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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내 그럴 줄 알았지

기영윤 농협구례교육원 교수

2021년 12월 23일(목) 18:01
기영윤 농협구례교육원 교수
[전남매일 기고=기영윤 농협 구례교육원 교수]최근 잦아들고는 있지만 ‘요소수 대란’을 통과하는 시점에 비난의 화살은 자연스레 정부의 무능력에 집중됐다. 그런데 날아가는 화살을 보면서 마뜩찮은 생각이 들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은 누구에게나 허용돼야할 기본권이지만 그 비판이 근본적 대책 수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또다시 일회성으로 그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비판의 논리는 대부분 이렇다.

경유 차량에 필수품인 요소수 대란은 사전 차단이 가능했다. 왜냐하면 국내 요소수 수입의 주요 공급처인 중국이 몇 개월 전에 수출 제한조치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의 수출 제한조치 역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요소수 주원료를 석탄에서 추출하는데 호주로부터 석탄 반입이 어려워지면서 중국 내 석탄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호주가 중국에 석탄 수출을 제한할 것도 이미 예상됐다. 왜냐하면 중국과 패권전쟁을 하고 있는 미국이 동맹인 호주에 압박을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가. 이렇게 간단한 사실조차 예측하지 못한 정부를 무능력하지 않다고 옹호할 수 있겠는가. 무능력한 정부가 아니라면 완벽히 막을 수 있었던 사태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비판이 정확하다면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요소수 부족 사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는 수많은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왜 미리 알려주지 않았을까. 보고 들은 것이 적은 탓인지 여기저기 검색을 해봐도 요소수와 관련된 사전 경고장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인간에게는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는 무엇이든지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스스로 납득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무기력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설명하는 능력은 자기 생활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횡행하는 수많은 음모론도 이런 설명 능력이 야기하는 부작용의 하나다.

그런데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현재는 과거가 누적돼 만들어진 것이지만 완성된 후의 모습을 예측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결과는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인 과거에는 없고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에만 존재하는 결과론적인 지식이 과거에도 존재했던 것처럼 착각하고 ‘내 그럴 줄 알았지’, ‘난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심리 현상을 ‘사후 과잉 확신’이라고 한다. ‘프레임’의 저자 최인철 교수는 이를 선견지명에 빗대어 ‘후견지명 효과’라고 명명했다. 결과를 알고 난 후에 보면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인다는 의미다.

그러니 요소수 부족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정부를 비난하기보다는 예측 가능한 사실임에도 애써 외면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고쳐나가는 편이 현명한 선택이다.

이미 일상화된 빈번한 기상재해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농산물이 기상변화에 매우 큰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부터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야 한다.

올해 쌀 생산량이 크게 늘면서 산지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현장에서는 정부의 신속한 시장격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현재 시장격리까지 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 최장기간 장마와 여름 태풍으로 수확량이 크게 줄어 이미 가격이 올라있는데다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염려하며 시장격리에 여전히 미온적인 태도다.

정부 관계자들이 간과하지 말아 야할 것이 있다. 가격은 시장참여자에게 신호다. 이번 요소수 사태는 요소수를 만들 기술이 없었던 것이 원인이 아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요소수에 비해 가격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에 민간에서 생산 자체를 포기해버린 것이 원인이다.

쌀 가격은 농가에게 생산 확대를 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하는 강력한 신호다. 더욱이 쌀은 인간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기상 조건에 크게 좌우된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징후들을 보내고 있고, 요소수는 블록버스터의 예고편과도 같다.

최인철 교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후에 내리는 모든 판단에 대한 확신을 지금보다 더욱 줄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 그럴 줄 알았지’라는 말이 튀어나오려고 할 때 ‘내가 진짜 알았을까’라고 솔직하게 자문해보는 일이 지혜다. 다른 것도 아닌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쌀이라면 더욱 그렇다. 쌀 공급 부족이 현실화됐을 때, 그때도 ‘내 그럴 줄 알았지’하며 화풀이 대상만을 찾을 수 있을까. 돌이킬 수 없는 후회보다는 대비가 백 배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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