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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뮤직 줌 <49> 쿠프랭의 무덤

인상주의 음악의 선구자 모리스 라벨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1차 세계대전 참전
프랑스 작곡가 쿠프랭·전사한 친구 헌정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투영되기도

2022년 03월 17일(목) 18:01
1918년 출판 당시 쿠프랭의 무덤 악보 표지
볼레로의 작곡자로 잘 알려진 모리스 라벨(Maurice Joseph Ravel, 1875∼1937)은 드뷔시와 더불어 인상주의 음악의 선두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음악적 색채감과 리듬은 후에 다양한 춤곡과 관현악 기법을 가미하여 스페인 랩소디, 다프네와 클로에 등을 남겼고, 무소르크스키, 전람회의 그림의 관현악 버전을 편곡해 서양음악의 관현악 기법의 완성을 보여 주었다.

모리스 라벨
라벨은 스페인 국경 근방의 어촌 도시인 시부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스위스 출신 자동차 엔진 계통의 선구자로 특허를 받은 과학자였다. 특히 음악을 좋아해 제네바 음악학교 피아노과를 1등으로 졸업할 정도로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라벨의 어머니는 바스크인으로 노래와 춤을 좋아하며 26세에 결혼해 파리에 정착했다. 그들은 라벨의 재능을 알아차리고, 그가 7세가 되던 해, 앙리 기스(Henri Ghys, 1839 ~ 1908) 선생의 가르침을 받게 되는데 기스의 노트에 따르면 라벨은 ‘총명하고 재주 있는 어린아이’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라벨은 14세 되던 해 파리 음악원 피아노과에 입학해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e)에게 배우며 쇼팽과 리스트의 피아노 기법에 흥미를 갖고, 러시아 5인조 작품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또한 작곡가뿐만 아니라 시인, 음악평론가, 화가, 조각가 등과 모임을 만들어 정치, 사회, 문화 등 다방면의 토론을 즐겼다고 한다.

물의 희롱, 거울, 밤의 가스파르 등 피아노 독주곡뿐만 아니라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과 사장조 피아노 협주곡 등 피아니스틱한 작품을 남긴 라벨이 직접 전쟁에 참전한 작곡가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다수의 가곡과 피아노 3중주, 우아하고 감상적인 왈츠 등을 완성했다. 이후 전쟁이 발발하자 불타는 애국심으로 공군에 입대하길 희망했다. 하지만 작은 키와 병약한 체질로 조종사가 되지 못했고, 대신 운전병으로 후방에서 프랑스 부상병을 실어 나르는 앰뷸런스 운전병사로 복무하며 인생의 새로운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전쟁에서 약육강식 투쟁의 역사를 실감하며 포탄이 쏟아지는 전선에서 죽고 죽이는 인간의 극한 상황을 목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전쟁의 상처와 아픔, 고통 등은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917년 1월 갑작스런 모친의 죽음을 겪으면서 그의 건강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이질과 동상에 걸려 조기 전역하게 되었다. 이후 충격으로 작곡을 잠시 멈추게 된 그는 프랑스의 클라브생 음악가인 프랑수아 쿠프랭(Francois Couperin, 1668~1733)을 추모하는 음악적 찬사이자,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그의 친구들에 대한 애도를 위해 ‘쿠프랭의 무덤(Le Tombeau de Couperin)’을 작곡했다. 원곡은 피아노 독주를 위한 여섯 개(전주곡, 푸가, 포를란, 리고동, 미뉴엣, 토카타)의 춤곡으로 완성해 1919년 푸가와 토카타를 제외한 네 곡을 관현악 버전으로 편곡하여 이듬해 파리에서 초연됐다.

라벨은 이 작품에서 바로크 시대의 음향을 만들기 위해 선법적인 화성과 독특한 장식음을 구현했다. 또한 그가 20세기 인상주의 음악의 대가답게 반음계적 선율, 장7화음, 9화음을 사용하고, 공허하고 창백한 병진행 등 신고전주의적 기법들을 선보이고 있다.

라벨 생가의 피아노
모음곡 형식으로 구성된 그의 마지막 피아노 독주곡 ‘쿠프랭의 무덤’은 여섯 명의 친구들에게 각각 헌정되었다. ‘어미거위 모음곡’을 필사한 친구 자크 샤를로(Jacques Charlot)에게 헌정된 1곡 전주곡(Prelude)은 자유로운 분위기와 투명한 장식음이 인상적이다. 4번째 곡 리고동은 피에르와 파스칼 고뎅 형제에게 헌정된 작품으로 전장에서 포탄을 맞아 동시에 사망해 라벨이 더 큰 슬픔을 간직한 곡이다. 이 형제들과는 어릴 적 추억이 많은 사이로 이들과 함께 춤을 추는 역동적인 모습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여섯 번째 곡 토카타는 군대의 행진을 연상시키는 무궁동(無窮動 :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길이와 같은 빠르기의 음표로 진행되는 빠른 기악곡) 리듬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이곡의 헌정은 이 곡을 초연한 마르게리트 롱(Marguerite Long,1874~1966)의 남편이었던 음악학자 조셉 드 말리아베(Joseph de Marliave)에게 헌정했다.

라벨 생가의 피아노
전쟁에 직접 참가하며 친구들을 죽음을 애도한 라벨의 특별한 작품이 더 귀에 들어오는 이유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고한 시민과 아이들이 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 빨리 우크라이나를 향한 러시아의 모든 군사적 행동이 중단되길 바라며 전쟁에서 사망한 친구를 그리는 이 음악에 주목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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