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방짜유기’ 수천번 두드려 빚은 예술작품

이종덕 방짜유기 남다른 품질로 청와대 식기 납품
수작업으로 대량생산 불가‥맥 끊길 우려

2021년 12월 09일(목) 10:53
이종덕 방짜유기 무형문화재가 메질을 하고 있다./사진 김생훈 기자
‘방짜유기’ 수천번 두드려 빚은 예술작품

이종덕 방짜유기 남다른 품질로 청와대 식기 납품
수작업으로 대량생산 불가‥맥 끊길 우려

[전남매일=민슬기 기자] 전북 김제시 모악면에 위치한 놋 작업장에서는 1년 내내 매캐한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1,300도가 넘는 불길 속에서 꺼멓게 산화한 쇳덩이의 냄새다. 구리와 주석을 일정 비율로 합금한 쇳덩이는 치솟는 불길을 오가며 수천 번의 메질(망치질)을 견뎌낸다. 산화피막까지 제거하면 고유의 모습을 되찾고 은은한 흰빛이 도는 황색 속살을 드러낸다. 틀에 맞춰 굳히는 주물유기와 달리 일일이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방짜유기는 견고한데다 변색에 강하다.
우수한 품질과 남다른 예술성을 갖춘 방짜유기로 숱한 문화재들을 제치고 청와대 납품까지 했던 이종덕 장인을 만나본다.

◇ 가장 질 좋은 그릇 ‘방짜유기’

방짜유기는 ‘두드려’ 만드는 그릇을 뜻한다. 구리 78%, 주석 22%의 합금을 1,300도가 넘는 화염 속에 달군 뒤 망치로 내리치며 틀을 잡는 식이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배합 비율과 장인의 메질 솜씨가 어우러져야 탄생한다.
일반적으로 구리 속 주석이 용해되는 최대 용량은 14%다. 이를 초과하면 변형이 어렵다. 하지만 우리나라 고유의 유기성형기술인 메질을 통해 강도와 탄성이 증가하다보니 주석 비율도 늘고 원하는 형태로의 성형도 가능하다.
방짜가 주물이나 반방짜보다 질 좋은 그릇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오로지 망치 하나로 만든 공예작품이기 때문이다. 당기고 치기를 반복하며 일정하게 두께를 조절하는 일은 숙련된 기술을 요한다. 해당 과정을 반복할 때 놋의 상태를 살필 눈썰미도 중요하다. 달궈진 놋을 메질할 수 있는 시간은 채 1분이 되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을 넘기면 자칫 터지거나 깨질 수 있어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챌 손끝의 예민함은 필수다.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질하는 과정에서 살이 더 깎여나가는지, 덜 깎여나가는지도 중요하다. 같은 유기장이라도 실력 차이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때문에 녹인 쇳물을 일정한 틀에 부어 만드는 주물방식이나 해당 방식을 이용해 그릇을 만든 다음 여러 차례 불에 달구어 오목한 형태를 만드는 반방짜는 대량 생산에는 용이하지만 수공예품으로서의 가치는 적다.

당기고 치기를 반복하며 일정하게 두께를 조절하는 모습/사진 김생훈 기자
◇ 1세대 유기장 이종덕

이종덕 장인(62,전북무형문화재 43호)은 유기계의 이단아다. 현재 활동 중인 무형문화재들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기 때문이다. 가업을 물려받거나 문하생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유기장들과 달리 그는 타고난 기질과 솜씨로만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학연이나 혈연 등에 의지하지 않고 오롯이 본인의 외고집으로만 승부한다. 인터뷰에서 단호하게 “스승은 없다”고 말할 수 있었던 이유다. 불순물은 허용하지 않고 메질 뒤 더 단단해지는 방짜유기와 똑닮았다. ‘이종덕표’ 1세대 유기장이라해도 진배없다.
유기와 인연을 맺게 된건 당시 이봉주 선생(현 중요무형문화재 제77호)이 운영하던 유기공장에 사무직으로 취직했을 때다. 문하생으로 들어간 건 아니었지만, 어깨 너머로 습득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방짜를 만든다면서 주물로 유기를 만드는 행태가 이상해보였다. 말 그대로 ‘공장’이었다.“방짜기술을 알려줄 사람도 없었을뿐더러 주물유기를 방짜라고 만들어 파는데 전통문화라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된 방짜유기를 만들어보이겠다는 포부 아래 경기도 의왕시에 있는 한 공방을 인수했다. 전국에 내로라하는 유기장들을 모아 자문을 얻고 직접 작업했지만 골탕을 먹기 일쑤였다. 금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금을 많이 넣을수록 좋다는 조언에 그대로 시행했지만 쓰지 못하게 된 것만 여러번이었다.
이 장인은 “스스로 작업을 해본 적도, 할줄도 모르기에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며 “제대로 된 기술을 갖추지 못한 이들이 방짜유기장이라고 속이는 행태에 직접 연구하고 만드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놋은 찬물에 식히는 담금질 과정을 거쳐 더 단단해 진다./사진 김생훈 기자
◇ 알려진 방짜유기 공정 일부 수정 돼야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치고 연구를 거듭한 끝에 그는 진정한 ‘방짜유기’를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그가 만든 방짜유기는 ‘살아있다’. 접시에서조차 맑은 종소리가 난다. 메질 덕이다.
묵묵히 한우물만 판 결과는 지난 2007년 청와대에 대통령 전용 식기를 납품할 때 빛이 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통그릇 사용을 권해 청와대에서 전국의 주요 놋그릇을 다 수거한 뒤 성분을 분석했는데, 품질과 우수성을 인정받아 납품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내로라하는 유기는 물론, 국내 풍물패의 악기 대부분을 전담하듯 만들 정도였지만 스스로 부족함을 느꼈다. 대학에서 금속공예를 수료하고 매스컴 등에서 본인보다 손재주가 좋은 것 같은 이가 있다면 천리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눈으로 확인했다.
“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만든다고 소문은 나 있었지만, 내 자신은 그렇게 느껴질 못했다.”
뜻모를 허전함을 채우려 발버둥 칠수록 오히려 자신감이 붙었다. 이 장인은 그간 알려져있던 공정에 대해서도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보통 알려진 바에 의하면 방짜유기는 여럿이 한 조가 되어 조직적 협업으로 만든다. 하지만 이 장인은 아무리 잘하는 사람 여럿을 데리고 작업해봐야 완벽한 방짜유기가 나오기 힘들다고 말했다. 사람마다 호흡이 다르고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하물며 키와 손 크기까지 다르니 일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공동작업이 필요한 때가 있지만, 혼자 할 수 있어야 비로소 기술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공정 중 바둑(합금한 놋쇠 덩어리)을 가열해 늘리는 작업인 네핌질이나 우김질(넓혀진 바둑을 한꺼번에 여러 형태로 만드는 작업), 냄질(겹쳐진 각 장의 바둑을 분리해 떼어내는 작업)등도 반드시 필요한 작업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재료를 속이면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올 수 없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아무리 최고의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질 좋은 구리와 주석을 구비해 거짓없이 작업해야한다는 것이다. 품질 높은 방짜는 오로지 질 좋은 재료와 불, 망치로 완성된다.

