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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결혼시키기

탁현수 수필가·문학박사

2022년 02월 23일(수) 13:28
미국 작가 ‘앤 패디먼’의 저서 ‘엑스 리브리스(Exlibris)’에는 서재 결혼시키기(Marrying Libraries)라는 글이 담겨있다. 작가 부부가 결혼 5년 만에 각자의 책(서재)을 합치는 이야기이다. 영국식 정원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남편의 책과 프랑스식 정원처럼 주제에 따라 정돈미를 갖춘 아내의 책들과의 만남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책을 잘 찾았지만, 부인은 한참씩 헤맸다. 부부는 살아가기 위한 수단으로 정리하고 어질기를 수많은 시간 반복한 후에야 진정한 서재의 결혼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책에 관해서라면 내게도 사연이 많다. 결혼 후 남편은 혼자서 쓰는 서재를 가지고 있었고, 내 책은 아이 방 언저리 여기저기에 책장을 두고 육아와 독서를 병행했다.

아이가 자라 제 방의 구획에 정확한 선을 그을 때쯤, 내 책들은 집에서 가장 큰 공간에 자리 잡은 남편의 서재 한 귀퉁이로 이사를 들었다. 논문집 위주의 역사 서적들이 연륜을 안고 떡 버티고 있는 속에 갓 결혼한 새색시처럼 다소곳이 들어앉았다. 문학과 역사, 인문학이라는 틀 안에서 보면 비슷한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엄밀히 말해 성격이 다른 두 종류의 책들은 서로 마주 보며 어색해했다. 육지에서도 내륙 산골에서 자란 내가 남편의 고향인 남해안 바닷가를 찾았을 때의 느낌이 바로 그랬을까.

아무튼 남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책들이 섞이지 않도록 틈만 나면 갈무리에 바빴다. 그에 반해 남편은 몇 권이고 한꺼번에 보다가 펼쳐두기도 하고 아무 곳에나 쌓아두기도 하는 식이었으니 터줏대감 노릇을 단단히 하는 편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종일 밖에서 지내는 남편보다는 내가 서재를 더 많은 시간 이용하게 되었다. 슬슬 경계가 사라지면서 두 책들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는가 하면 질서 없이 함께 쌓여있기도 했다. 굳이 네 책 내 책 구분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고나 할까.

그 무렵부터 휴일이면 상대방이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을 권하기도 하고, 펼쳐진 채 아무렇게나 던져둔 책에 책갈피를 끼워주는 등 보이지 않게 마음을 썼다. 결혼 초 모든 가사노동이 내 담당이었던 것이 아이가 태어나면서 슬슬 청소기도 밀어주고, 빨래도 널어주었을 때의 기쁨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어느덧 우리 집의 서재는 무질서하지만 시골마당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일가를 이루었다. 다양한 역사서를 종종 섭렵하던 나는 고전문학 관련 과목들을 강의할 때 역사적 시대 배경이나 상황을 실감 나게 들어 앉힐 수 있게 되었고, 각종 문화유산 강의와 해설은 물론 그에 관한 글들도 지면을 통해 발표해왔다. 남편 역시 문학 행사 성격을 띤 여러 응모에 당선되어 상금까지 간간이 타들고 온다.

서로 다른 색깔을 간직한 것들끼리 결합해 또 다른 다양한 색깔들을 창조해내는 결혼. 어느 때부터 아들 녀석까지 우리의 서재를 기웃거리고 다닌다. 그 또한 결혼이 주는 창조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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