녕한지, 나의 소통은 안녕한지 묻고 있는 듯하다. 그가 건넨 인사로 혼자 오른 산행 길이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 일상의 시간에 서늘한 칼끝을 들이대던 코로나 사태가 사라지기라도 한 듯 마음이 편안하다.

산 정상에 오르니 봄 햇살이 더욱 눈부시다. 지인의 미소처럼 싱그럽게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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