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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 인간’ <14> 아메리칸 뷰티

인간의 수치심과 불확실성 그리고 사회적 치부
따뜻한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사회
모두가 외롭고 가련한 나머지 인간
그저 통과할 뿐, 통제할 수 없는 시간

2022년 01월 13일(목) 17:11
‘아메리칸 뷰티(American Beauty, 1999)’는 미국 중산층 가정의 허상과 인간의 수치심에 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폭로한 작품이다.

제목인 ‘아메리칸 뷰티’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진한 푸른색을 띤 적색의 장미 품종이다. 미국인의 아름다움이란 중의적 의미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역설적 표현이다.

개봉 당시 미국 사회에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섹스, 마약, 동성애, 원조교제, 총기, 중산층 몰락 등을 통렬하게 비꼬는 제목인 셈이다. 그래서 아메리칸 뷰티라고 쓰고 미국 사회의 치부라고 읽는다.

영화는 넓은 의미의 미국인과 좁게는 미국 중산층의 추레한 현실, 그들의 허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꼬집는 형식을 취한다. 그러면서도 전통적 가족주의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를 봉합하는 균형감각을 보여준다.

특히 수치심이 어떻게 자신, 가족, 이웃의 삶을 파괴하고 망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스스로 사랑받을 자격과 가치가 없다고 느끼는 수치심은 타인을 괴롭히고, 비난하고, 모욕하는, 잘못된 행동의 원인이 된다. 그 결과 자신의 삶도 망가진다.

주인공인 레스터 번햄은 가정과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는 중년의 가장이다. 어느 날 직장상사는 그를 불러 구조조정을 거론하며 직무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한다. 수치스러운 순간이다.

수치심을 느낄 때 인간은 주변 사람에게 따뜻한 눈길의 공감을 원한다. 레스터 역시 그랬다. 저녁 식사 때 딸에게 자신의 고충을 얘기한다. 그러나 딸의 반응은 차갑다. 그리고 아내도 눈빛으로 그를 비난한다.

레스터의 수치감은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다. 그는 직장과 가정 양쪽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 사랑을 얻고 인정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된다.

그는 놓아버리기를 선택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장의 역할도 멈춘다. 가정과 직장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을 멈춘다. 그래야 수치심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가치한 것과 관계를 스스로 끊는 것이 정당한 행동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레스터의 아내 캐롤린 번햄도 마찬가지다. 부동산 중개업자인 그녀도 성공한 전문직 여성을 강렬히 원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경쟁자에게 번번이 밀리면서 현실에 좌절한다. 오랫동안 남편과 육체적 관계는 물론 정신적 유대도 저버린 지 오래다. 경쟁자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불륜에 빠진다.

부동산을 매매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판매에 실패한 후 홀로 남겨진 캐롤린은 울음을 터뜨린다. 그리고 자기 손으로 자기 뺨을 때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눈물은 중개업자로서 자격이 없는 본인에 대한 수치심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이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고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최면을 거는 행동의 일종이다. 그녀 역시 가족 중 누구에게서도 따뜻한 공감과 위로를 받지 못한다.

그녀에게 남편은 위로가 아닌 골칫덩어리다. 아내 반대에도 회사를 그만둔 남자, 모든 경제적 부담을 아내에게 떠넘기는 남자, 아내 옆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남자일 뿐이다. 캐롤린이 느끼는 분노 속에서는 남편과 딸에 대한 수치심이 잠재돼 있다.

더욱이 레스터를 죽이는 이웃집 남자 프랭크 핏츠는 주목할 인물이다. 해병대 대령인 그는 동성애자다. 그러나 동성애를 경멸하며 증오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스스로 수치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그는 규율을 강조하는 군대 문화에 중독된다. 가족에게도 규율을 강요한다. 이로 인해 그의 가족은 강압 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다. 결국, 아들은 정신이상이 온다. 동성애에 대한 그의 수치심이 가족을 망친 셈이다.

그의 살인도 수치심에서 비롯된다. 레스터를 동성애자로 오인하고 그에게 키스하지만, 레스터는 동성애자가 아니라며 그를 밀쳐낸다. 거부당한 프랭크는 큰 수치심을 느낀다. 수치심은 살인을 부른다. 레스터가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소문을 낼 것만 같은 상상은 극한의 생각에 봉착한다.

영화 속 인물들은 저마다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수치심을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모두가 외롭고 가련한 사람들이다.

비록 자기중심적이고 비뚤어진 방향으로 수치심이 표출되고 있지만, 그들의 깊은 내면에는 가족애가 자리한다. 영화는 냉정한 시선 속에서도 가족애를 부정하지 않는다.

아메리칸 뷰티는 불확실성, 위험, 수치심 등에서 벗어나기 위한 현명한 대답을 전한다. 책임감을 놓아버리거나, 가족과 단절하고, 스스로 기만을 일삼는 건 바보짓이다. 그럴수록 삶은 더욱 엉망이 된다는 목소리를 전한다.

우리 삶은 불확실성과 위험, 마음에 상처를 입을 가능성 등이 항상 존재한다. 결국, 삶의 취약성이 수시로 존재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너그럽게 수치심을 받아들이고 포용해야 한다.

/사진 출처=CJ ENM



‘수치심과 죄책감의 미로’

- 자신을 토닥여 줄 자아 만들기



아메리칸 뷰티는 수치심과 죄책감이란 심리학 미로가 숨어있는 영화다.

수치심은 기대했던 것과 다른 상황을 초래하거나 그런 감정을 느낄 때 발현된다. 그래서 인간의 애착 관계나 상호 경험 등을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생긴 틈과 왜곡을 이해하는데 필수적 요소다.

특히 수치심은 타인의 부정적 평가에서 자신을 숨기는 기능을 한다. 특정 경험을 통해 자신이 잘못되고, 어리석고, 나쁘고, 사랑스럽지 않고, 가치 없는 존재라고 느끼게 만든다. 결국 애착 행동을 비활성화시킨다.

죄책감은 어떤 행위나 감정에 대해 사회적으로 정해 놓은 법률이나 도덕적 잣대에서 멀어질 때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과한 모욕을 주거나 범죄 행위를 저질렀을 때 죄스러움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죄책감이다.

영화는 끝부분에 수치심을 극복하는 방법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리키가 찍은 비디오 장면이 그것이다. 공터에서 비닐봉지가 바람에 흩날리며 공중을 유영하는 것을 길게 찍은 장면이다.

보잘것없는 봉지를 통해 세상에 아름다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화면이다. 추하고 비극적 삶 가운데 혹은 그 너머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꿰뚫어 보는 또 다른 시선이다.

레스터의 ‘오늘은 당신의 남은 인생 중 첫 번째 날이다’라는 내레이션이 머리 언저리를 맴돈다. 시간은 우리를 통과하는 것이지, 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에 충실할 뿐이다.

죄책감은 미안한 마음과 책임감이 필요하다면, 수치심은 자신을 감싸주고 토닥여 줄 친근한 자아와 포용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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