놋은 찬물에 식히는 담금질 과정을 거쳐 더 단단해 진다./사진 김생훈 기자
◇ 울퉁불퉁한 표면의 목소리 ‘좌종’

방짜계에서 정점을 찍은 이 장인이 가장 자신있는 분야는 좌종이다. 흔히 알고 있는 종이 아닌 똬리 받침 위에 두고 치는 우묵한 그릇 모양의 앉은뱅이 종이다. 소리와 울림, 여운은 범종과 맞먹는다. 특이한 점은 일일이 메질해 만들기에 같은 크기의 좌종이라도 소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 장인이 수십여년간 몰두해 만든 역작이기도 하다. 깨지는 소리 없이 맑은 음색은 음의 파장이 길고 저마다 고유의 색을 지녔다. 좌종을 치고 명상을 하면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어 故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이 생전에 구매해 갔다. 이 장인은 유기와 달리 악기, 특히 좌종의 경우 정신이 맑고 음을 다룰 수 있는 귀가 트여있어야 제대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방짜기법으로만 만든 좌종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 방짜, 두드릴수록 은은한 흰빛 띤다

값비싼 물건 탓에 부귀를 누를 것 같지만 소위 ‘돈벌이’가 되지 않아 이수자는 소수다. 이 장인이 만든 작품을 사간 뒤 주물로 수천 개를 납품한 이도 있었다. 그는 한순간 돈을 벌기 위해 방짜유기의 맥을 끊게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공예가 아니라 공해”라고 뼈 있는 농담을 하며 웃는 이 장인은 질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작업하지만 적당한 가격에 팔지 못한다고 말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생활반상기칠첩만해도 소비자가격은 90여만원을 호가하지만, 실제 재료비와 노동력에 비하면 낮아진 가격이다. 본인이 알고 있는 것들을 이수자에게 아낌없이 가르쳐주지만, 수작업 위주의 공정과 대량생산이 불가한 점 때문에 업계를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다행히 예비사위 문신정씨가 이 장인을 따라 5년 째 방짜유기를 만들고 있다. 서울에서 외식업에 종사하던 문신정씨는 그릇에 대해 공부하다 방짜유기의 매력에 빠져 연고도 없는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 장인은 “혈연, 학연 다 필요없다. 가장 잘 만드는 이에게 모든 것을 물려줄 것”이라며 유기 부문은 문신정씨에게, 징과 꽹과리 부문의 사업은 후계자 강정호씨로 낙점해두었다고 귀띔했다.
힘들게 터득한 기술을 아낌없이 넘겨줄 수 있는 이유는 자기반성과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이봉주 선생의 자서전 집필 당시 여러 곳에서 검증 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쓴 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방짜는 두드릴수록 황금빛이 된다라고 썼는데, 그 말은 틀린 말이다. 단조는 은은한 흰빛을 띤 황색이다. 내 과오이니 반드시 바로 잡고 싶다.”
또 하나는 유기의 부흥을 위해서다. 지원이 적어 맥이 끊길 우려도 있지만, 건강에 좋은 식기이니 많이 사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방짜유기가 예단으로 많이 쓰이고 있는 만큼 예비부부들을 위한 작은 공방도 진행할 예정이다. 적당한 때에 정읍에 마련해둔 방짜유기 전시박물관을 공개하는 것도 목표다.
“그곳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좌종을 여러개 두었는데, 오고 가는 이들마다 그 종을 치고 맑은 정신을 갖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민슬기 기자         민슬기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