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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배기 그 나무

김향남(수필가·문학박사)

2021년 10월 13일(수) 00:34
앵두나무가 있었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다가 꽃 피고 열매 맺을 때면 저절로 눈길이 갔다. 꽃은 화사하고 열매는 붉었다. 알알이 붉은 열매를 보면 어김없이 군침이 돌았다. 하지만 막상 입안에 넣어보면 과육도 많지 않고 씨앗도 커서 실상 먹을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따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아찔한 무엇이 앵두에게는 있었다. 앵두는 찔레나 삐비처럼 슴슴하거나 밍밍하지 않았다. 새콤도 하고 달콤도 하고 쌉쓰름하기도 한, 그래서 오감이 곤두서는 맛이라고 할까.

나무가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누가 심었는지는 몰랐다. 어느 봄날 장꽝 옆을 지나다가 문득 눈에 띄었을 뿐이다. 야트막한 언덕배기에 소담히도 피어있는 앵두나무 꽃가지. 며칠이 지나자 열매가 맺혔고, 또 며칠이 지나면서 붉게 익어갔다. 그때부터 그것은 ‘내 나무’가 되었다. 나는 날마다 그 아래를 맴돌았다. 무성한 초록들 사이로 붉게 익어가는 열매는 꽃보다 예뻤다. 탱글탱글 빛나는 나의 보석이었다.

윗집에 표수라는 애가 살았다. 그 애는 나보다 두 살이나 어렸고 성격도 순했지만 저토록 탐나는 보석을 보고도 가만있을 리 없었다. 나는 녀석이 여간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도 분명히 군침을 흘리고 있을 게 뻔했다. 문제는 앵두나무가 있는 곳이 하필이면 표수네와 우리집 사이, 딱 그 경계라는 사실이었다. 우리집에서 보면 바로 장꽝 옆의 언덕이고 가지도 이쪽으로 기울어 있으므로 당연히 우리 것처럼 보였고, 표수네 집에서 보면 그 집 마당 끝에 가까웠으므로 역시 그 집 것으로 보였다. 딱히 누구네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려운 애매한 위치였지만 앵두나무의 위상은 그럴수록 더 높아 보이기만 했다.

그런 나무가 한 그루 더 있었다. 둥치가 제법 큰 똘배(돌배)나무였다. 봄이면 하얗고 뽀얀 꽃을 피워 앞마당이 환했다. 꽃이 지고 난 후면 동글동글한 열매들이 조랑조랑 맺혔다. 앵두처럼 예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수시로 눈길을 주었다. 색깔도 포르스름한 데다 맛도 떨떠름하고 과육도 뻑뻑했지만 절대 그냥 두고 보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가 입맛 다시기가 바쁘게 던져버리기 일쑤긴 했지만…. 하지만 그건 아직 성급한 맛보기였고 나중에는 제법 먹을 만해졌다. 크기가 아기 주먹만 한 것도 있었는데 맛도 아삭아삭 달고 시원했다.

그때쯤이면 새삼스레 배나무에 욕심을 내곤 했다. 이번엔 아랫집 할배가 문제였다. 할배는 무슨 기척이라도 들린다 싶으면 부러 언덕 아래를 서성거렸다. 에헴, 에헴! 헛기침을 해대면서 작대기를 들어 바닥을 툭툭 쳤다. 주인이 따로 있으니 함부로 따먹지 말라는 신호였다. 나는 할배가 못마땅했다. 배나무는 버젓이 우리집 마당가에 있는데 왜 할배가 주인 노릇을 한단 말인가? 설령 할배네 것이라고 치자. 그래도 그렇지. 별로 먹잘 것도 없고 쓰잘 데도 없는 똘배 하나를 가지고 쩨쩨하게 꼭 그래야 할까? 하지만 어린 나로서는 언감생심, 따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슬쩍슬쩍 눈이나 흘길밖에….

생각해보면, 앵두나무도 똘배나무도 조마조마한 나무였다. 꽃피우고 열매 맺을 때면 보란 듯이 눈길을 끌던 유혹의 나무, 하필이면 위아랫집 사이에 있어 애를 먹이던 경계의 나무였다. 해마다 어김없이 내 마음을 흔들던 존재의 나무이기도 했다.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다가도 일 년에 한 번은 제 존재를 드러내던 정체성의 나무. 나, 여기, 있노라! 언제나 그 자리에 서있는 고향의 나무였다.

그 나무가 아직 거기 있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꽃을 피우고 여전히 열매를 맺는지도 모르겠다. 따먹을 사람도 욕심내는 사람도 없이 평화가 찾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쯤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말아,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보고 나붓대는 바람이나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 혼자 익고 저 혼자 떨어지며 햇살이나 부둥켜안을지도 모르겠다. 하릴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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