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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 인간 <19> 레인메이커

‘법은 과연 정의인가?’ 화두
법의 이름으로 일어난 부(不)정의
사회적 부패에 진지한 메스 가해
이데아 향한 에로스로 실현되는 정의

2022년 03월 31일(목) 19:43
영화 ‘레인메이커’
영화 ‘레인메이커’(The Rainmaker, 1997)는 법대를 갓 졸업한 신출내기 변호사가 거대 보험회사와 소송하며 벌어지는 각종 음모를 그린 법정 스릴러다.

특히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연상시키는 법정 싸움을 연출해, 진정한 의미의 법과 정의에 대한 화두를 남긴다. 그리고 사전 심리, 증언 녹취, 공판, 배심원제 등 재판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개봉 당시 이 영화는 ‘대부’, ‘지옥의 묵시록’ 등을 연출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베스트셀러 작가 존 그리샴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다는 것에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이들의 유명세보다는 사회의 구조적 부패에 진지한 메스를 가했다는 점에서 더욱 후한 점수를 얻는다. ‘법이 정의인가?’라는 주제를 관객이 스스로 고민하게 만드는 영화라는 평가도 받는다.

제목인 ‘레인메이커’는 미국 인디언들로부터 유래된 말이다. 이들은 가뭄이 들면 모든 부족이 모여 하늘에 제사를 올려 은총의 단비를 신에게 청했다. 결국, 기우제에서 주문을 외우는 북미 인디언의 주술사를 뜻한다.

이후 레인메이커는 조직과 회사에 이익의 단비를 내리게 하는 존재를 의미하는 단어로 활용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대기업을 상대로 거액의 손해배상을 수임한 변호사를 지칭한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잘나가지는 않지만 정의로운 변호사인 루디 베일러다. 그는 수석 입학이나 수석 졸업 등을 훈장처럼 달고 있는 엘리트 변호사가 아니다. 오히려 피자 배달 등을 하며 고학으로 지방도시 법대를 졸업하고 간신히 변호사 시험에 합격한다. 변호사가 됐지만, 그의 앞날은 순탄치는 않다.

그럴듯한 배경도 없는 그에게 사건을 맡길 리 만무했다. 결국, 구급차를 따라다니며 간신히 형사사건을 수임해 하루하루를 보낸다. 속칭 앰뷸런스 변호사(생계형 변호사)로 생업을 이어간다.

영화 ‘레인메이커’
어느 날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아들을 둔 어머니 의뢰로 엄청난 권력을 가진 거대 보험회사와 싸우면서 이야기는 전개된다. 골리앗 보험회사는 매번 교묘하게 법망을 피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는 파렴치한 영업을 이어간다. 승소 가능성이 1%도 되지 않는 싸움에 변호사 루디는 고군분투하지만 좀처럼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루디는 해직된 직원을 찾아 증인으로 세우는 데 성공하지만, 그녀의 증언은 무효화된다. 게다가 악덕 보험회사의 음모가 드러나면서 도청, 협박, 회유 등에 시달린다.

더욱이 법정에서의 논리가 진실을 호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에겐 다른 변호사들이 갖지 못한 덕목이 하나 있다. 밑바닥 생활에서 배운 끈기와 정의감이다.

루디는 보험회사가 다른 모든 사건에서도 보험금 지급을 악의적으로 지연하고 미지급해왔음을 배심원에게 증명한다. 배심원단의 분노는 4,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징벌적 손해배상 선고로 이어진다.

이와 함께 유언장 작성을 부탁한 부인의 가족 이야기, 가정폭력을 벗어나는 과정, 주인공이 새로이 법무법인을 개업하는 일 등 여러 사건이 교차편집 되면서 영화의 지루함을 상쇄한다.

영화를 보면 불현듯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진다. 우습게도 루디 같은 변호사가 현실에 존재할지에 대한 의문이 그것이다. 현실의 법률서비스는 소비자인 보통 사람들에게는 높은 담장 같기 때문이다.

한자로 법(法)이란 단어는 물을 뜻하는 水(수)자와 간다는 뜻의 去(거)자가 합쳐진 말이다. 물이 가는 길이 곧 법이라는 의미다. 순리가 법이란 의역도 가능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법은 삶의 순리가 아닌 삶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됐다. 법을 만들고 이용하는 인간의 탓이다. 상식과 순리를 벗어나는 인간의 탐욕이 법을 인간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법은 언제나 정의의 편인가? 영화 ‘레인메이커’는 때때로 법의 이름으로 부(不)정의가 일어나는 문제를 다룬다. 영화는 새내기 변호사가 진실과 정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공감을 이룬다.

플라톤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세계를 ‘이데아’라고 지칭했다. 그리고 이데아에 대한 열망을 ‘에로스’라고 표현했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완전한 이데아의 세계를 꿈꾼다.

주인공 루디는 물질적 보상과 상관없이 자신의 신념대로 행동한다. 그 이유는 루디의 마음속 깊은 곳에 법의 이상에 가까워지려는 에로스의 힘이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정의는 종종 실현되기도 한다.

영화 ‘레인메이커’
‘비도덕적·반사회적 행위 처벌’

- 뜨거운 감자 된 징벌적 손해배상.



‘레인메이커’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찬반논란을 불러일으키는 등 현대사회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영화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영국 법원 판결에서 비롯됐으며 미국에서도 시행되고 있다. 손해 액수만을 보상하는 보상적 손해배상제도와 달리, 비도덕적이고 반사회적 행위를 금지하고 그와 유사한 행위가 다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한 형벌적 처벌의 성격을 띤 손해배상을 부과하는 제도다.

원래 손해배상은 피해자가 입은 손해만을 배상하는 것이 원칙이다. 즉 피해자가 100원의 피해를 보았다면, 가해자는 100원만 배상하면 추가적인 책임이 없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은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큰 배상액을 부과하는 것이다.

실제 1993년 미국에서 법적 지식이 없던 가정주부가 거대 기업에 맞서 법정 분쟁에서 승소해 3억3,300만 달러의 천문학 배상을 받아낸 사건이 있었다. 에린 브로코비치가 그 주인공이다.

이후 이 사건은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에린 브로코비치’라는 영화로 제작돼 세상에 크게 알려진다. 그녀가 대기업에 맞서고, 천문학적 배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덕분이다.

이외에도 미국은 2010년 급발진에 늑장 대응한 도요타에 우리 돈 1조를 넘는 벌금을 부과했으며, 폭스바겐도 디젤게이트 사건으로 천문학적 벌금을 부과받은 사례가 있다.

대한민국도 가습기 살균제 사건, 발암물질 생리대 사건, BMW 자동차 화재사건 등이 터지면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거부할 수 없는 시류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는 분야를 어디까지 설정할 것인지와 배상액의 범위, 법 적용의 위법성 등 논의할 부분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이중 처벌, 위헌 논란, 자율조정 침해 등 반대 논리도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

영화는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고민과 숙제를 남긴다. 그리고 현명한 레인메이커를 기다린다.

영화 ‘레인메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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