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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세상> 우리사회라고 ‘불수능’이 없을까
2021년 11월 29일(월) 16:52
정진탄 월간국장 겸 논설위원

“울고 싶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I wanted to cry and quit everything.) 지난 18일 2022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 영국 BBC 방송이 홈페이지에 올린 수능 관련 영상을 보고 울컥했다. 한국 학생들이 수능시험 준비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었는데 한 학생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다 그만두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답답함과 울분, 서러움, 그러면서도 왠지 모를 어떤 의지 같은 것을 다지게 하는 순간이 있었다.

외국 언론이 한국 수능을 별종으로 보도하는 일이 심심찮게 있다. 영어듣기 시험을 위해 그 시간 모든 항공기의 이착륙을 금지하는 정부 조치부터 수능 당일 선후배들의 응원전, 학벌에 얽힌 한국사회의 이면 등을 집중 보도하곤 한다. 그들의 시선에는 이런 게 참 희한하게 느껴질 것이다. 한국 교육애 관해 다양한 의견이 공존하지만 버락 오마바 전 미국 대통령이 재임 당시 한국 교육열 하나만큼은 알아줘야 한다며 극찬한 점을 감안하면 꼭 부정적으로 볼 건 아닌 것 같다.

준비돼 있지 않으면 ‘넘사벽’

어쨌거나 이번 수능이 불수능이어서 학생이나 학부모, 학교 관계자들이 대학 선택에 큰 혼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국어가 단순히 국어가 아닌지 오래됐고, 이번에 수학은 문·이과 통합 형식으로 나와 난이도가 상당했으며, 영어도 빈칸 추론 문제 등으로 난해했다는 후문이다. 그런데 수능 출제진은 그렇게 어렵게 내지 않았다고 주장해 혼란이 가중된다. 다음달 10일 수능성적이 공식 통보되면 탄식과 한숨, 환호가 교차할 것이다.

수능과목 가운데 국어 시험은 ‘한글 국어’ 시험이 아니라 ‘지식 언어’ 시험이다. 글자만 한글로 돼 있지 그 언어가 담고 있는 내용은 정치·경제·철학·예술·자연과학 분야의 지식으로 도배돼 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해독이 힘들다. 영어 독해처럼 한국어 독해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독서 능력이 배양되거나 훈련돼 있지 않으면 갑자기 고교에 진학해 수능 국어 문제집을 푸는 게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 돼버린다. 학교나 학원에서 일시적으로 배우는 것은 문제 푸는 스킬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오랜 세월 ‘축적의 과정’이 없고서는 어려운 문제, 그렇게 느껴지는 문제에 많이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때그때 허둥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어디 비단 수능시험에만 적용되겠는가. 지금 선거철을 맞아 우리는 후보자와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고 있다. 정책과 비전 제시, 유권자와의 만남에서 말실수와 해명, 이후 대응 행동을 보면서 대권을 향한 연마 정도를 가늠하게 된다. 소위 절차탁마 대기만성형인지 아닌지 유권자들은 암암리에 자기의식 속에서 분주히 계산하고 있다.

여야 대선후보에 대해 왠지 불안감을 느끼며 확고한 지지 표명을 하지 않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후보들이 국정이나 의회 경험 없이 벼락치기로 대권에 도전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착실히 준비해오기보다는 무엇인가에 떠밀려 대권후보의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후보자들이 충분한 노력 없이 대권이란 시험을 엉겁결에 치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천장여지 필선고지 새겼으면

대선과 마찬가지로 지방선거에서도 준비가 안 된 후보자들을 잘 걸러내야 한다. 시험이든 선거든 어차피 쉽지 않은 것은 당연지사고 삶의 현장에서 치열한 준비 없이, ‘축적의 과정’ 없이 달려드는 단체장 또는 지방의회 후보자를 표로 다스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지하는 것처럼 후유증은 고스란히 유권자들의 몫이다.

사실 큰 틀에서 보면 우리 국가 전체가 불수능 시험에 빠져 있는 상황이랄 수 있다. 현 정부의 임기가 3개월여 남았고 대선 이후 지방선거, 코로나19 확산세와 더불어 경제 및 외교·안보의 재정립이 긴요한 위기 국면이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어느 수능 수험생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픈 마음이 들더라도 실제 포기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니 심기일전을 해야 한다.

우리 지역 어느 단체장이 가끔 되뇌는 한자성어가 있다. ‘천장여지 필선고지’(天將與之 必先苦之). 하늘이 무엇인가 주려고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고통을 준다는 뜻으로, 각기 처한 상황에 따라 한 번쯤 음미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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