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순결한 피해자론!
2021년 12월 07일(화) 15:57
대유민 전남청소년성문화센터장

여성가족부 2019성매매 실태조사에서 중고등학생 응답자 6,423 중 11.1%가 인터넷을 통해 원하지 않는 성적 유인을 당했다고 답했고 성적 유인에는 성에 관한 대화나 신체 사진 전송 강요 등이 포함되었다. 이중 2.7%가 만남까지 유인당하였으며 성적 유인을 당한 후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경우는 피해자 중 58.5%로 절반을 넘었다.

2016년 여성가족부 성폭력 실태 조사를 보면, 성폭력 신고율은 1.9%였다. 신고를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부끄러워서’가 많았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를 입어도 피해를 입었다고 신고하지 못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여전히 성폭력은 정조를 잃어버린, 더럽혀진이라는 꼬리뼈를 떼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보호는 순결한 피해자만 보호한다는 생각이 있다.

성폭력 피해자 잘못만 따져

1994년 성폭력특별법 제정 이전에는 성폭력을 형법의 정조에 관한 죄로 다스렸다. 정조란 성적 관계에 순결을 지키는 일로 결혼 전 순결을 지키는 것과 결혼 후 배우자 이외의 자와 교섭하지 않는 것을 가리키며 주로 여성들에게 강요해 온 가치이다. 가해자는 정조를 침해한 사람이고 피해자는 정조를 침해 당한 자가 된다. 피해를 입긴 입었지만 정조를 침해 당한자, 더럽혀진 자, 신세를 망친자라는 낙인이 붙게 된다.

이런 이유로 유일하게 피해자 중 성폭력 피해자에게만 잘못을 따지고 이 피해자가 얼마나 순결하고 도덕적인 사람인지, 문란한 사람은 아니었는지,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충분히 조심했었는지를 따지고 피해자가 행위를 하도록 빌미를 제공하지는 않았는지도 따진다. 밤늦게 다녀서 또는 야한 옷을 입어서, 새벽에 술 마셔서, 남자들과 어울려서 등 피해를 당할 일을 했으니 당했다고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을 씌우게 된다. 성범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해자의 잘못보다는 피해자에게 더욱 관심을 집중하고 피해자를 평가하기도 한다.

이 판단의 근거는 계속해서 추가되고 가혹해지고 있다. 그리고 피해자가 얼마나 피해자 다운 태도를 보이는지를 보며 진실성을 판단하기도 한다. 웃거나 당당하지는 않은지, 수치심을 느끼고 있는지, 큰 고통과 좌절을 겪고 있는지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려고 한다. 이 모든 내용에 모두 ‘Yes’ 여야만 비로소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 할 진정한 피해자로 승인된다.

이러한 문화가 그대로 현재의 성범죄에서도 행해지고 있다. 디지털성범죄 중 공공장소(화장실 등)에서의 불법촬영 신고율은 5%로 성적촬영물 비동의 유포, 유포 협박, 사진합성 후 게시보다 신고율이 높다. 신고가 많은 이유는 피해자의 낙인이 가장 덜하기 때문이다.

성희롱 피해를 당한 피해자는 웃을 수 없음을 강요하는 언론의 모습도 있다. ‘성희롱 당해도 웃는 강철멘탈 눈길’ 이라고 보도한다든가, ‘근황 봤더니 남친과 배낚시 여행 갔었다’ 등 피해자가 여행 간 사실이 문제라는 방향의 기사 보도도 있었다.

회복할 환경 만들어줘야

피해자다움과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과 같은 사회적 판단들로 인해 피해자는 죄의식에 시달리며 피해 회복에 어려움을 느끼거나 스스로 피해자다움의 모습을 수행하게 된다. 이렇게 지지를 받지 못할 때 피해자는 피해 회복의 시도를 포기하거나 좌절할 수 밖에 없다. 주변에 피해 사실을 고백할 수 없기에 환경적인 지지를 받지도 못하고 경찰 신고 등의 제도적인 지원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처럼 피해자는 안전한 환경이 마련되어야 대응을 시작할 수 있다. 자꾸만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고 진실한 피해자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결국 피해자가 피해를 회복할 기회를 상실하게 만든다. 피해자는 수동적으로 피해를 당한 사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하나의 경험으로 소화해 내고 나아가서 피해의 생존자가 될 수 있다. 자신의 피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며 안전한 일상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피해자의 모습을 제 3자인 어느 누구도 규정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순결은 ‘육체관계가 없음’이 아니고 ‘마음에 더러움이 없이 깨끗함’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순결하냐고 누가 판단하고 규정하겠는가?!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