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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끌, 서예의 종합예술, 각자장 곽금원

‘각자’ 전남도 제1대 각자장 곽금원
일중 김충현 선생 추천으로 철재 오옥진 선생 애제자 돼
각자장, 서예 필법 모르면 글자 운용 방법 없어 역량 드러나

2022년 03월 29일(화) 16:44
작업 중인 곽금원 각자장
나무와 끌, 서예의 종합예술, 각자장 곽금원

‘각자’ 전남도 제1대 각자장 곽금원
일중 김충현 선생 추천으로 철재 오옥진 선생 애제자 돼
각자장, 서예 필법 모르면 글자 운용 방법 없어 역량 드러나

지난 2월 전라남도 제1대 각자장이 선정됐다. 40여 년의 경력을 인정받은 곽금원 각자장이다. 그의 삶을 조명하고 각자의 존재 가치 및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글 민슬기 기자 사진 김생훈 기자

Q. 세 번의 도전 끝에 무형문화재가 됐다. 소감 한 마디.

전통 각자 보유기능을 40여 년 넘게 연마했다. 사찰 현판‧주련 등 작업한 작품이 1,000여 작품에 이른다. 충분히 연륜과 실력이 된다고 생각해 50대 초반부터 겁 없이 무형문화재에 도전했다. 마침내 결실을 맺게 돼 영광스럽다. 전승 및 발전시켜야 할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다. 이전보다 더욱 노력하면서 각자의 기법과 기교 등이 오롯이 전수될 수 있도록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이겠다.

Q. ‘각자’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목판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것을 ‘각자’라고 한다. 서각이나 각서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고궁이나 사찰 건축물에 걸려 있는 목판과 현판을 떠올리면 된다. 전통용 서각은 정서각과 반서각이 있다. 정서각은 글씨가 바로 읽힌다. 고궁, 사찰, 한옥 등에 있는 현판이나 주련 등이다. 반서각은 팔만대장경처럼 글씨가 반대로 새겨진 인쇄용 서각이다. 각자는 나무와 끌, 서예가 결합된 종합예술이다. 또한 글자를 모르면 각자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다.

Q. 글자를 모르면 각자를 못한다는 말에 대해 더 설명해 주신다면.

있는 그대로 새기는 것은 각자장이 아니다. 뺄 건 빼고 더할 건 더해야 한다. 붓 가는 느낌과 칼이 새기는 느낌이 같이 나와야 한다. 음각, 양각 등 파내는 각자 기법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음각은 문자를 파내는 기법인데, 그려진 대로 파내다간 글자가 죽어버린다. 서예를 하는 이들이 획 전부에 힘을 주지 않듯 강약을 조절해야 한다는 뜻이다. 서체에 따라 기법은 당연히 다르다. 획이 다른 것은 음양각이나 음각으로 더 돋보이게 하는 등의 센스가 필요하다. 또,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자의 요청대로 해줘야 하지만 더 좋은 판을 가져갈 수 있도록 권유하고 설명도 해야 한다. 이제 막 입문한 초보자들은 그림이 더 어렵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이렇듯 글자를 보는 눈이 있어야하므로 훨씬 어렵다.

Q. 각자장의 역량은 어디에서 차이가 나나.

앞서 말했듯 서예 필법을 모르면 글자의 운용 방법을 모르므로 서각에 문제가 생긴다. 도로아미타불이다. 또 제대로 배운다면 칼맛은 흉내 낼 수 있을지언정 작품 활동을 하기 어렵다. 새로운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개발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적인 요소나 예술성, 심미안 등이 필요하다. 각자장으로서 가장 필요한 역량이라 생각한다.

Q. 어떻게 새기나.

망치를 든 오른손이 강약을 조절한다. 서슴없이 내리치는 것 같지만 끌을 든 왼손의 움직임을 제어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이 중요하다. 칼과 망치, 끌이 만드는 진동은 나무판에서 글씨로 재탄생된다.

