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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향

탁현수 수필가·문학박사

2021년 10월 27일(수) 14:36
아침부터 밤까지, 아니 날마다 그냥 쓸쓸하고 슬펐다. 고향 집을 떠난 객지 생활. 좀 더 나은 교육환경 때문이라고 했으나 겨우 9살 아이가 받아들이기엔 가혹한 생활이었을까. 등하교 때는 물론,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시간마저도 부모 형제와 집이 마냥 그립기만 했다.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다가 드디어 봇물이 터지고 말았다.

“북쪽으로 가면 백두산 남쪽으로 가면 한라산….”

단지 고향이 그곳에서 북쪽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울보 딱지를 달아야 할 만큼 펑펑 눈물을 쏟고 쏟았다.

보다 못한 어른들은 다시 집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입을 모았다. 뛸 듯이 기뻤다. 고향 하늘에 떠 있는 달과 별, 앞동산을 스쳐 가는 구름과 바람까지 오직 나를 위한 환영의 노래라도 불러주는 것만 같았다. 적어도 한동안은 그랬다.

이상한 일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객지에서만큼 절실하지는 않았으나 무엇인가가 그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풀 냄새 피어나는 잔디에 누워 새파란 하늘가 흰구름 보면….’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물결이 살랑 어루만져요….’

뒷동산에서, 또는 아무도 없는 조용한 대청마루에서 소리 높여 부르는 노래 속의 정경이 그리웠고, 아슴아슴 불분명한 형체들이 고향의 풍경을 배경 삼아 가슴 가득 고여 들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실체는 사라지고 환영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까지 일었다.

그렇게 우련하게 마음 언저리를 넘나들던 향수는 줄곧 객지로만 떠돌던 내게 알 수 없는 병이 되어 따라다녔다. 다행히 결혼과 함께 자식을 키우는 동안에는 사랑이라는 거대한 힘에 조금은 짓눌려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마파람 뒤에 폭풍이 따른다고 했던가. 세월의 연륜이 깊어갈수록 고향의 실체라고도 할 수 없는 또 다른 형태의 그리움이 의식을 부여잡고 자꾸만 흔들어대는 순간이 늘고 있다. 조금은 오묘하면서도 자별하게까지 느껴지는. 고향의 정인(情人)이 보고 싶다거나 하늘빛, 산빛이 그리운 것이라면 어려울 것도 없을 텐데 안개처럼 피어나는 아련한 영상들이 가늣하게 맴돌고 있으니….

엉뚱한 초행의 여행지에서 그 그리움들을 얼핏 대면하는 행운도 있었다. 시간의 차이가 개입된 착각 현상(대자뷰)이라고들 풀고 있지만, 어떤 인연의 근원을 골똘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에겐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이승의 고향보다도 더 먼저 연을 맺은 근원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길 때가 종종 있다. 우리 앞에 펼쳐진 세상 모든 것들은 쉼 없이 돌고 도는 것을 반복하고 있다. 해와 달을 품은 세월이 그렇고, 자연의 법칙이 그렇다. 윤회(輪廻), 시작점도 끝도 모르는 원(圓)의 습성. 어디 인간의 삶인들 크게 다르겠는가. 사람이 이승에서 살다가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처럼 아주 작은 부분일지도 모른다. 원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빙산에서 물속에 잠겨있는 곳, 기억할 수 없는 그곳을 잠재의식 속에서 늘 그리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곳이 바로 우리가 온 곳이며 돌아갈 곳 본향일 것이라는 상상도 해본다.

죽음은 우리에게 분명 슬픔으로 다가오지만, 그것 또한 이승의 인연들과 이별의 슬픔일 뿐 돌아가는 자(者)의 슬픔은 아닌 듯하다. 떠나는 이는 언젠가는 가야 할 원점으로의 자연스러운 회귀가 아닐까.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외로움에 겁을 내며 살아간다. 끊임없는 관계를 위해 새로운 시작을 쉬지 않고 찾아 헤매는 이유이기도 하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승에서의 삶이 끝난다는 의미이고 보면, 우리가 저승이라고 부르는 그곳은 죽음의 절망에서 붙잡을 수 있는 단 하나의 희망이요 꿈이다.

누구도 함께할 수 없는 죽음의 길목에서 끝과 시작의 관계를 맺어주는 유일한 곳. 바로 그곳이 우리가 상상하고 있는 것보다 몇 배나 아름다운 곳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인간이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놓아버릴 수 없는 간절한 소망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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