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게임(The Imitation Game, 2014)은 비운의 천재 앨런 튜링의 삶을 미화되지 않고 잔잔하게 파고들어 간다. 특히 국가와 사회라는 이름으로 개인에게 가해진 폭력과 편견을 찾아가는 게임이다.

영화는 앨런 튜링이란 개인적 인물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동시에 조명한다. 시대에 빛을 가져왔지만, 시대의 버림을 받은 인물의 슬프고 아이러니한 삶을 담고 있다.

그가 역사의 희생양이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비밀 정보를 다루는 일로 인해 그가 바쳤던 모든 시간이 마치 없던 일이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둘은 그의 동성애적 성향이다.

영화는 튜링의 삶 속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을 유기적으로 엮어 이야기를 펼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에니그마(Enigma) 해독 과정, 유년시절 그리고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세상에서 소외되는 말년의 사건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은 24시간마다 바뀌는 해독 불가능 암호 에니그마로 인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영국은 에니그마 해독을 위해 각 분야 수재를 모아 팀을 구성한다.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도 그중 한 명이다.

정교한 기술로 제작된 독일의 에니그마는 수만 가지 경우의 수를 생성했다. 때문에 사람의 연산으로 푸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앨런은 최초의 연산식 컴퓨터인 크리스토퍼를 개발해 에니그마를 해독하는 데 성공한다.

이를 통해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은 물론 현대 컴퓨터 과학의 토대를 마련한다. 더욱이 기계가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를 고안하기도 한다.

영화는 앨런이 에니그마 암호를 해독함으로써 연합군 승리에 이바지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극적으로 재구성한다. 더불어 당시 동성애를 범죄로 여긴 잘못된 사회적 인식으로 고난을 겪고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전쟁을 승리로 이끈 숨은 영웅을 칭송하지 않는다. 동료들과 숱한 반목을 딛고 만들어낸 크리스토퍼와 앨런은 전쟁과 함께 지워진다. 대신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범법자가 된 초라한 남자만 남는다.

앨런은 크리스토퍼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감옥 대신 성 충동 약물치료를 선택한다. 호르몬 주사로 동성애를 치료할 수 있다는 당시의 믿음 때문이다. 실제 앨런은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베어 물고 자살을 선택한다.

여기에 앨런을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게 돕는 정신적 애인인 조안 클라크의 삶을 배치한다. 그녀 또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꿈과 재능을 맘껏 펼치지 못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야 했던 그 시대 여성을 상징한다.

앨런 튜링은 그 누구보다 위대하고 뛰어났지만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다. 영화 속에서도 역시 외로워 보인다. 이유는 간단했다. 그가 자신을 천재로 여기고 다른 사람과 경계 짓기를 시도했기 때문이다.

재수가 없고, 사회성이 부족하고, 배려심이 약하다는 평가 때문에 그는 사람과 세상으로부터 따돌림을 당한다. 지성적으론 합격점일지 모르지만, 인간적으론 수준 미달이란 편견을 자초한 셈이다.

더욱이 영화는 앨런 튜링이라는 천재를 통해 희소성과 기대치의 충돌을 보여준다. 현대인이 외로운 것도 타인에 대한 기대치가 높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평가가 높을수록 자신에 대한 연민이 높아진다. 앨런도 그랬을 것이다.

이미테이션이란 단어 속에는 흉내, 모방이란 뜻이 있다. 어쩌면 앨런에게 현실은 더 모방에 가까운 것이었을지 모른다. 누구에게도 진실을 말할 수 없는 수많은 비밀과 기밀 속에서 살았던 그에게 크리스토퍼가 오히려 본질에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영화는 화려하지 않은 연출을 택한다. 대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메시지가 강렬하지는 않지만 명확하다. 앨런 튜링의 유년기, 세계대전 중 암호해독, 종전 후 동성애 혐의로 기소되는 세 가지 트랙을 오가는 교차 편집을 통해 단조로움을 탈피한다.

천재는 왕따거나 은둔자가 대부분이다. 세상과 불화가 심할수록 천재성은 더욱 빛이 나고 극적인 반전이 주는 카타르시스도 커진다. 아이러니하게 천재를 초라하게 만드는 것도 수학이지만,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도 수학이다. 거듭 아이러니다.

/사진 출처=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이미테이션 게임’ 포스터.

■튜링 테스트

영화의 실제 주인공 앨런 튜링은 어린 시절 미적분을 따로 학습하지 않고도 고등 수학 문제를 푸는 등 뛰어난 두뇌를 자랑한다. 성장 후 현대 암호학의 아버지라는 칭호도 얻는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특히 현대 컴퓨터 과학의 토대를 마련한다. 기계가 인간과 지적 대화를 할 수 있는 AI 능력을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Turing test)도 만든다.

그러나 그는 탁월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당시 동성애를 범죄로 여긴 영국에서 동성애자라는 게 드러나면서 기소된다. 유죄판결을 받고 성 충동 약물치료를 당한 그는 41세 젊은 나이에 청산가리를 주입한 사과를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애플이 로고로 사용한 한입 베어 문 무지갯빛 사과 문양이 성 소수자로 안타깝게 삶을 마감한 앨런 튜링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나왔다. 애플의 공식 입장은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턴의 사과다.

영국 정부는 동성애로 기소된 이들을 사면하는 튜링법을 제정했고,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2013년 튜링을 사면한다. 사후에 그의 명예는 공식적으로 복권된다.

미국계산기학회도 1966년부터 그의 이름을 딴 튜링상(Turing Award)을 제정해 매년 컴퓨터 과학 분야에서 큰 업적을 세운 인물에게 수여하고 있다.

2012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도 열렸다. 2019년에는 영국의 50파운드 지폐에 새겨질 초상 인물로 마거릿 대처도 스티븐 호킹도 아닌 그가 선정된다.

한편 영화 제목인 이미테이션 게임은 앨런 튜링이 제시한 컴퓨터의 사고력을 증명하는 실험이다. 그의 논문 ‘컴퓨팅 기계와 지능’을 통해 제시됐으며, 그의 이름을 따 튜링 테스트라고 한다.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컴퓨터인지 사람인지를 구분할 수 없다면, 컴퓨터에 진정한 의미의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