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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이 뿌리내릴 곳은

이연수(부국장 겸 경제부장)

2022년 01월 25일(화) 18:20
“이번 설엔 안 내려갈게요.”

큰 애가 설 연휴에 집에 내려오지 않겠단다. 근무지에서 이틀 밖에 쉬지 않는데다, 오가면서 고속도로에서 허비할 시간을 생각하면 그냥 이틀 푹 쉬는 게 낫겠다는 게 이유다.

그래, 그렇게 하렴. 서운함이 스쳤지만 보고싶은 마음 한 켠을 이내 접는데 옆자리 동료가 한 마디 거든다. “요즘 애들은 서울이 좋은가봐. 한번 올라가면 집에 내려올 생각을 안해. 심지어 애들 엄마도 서울로 보내 놓으니까 거기가 좋대.”

큰 애가 집에 내려오지 않는 게 이번 설만은 아니다. 공부, 아르바이트, 촬영 등 그 때 그 때 꼭 일이 생겼다. 으레껏 집에 모여 좋든싫든 구성원 각자의 ‘도리’가 강요되는 즐겁지 않은 명절을 지금의 ‘MZ세대’에게 강요할 순 없다. 힘든 명절을 보내고 보복소비에 붐비는 연휴 뒤끝의 백화점, 피부관리샵, 성형외과, 골프장은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하다.



-고학력 청년 취업 ‘좁은 문’



문제는 ‘한번 올라가면 내려올 생각을 안하는’ 청년들의 삶이다. 그저 편하고 좋아서가 아니라 불안정하고 고단하며 위험에 내몰리면서도 떠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일자리 구하기를 포기한 구직단념자는 62만 8,000명으로 연간 기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6개월 이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장기 실업자 13만명 중 절반은 2030 청년층이다.

지난해 대졸 이상 취업률은 65.1%로 2011년 이후 최저치였다. 수도권 졸업자의 취업률이 66.8%, 비수도권 취업률이 63.9%다.

취업자든 비취업자든 청년들은 ‘집’ 아닌 ‘방’ 한 칸에 살며 적지않은 월세를 지출하면서도 좀체로 수도권을 떠나지 못한다.

수도권이라는 특정 지역에 그들이 몰리는 건 어찌보면 그 곳에 바늘구멍이라 할지라도 ‘기회’가 있고 지방과는 다른 ‘문화’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회와 문화가 있는 곳에 경제가 있고, 청년들은 자석처럼 그곳을 떠날 수 없다.

나주혁신도시 이전 16개 기관이 입주를 시작한 지 8년이 됐지만 지금도 금요일 오후면 임직원 중 절반은 가족이 있는 수도권으로 떠나는 열차와 버스에 몸을 싣는다. 서울의 삶을 떠날 수 없는 가족들과 그들은 동반 이주하지 못했다.

2020년 기준 전국 1,000대 기업 중 743곳이 수도권에 위치한다. 100대 기업으로 좁혀보면 서울·인천·경기에만 91곳, 이 중 78곳이 서울에 있다. 물론 이들 일자리가 청년들에게 열려있는 건 아니다. 양질의 일자리로 향하는 문은 청년들에겐 너무나 좁다.

한국경총의 조사 결과가 눈에 띈다. 청년 구직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일자리가 공공기관 직원이나 공무원이라는 것.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사항으로는 임금 및 복지수준(37.6%), 고용 안정성(21.7%), 워라밸 및 기업문화(20.5%) 순으로 나타났다. 어디까지나 청년들의 ‘바람’이다.

청년 4명 중 1명은 실업자이며, 취업자 중에서도 40%는 비정규직인 현실 속 이런 조사 결과는 고학력 백수청년의 심각성을 피부에 와닿게 한다.

2007년 출간된 우석훈·박권일의 ‘88만원 세대’는 취업난과 비정규직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20대의 불안을 드러낸 책이었다. 88만원 세대는 이후 삶의 요소를 하나씩 포기하는 ‘N포 세대’를 거쳐 ‘MZ세대’에 이르렀다.

여야 대선 후보들은 MZ세대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한 노력을 펼치고 있다. 청년기본소득 지급, 주택 공급 물량 배정, 병사 월급 200만원, 가상자산 투자수익 비과세 등인데 당면한 청년문제의 궁극적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청년일자리는 고사하고 변변한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 없는 지방에도 기회가, 일자리가, 그래서 청년이 모일 수 있을까.



-지방에도 일자리와 기회를



너무 빨라서 숨 막히고, 쳇바퀴 도는 삶은 고단하지만 일자리가 있고, 문화가 있고, 경제가 돌아가는 곳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하다. 청년들이 뿌리 내릴 기회를 지방에도 만들어 줘야 한다.

노·사·민·정 등 경제주체가 합의를 이루고, 이에 기반해 사업을 벌이는 상생형 지역일자리 등은 청년들이 타지로 떠나지 않고 워라밸 균형을 이룬 삶을 일궈갈 수 있는 동력이 될 것이다.

청년들이 더이상 시급 알바를, 비정규직을 전전하지 않기를. 즐겁지 않고 창조적이지 않은 일, 위험하고 누구도 하기 싫은 일자리에 채용돼 위태로운 직장생활을 이어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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