Q. 우리나라 최초 각자장으로 지정된 故 오옥진 선생이 스승이다. 그는 어떤 스승이었나.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인사동에 갔을 때 스승님의 작품을 보고 이 일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천명이라 생각했다. 곧장 문하생으로 들어가길 원했으나 동·서양화 대가들의 추천서가 있어야 한다더라.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군입대를 했는데 목공병으로 활약하게 됐다. 어떻게 해도 이 일을 할 팔자였던 것 같다. 제대 후 운 좋게도 서예가인 친구의 도움을 받게 됐다. 일중 김충현 선생의 명함을 받아 입문하게 됐다. 2년간 배운 후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가정을 돌봤다. 이후 연간 5회 스승님을 찾아봬 기법을 배우고 특수한 일들을 도왔다. 돌아가실 때까지 평생을 배웠다. 당신을 모시길 바라셨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게 마음에 걸린다. 스승을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난다. 여전히 그립고 감사하다. 백세지사(百世之師)에 걸맞은 분이시다. 6.25참전용사셨던 스승님은 외눈박이신데 각자장으로서 완벽하고 섬세한 작업을 해내셨다. 스승을 따라 가끔 나도 한눈을 감고 작업을 하는데, 쉽지 않다. 복원이며 새로운 작업을 완벽히 해내신 스승님을 존경한다.

Q. 타고나길 손재주가 좋았나

시골에서 자란 터라 나무를 깎아 만들고 노는 게 전부였다. 팽이며 얼레, 썰매 등 손재주를 뽐낼 일이 많았다. 또, 서각이라는 것을 인지도 못한 채 조각도를 사서 요리조리 솜씨를 부려보기도 했다. 그때 스스로 깨친 부분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제법 흉내를 좀 냈던지 이웃들이 가훈이나 문패 등을 부탁하기도 했다. 서당에서 서예도 배워 글을 깨치고 붓 잡는 법도 배웠다.

Q. 재료는 어떻게 준비하나. 바닷물에 넣는다는 말이 있던데.

바닷물에 넣은 뒤 건조한다는 건 옛날 방식이다. 나무는 진(수액)이 있다. 자르면 진이 마르며 뒤틀리거나 갈라지는데, 바닷물에 넣으면 진이 분해돼 당기는 힘이 사라진다. 삭혀지는 과정에서 벌레가 먹지 않고 썩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나무 고유의 색이나 무늬를 살리기 위해 요새는 그런 방법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실제 통나무를 바닷물에 넣어둔 후 바닷물이 들어간 깊이를 조사해 보았더니 나무껍질 아래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는 결과도 있다. 나는 구비한 재료 중 70% 이상이 직접 자르고 말린 것들이다. 저수지, 시궁창 같은데 몇 년간 묵힌 뒤 말려서 재단한 것이다.

Q. 무형문화재 심사 당시 에피소드가 있었다던데.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활동 중인 김각한 각자장이 나와 동문수학하던 후배다. 스승님을 가장 가까이서 모셨기에 가장 객관적인 시선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가 나를 심사하러 올 무형문화재 심사위원에게 실력으로나 인성으로나 국가무형문화재 자리에는 내가 있어야 했다는 말을 했다는 걸 전해 들었다. 김 각자장의 인품에 큰 고마움을 느꼈다. 각자의 위치에서 더욱 정진해 후손들에게 전통각자 기능을 전승하겠다.

Q. 인쇄술이 발달한 지금, 각자가 가진 존재 의미에 대해.

맞다. 세상은 빠르게 변한다. 하지만 우리가 편리성이나 쓰임새로만 보면 안 된다. 누군가는 이것이 있었다는 것을 후세에 알려주는 책무를 다 해야 한다. 복원의 의미도 그것이다. 문화유산이 지닌 문화적 중요성과 가치를 유지하며 가능한 한 손상 없이 예술적, 역사적 의미를 확고히 해주어야 한다. 전통을 이어 우리나라 고유의 얼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게는 각자장으로서도 그렇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날만한, 좋은 기회들이 많이 있었다. 하지만 여수 토박이로서 이곳에 남아 우둔하게 작업만 했다. 오른손 검지손가락 한 마디도 작업 중 잃었다. 하지만 후회되지 않는 삶이다. 내 삶이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각자장으로서 곽금원은 어떻게 됐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앞으로도 지역특성을 살리고 각자의 정체성 확립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스승님과 창덕궁 복원 작업을 함께 한 적이 있는데, 우수한 우리나라 문화재를 새로운 기법으로 복원 및 보존하는데 기꺼이 내 역할과 사명을 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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