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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담배 혹은 연기

김향남 수필가·문학박사

2021년 12월 08일(수) 16:33
김향남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경전을 읽고 있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곱게 물든 단풍도 축축 비에 젖고 있었다. 그 사이로 조금씩 어둠이 스며들고 있었다. 갑자기 담배 한 모금이 간절해진 그는 바짝 향로 곁으로 다가갔다.

“이 방은 우리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니 일절 연기가 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언제 보았는지 행자가 급히 일어나 두 손을 합장하며 그를 만류했다. 순간 아차 싶었지만, 말은 이미 입 밖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향 연기도 연기이고 담배 연기도 연기이다. 담배 연기와 향 연기는 같은 연기로서 평등한 연기 중의 이 연기 저 연기일 뿐이다. 나는 연기를 좋아하여 이미 담배 연기도 좋아하고 향 연기도 좋아한다. 부처께서 어찌 유독 향 연기만을 좋아하시고 담배 연기는 좋아하지 않으시겠는가? 또 나는 객이지 여래의 분수제자가 아닌데, 어찌 부처께서 찾아온 한 객을 대접하면서 담배 한 대 피울 것을 권하지 않겠는가?”

행자는 차마 거역하지 못했다. 큰소리는 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엔 어쩐지 쓸쓸함이 느껴졌다. 행자는 웃음을 감추고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그는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들이마셨다. 목구멍을 통과한 담배 연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자 막혔던 가슴이 찌르르 뚫리는 듯했다. 눈을 감았다. 한양을 떠난 지 벌써 열흘이 넘었다. 동작나루를 건너 안양ㆍ공주ㆍ천안ㆍ부여ㆍ논산ㆍ음성을 거쳐 완주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경상도 삼가(합천)까지는 앞으로도 며칠을 더 가야 할지 몰랐다. 비까지 내려 몸조차 으스스 떨렸다. 저만치에 마침 절집이 보였다. 절은 평지에 있었고 대패질을 하지 않은 듯 거칠고 소박한 절이었다. 그는 지금 멀리 남쪽으로 귀양을 가는 중이었다.

담배 두 대를 연달아 피운 그는 깊은 회한에 잠겼다. 청운의 뜻을 품고 성균관에 들어온 지 벌써 몇 해째인가. 왕은 간간이 유생들의 글쓰기를 시험하곤 했다. 그는 번번이 왕의 눈에 띄었지만 그때마다 심한 몸살을 앓아야 했다. 글이 괴이쩍다느니 너무 감정에 치우쳐 있다느니 한 번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반성문을 써야 했고 응시자격을 정지당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먼 남쪽 변방으로 내려가 군역을 살아야 했다. 글쓰기에도 마땅히 정해진 법도가 있거늘 함부로 그것을 어긴 죄였다. 그의 글은 내용도 형식도 법도 밖의 것으로 치부되었다. 한 마디로 개성이 몸부림쳤다고 할까.

그는 자신의 죄를 잘 알지 못하였다. 써내는 글마다 격식에 어긋난다느니 자잘하고 시시콜콜하다느니 질타가 심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지금-여기’를 외면하고 ‘그때-거기’를 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의 눈앞에는 날마다 꽃이 지고 새가 울고 나비가 날고 벌레가 꿈틀댔다. 저잣거리엔 도둑이며 기생, 씨름꾼, 협객, 충신, 열녀 들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그의 붓끝은 한사코 그쪽을 향하였다. 그는 홀린 듯 글을 썼다. 오직 나의 시, 나의 문장을 짓겠노라. 그러나 그는 인정받지 못했다. 고신얼자(孤臣孼子)의 비통하고 괴롭고 답답한 소리에 불과하다는 왕의 노여움만 빗발쳤을 뿐이었다.

어느새 피어오르던 담배 연기는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망연히 향로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모든 것을 흡수한 듯 깊고 아득했다.

“향은 향 연기가 되고 담배는 담배 연기가 된다. 연기가 비록 같지 않지만 연기로서는 같은 것이다. 물건이 변하여 연기로 되고, 연기가 변하여 무(無)로 되는 것이니, 연기가 나서 잠깐 사이에 곧 허무로 함께 돌아가는 것이다. 너는 보라. 방안의 향 연기와 담배 연기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세상은 하나의 커다란 향로가 아니겠는가.”

그는 독백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앞에는 향 연기도 담배 연기도 없었다. 빗소리도 바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다시 꾹꾹 담배를 눌러 담아 불을 붙였다. 한 모금을 길게 빨아 천천히 내뿜었다. 연기는 희부연 꼬리를 흔들며 허공에 섞이는가 싶더니 이내 자취마저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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