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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 인간’ <16> 아버지의 이름으로

우리의 진정한 영웅, 아버지
실화 통해 무모한 공권력 비판
역사적 풍란과 가족 역사 고찰
오판이 만든 사회적 죽음 반문

2022년 02월 10일(목) 18:24
‘아버지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the Father, 1993년)는 아버지의 고귀한 사랑을 통해 무모한 공권력을 비판한다. 역사 속 투쟁의 명분을 정치적 이야기가 아닌 사적 소재에서 풀어가는 영화다.

특히 영국과 아일랜드의 정치적 긴장 관계에 함몰되지 않으면서, 아버지와 아들의 오해와 화해 그리고 개인의 성장과 성숙의 과정을 이야기로 만들어간다. 역사적 풍랑과 한 가족의 역사를 평행선에 놓고 고찰한 수작이다.

영화는 영국에서 길포드 4인방 사건으로 불리는 실제 사건을 재구성해 제작된다. 4인방의 주범 격인 제리 콘론의 자전적 저술인 ‘증명된 결백’을 바탕으로 한다.

1974년 잉글랜드 길퍼드의 한 술집에서 끔찍한 폭탄테러가 발생한다. 그 당시는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통일을 주장하는 아일랜드계 반 군사조직인 IRA(Irish Republican Army)가 정치, 군사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시절이다.

제리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고철 좀도둑질을 하다 아버지 주세페 콘론의 주선으로 잉글랜드로 건너간다. 제리는 일정한 거처 없이 히피들과 어울리다 엉뚱하게 이 폭탄테러의 범인으로 몰린다.

경찰은 신빙성도 없는 가짜 증거로 제리 일당을 체포한다. 이어 체포된 아들의 변호사를 구하러 온 아버지 주세페도 체포된다. 불과 며칠 전 제정된 특별법은 폭탄테러의 혐의자를 영장 없이 7일간 구금할 수 있는 권한을 경찰에 부여한다.

IRA가 폭탄을 제조하듯 경찰은 증거를 조작해낸다. 상상을 넘는 고문, 협박, 유도, 기망, 회유 등 각종 수법을 동원해 자백을 얻어낸다. 제리도 아버지를 권총으로 쏘아 죽이겠다는 협박에 굴복한다. 그리고 네 명 모두 살인죄로 기소된다.

또한 제리 아버지, 숙모, 14살 소년 패트릭을 포함한 맥과이어어 7인방도 추가로 기소된다. 혐의는 폭발물 제조와 범인은닉죄다. 경찰은 창의적 위증을 통해 이들에 대한 유죄 증거를 제시한다. 그리고 11명 전원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진다.

아버지와 아들은 황색 견장을 달고 같은 감옥에 수용된다. 영국 교도소에서 황색 견장은 반사회적 범죄자라는 낙인의 표지다. 한방에 수감된 부자는 대립과 갈등을 겪으며 좌충우돌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리는 진정한 영웅은 아버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는 결국 옥중에서 사망한다. 이에 격분한 제리는 인권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아버지와 자신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일어선다.

영화는 제리의 회고로 사건의 경위가 보고된다. 중간중간 자동차를 모는 여인의 초조한 모습이 복선을 암시한다. 그 암시는 영화 후반에 그녀가 진실을 밝혀내는 인권 변호사 피어스임이 밝혀지면서 실마리가 풀린다.

제리는 15년 동안 억울한 감옥살이 후 풀려난다. 1989년 항소심에서 경찰 조사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나 무죄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와 함께 유죄 판결을 받은 다른 10명도 무죄가 밝혀진다. 이 사건은 영국 사법사상 최대 잘못으로 여전히 회자된다.

더욱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아버지에 의한 아들의 인간성 회복이다. 아버지는 불의에 끊임없이 맞서면서도 폭력을 거부하고 감옥에서 쓸쓸하게 죽어간다. 그 아버지는 잡역부에 제대로 교육도 못 받은 초라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정의와 자유에 대해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억압하는 거대한 권력에 홀로 맞선다. 결국, 영화는 오명을 진 채 죽은 아버지의 이름으로 진실을 밝혀내는 사부곡인 셈이다.

한편 영화는 우리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수사, 재판, 교도소 등의 현실도 영화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고문에 의한 거짓 자백, 긴 수사 기간, 공평성에 의문을 던지는 재판 등이 그렇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인간이 하는 재판에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오판을 낳는 구조를 더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무고한 사람을 절망과 죽음으로 내몰았던 폭력과 억압의 망령이 우리 속에 살아 있는지 반문해본다.

/사진 출처 = 유아이피-씨아이씨 영화및비디오배급(유)

‘정복자가 저지른 잔혹함의 부채’

-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적 관계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를 이해하려면 영국과 아일랜드의 역사적, 정치적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아일랜드는 17세기 이후 영국의 지배를 받다가 1922년 독립한다. 그 뒤 종교 갈등이 대두된다. 아일랜드는 가톨릭 신도들 주도로 건국된 나라다.

하지만 개신교 신도가 위주인 북아일랜드 6개 주가 아일랜드공화국 편입을 거부하고 영국연방에 잔류하기로 한다. 이 때문에 분란이 시작된다. 영국은 무력을 동원해 북아일랜드 지역에 대한 통치를 기정사실로 한다.

영국령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통일을 요구하는 아일랜드계 반 군사조직 IRA는 1969년부터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를 중심으로 테러를 벌인다. 이 갈등으로 1990년대 초까지 수천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 같은 종교 갈등을 봉합하려는 노력은 1990년대 후반 결실을 본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중재로 1998년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이 체결된다. 강경 개신교 정당인 민주연합당과 가톨릭 원주민 정당인 신페인당은 이 협정을 통해 화합을 약속한다.

IRA는 2005년 공식적으로 무장 투쟁 철회를 선언한다. 총이 아닌 선거로 투쟁 방식을 바꾼다. 문제는 영국군만이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민간인들까지 피해를 보는 일이 늘어나 비난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편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영화 ‘아버지의 이름으로’의 소재가 됐던 1974년 IRA의 영국 길포드 술집 폭파사건과 관련해 공식으로 사과한다.

그는 술집 폭탄테러의 주모자로 몰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제리 콘론 가족 등에게 “그들이 겪은 시련과 부당함에 사과를 표한다”며 “가족들이 겪은 상실감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다.

나라마다 인접국에 대해 역사가 저지른 잔혹함의 부채를 지고 사는 경우가 많다. 영국이 아일랜드에 진 부채도 그럴 것이다. 그 부채는 어쩌면 한때 정복자가 됐던 나라에 공통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부채의 중요한 부분은 오만과 편견에서 유래한 것이다. 영화 속 아일랜드인의 범죄를 수사하는 영국 경찰의 태도에도 적은 의미의 미필적 고의가 내포돼 있다. 어느 나라에서나 안보와 치안이란 명분은 잔혹한 인권유린의 위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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