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옥 조선장 “가거도 멸치잡이 배, 평생 천명”

한선, 밑이 편평한 평저선이 특징
뽕나무 나무못, 쇠못보다 단단

삼면이 바다로 이루어진 우리나라에서 배는 중요한 교통 수단이자 삶을 풍요롭게 하는 ㅇㅇ이었다. 특히 섬에서 나고 자란 이들에게는 생업으로써 평생 활용됐는데 가거도 멸치잡이 배, 서해 조기잡이 중선망어선, 통영 어선 통구미 등이다. 이중 ‘한선(韓船)’으로써는 가장 늦게까지 활용 되었던 가거도 멸치잡이 배를 복원한 조일옥 조선장을 통해 가거도배의 역사와 한국 전통 배의 제작과정 등에 대해 알아본다.

글 민슬기 기자 사진 김태규 기자

◇ 조일옥 도목수와 가거도배

조일옥 조선장(82)은 70년 이상의 도목수다. 지난 2013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됐으며 지난 1997년 목포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추진한 가거도 멸치잡이 배 복원, 2009년 국립중앙과학관의 서해안 고기잡이배 복원 등 평생 전통배 복원에 노력해 왔다.
그가 전통배 복원에 힘쓰는 것은 단순히 ‘우리 것’이어서가 아니다. 본인이 직접 탔고, 만들었으며 수천 척을 납품했다. 한선에 대한 우수성은 본인이 가장 잘 안다.
그는 가거도에서 멸치잡이로 생업을 하던 이들과 마을 목수들을 도우며 가거도배를 만드는 것을 배웠다. 멸치잡이도 참여하며 ‘가거도배’의 전신이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록하는 것을 즐기고 중요하게 생각했던 그는 대대로 전해지는 방법을 일기장에 빠짐없이 적어두었다. 복원에 큰 힘을 싣어준 일기장은 천 년 이상 이어진 조상의 해상 기술이 오롯이 담겨있다. 선조들은 도면없이 눈짐작으로만 형태를 잡고 만들었다.
한선은 밑이 편평한 평저선으로 만든다. 강 상류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배 밑바닥이 넓고 탄력 있다. 우리나라 지형적 조건에 가장 적합한 상태로 발달됐다. 서양의 V자 첨저선은 깊은 바다나 항해에 어울린다. 만조나 해안, 부두로 들어와 정박할 때 안정적으로 있을 수 없고 옆으로 눕기 일쑤다. 한선은 암초가 많고 조수간만의 차가 커서 갯벌이 발달한 우리나라 지형에 가장 알맞다.
그러나 1910년 경술국치로부터 1945년까지 35년간에 걸친 일본의 식민통치와 조선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해 맥이 끊어져 있는 상태다. 일찍부터 어업이 발달해 어로기술이 뛰어났던 서남해도 전통 한선보다 다양한 동력선과 FRP(섬유강화플라스틱)배를 사용하고 있다.
가거도 멸치잡이 배 역시 마찬가지다. 조일옥 조선장에 의해 근근이 이어지고 있지만, 우수한 용도에 비해 사용되지 않고 자료로 활용되거나 소장용으로 판매될 소형 배만 작업 중이다. 현재 둘째 아들이 대를 잇겠다고 나섰으나 과거의 명맥까지 오롯이 이을 수 있을지 기대도 되면서 걱정도 앞선다.

◇ 가시목, 쇠못보다 단단해

조일옥 조선장이 직접 그리고 설계한 작업도

가거도 멸치잡이 배를 만들 때 그는 배밑판은 가시목을 사용했고, 삼나무와 소나무를 사용해 배밑재로 활용했다. 가시목은 단단해 박아도 깨지지 않는다. 나무못은 뽕나무를 사용한다. 뽕나무는 삶은 다음 말리면 쇠보다 단단해지는 성질이 있다. 또 수명이 오래간다. 절대 쇠못은 사용하지 않는다. 쇠못을 쓰지 않고 나무못을 사용해 해수에 의한 부식문제도 해결했다.
“가거도에 있는 나무란 나무는 내가 다 갖다 썼다”는 조일옥 조선장의 말은 고향과 마을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있다. 멸치잡이로 생업을 이었던 마을 사람들은 너나할 것없이 배 짓기에 참여했고, 갯벌에 묻혀있는 배를 파낼 때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나와 도왔다.
타 조선소에서는 물을 뿌려 배를 띄우거나 몇 번 띄우면 물이 새 천으로 막는 등 보수 작업을 하는데, 잘 만든 배는 물을 뿌리지 않고 띄워도, 절대 물이 새지도 않는다. 조일목 조선장의 배가 그렇다.

◇ 사라져가는 배 복원, 의미는?

복원된 가거도멸치잡이배 (출처 문화재청)

현재 바다에 뜨는 배 중 95%는 FRP(섬유강화플라스틱)배다. 하지만 어선으로는 한선의 쓸모가 더욱 높게 평가 된다. 특유의 하부 구조 덕분에 선체의 부양력이 더 뛰어난데다 나무로만 만들었기에 바다에 가라앉아도 오염되지 않는다. 자연 그대로 분해된다.
조일옥 조선장은 가거도 멸치잡이 배에 대해 ‘천명’이라고 말했다.
“번쩍거리는 멸치떼가 잔뜩 채워진 그물을 끌어올리면 힘든 것도 잊고 그저 신명이 났다”.
당시를 떠올리며 흥얼흥얼 가거도 멸치잡이 노래를 되뇌이는 조일옥 조선장의 주름진 얼굴은 그때로 돌아간 듯 말갛다.
바다라는 절대자에 대한 경건함을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마주했던 선조들의 지혜. 조선장들의 기술을 보존하고 승계해야함에도 여전히 국가무형문화재 조선장의 자리는 공석이다.
국립목포해양문화재연구소 측은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지역적 특색이 강하고 자료 증빙 등 행정적인 문제 등이 수반되어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현재 전국에는 조일옥 조선장을 포함해 6명의 조선장들이 있다. 어업이 발달한 전라도 지역에만 4명이 있지만 지역무형문화재로만 보호되고 있는 실정이다.

복원된 가거도멸치잡이배 (출처 문화재청)

목포에 위치한 국립목포해양문화재연구소 측은 한선을 복원하고 지키려는 이유에 대해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도면이나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며 “배의 다양성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답했다. 수중에서 유물을 건져 복원하는 이들은 고려 선박이나 통일신라 등 수중에서 발굴된 배들을 살펴보면 선조들의 기술이 얼마나 우수했는지 알 수 있다 말했다.
“우리나라 배라고 하면 거북선 정도만 떠올리게 되는데 생업에 종사한 배도 숭고하지 않냐”며 “배의 형태를 추정할 수 있게끔 전남의 조선장들을 도와 연구를 꾸준히 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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