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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남의 ‘영화 속 나머지 인간’<6>타인의 삶

주체적 삶에 대한 고민…정답은 사랑의 주파수
동지와 적 이전에 인간 존재가 먼저
공감은 타인 통해 나를 돌아보는 것
사랑 나누며 사는 삶이 인간다운 삶

2021년 09월 22일(수) 17:31
영화 ‘타인의 삶(The Lives Of Others, 2006년)’은 삶과 죽음 그리고 타인과 타인의 삶을 통해 세상에는 동지와 적이 존재하기 이전에 인간이 먼저라는 명제를 만든다.

특히 영화는 타인의 삶을 감시하던 극단적 냉혈인이 타인의 삶을 지켜보며 변모하는 원인이 사랑의 주파수라는 사실을 끌어낸다. 그리고 공감한다는 것은 타인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는 의미도 전달한다.

영화는 선한 의도와 악한 결과가 공존하는 타인의 시선을 다루기 위해 1984년 냉전 시대 동독을 배경으로 만들어진다. 이 시기 동독은 감시와 사찰의 암막이 가려진 곳이다. 비공식적으로 10만 명의 비밀경찰과 20만 명의 스파이가 활동했다고 알려진다.

동지와 적, 두 종류 인간만 존재하는 불신의 시대에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의 삶을 집요하게 감시하는 정보국 요원 비즐러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비즐러는 예리하고 냉정한 직관 때문에 최고의 정보 요원으로 입지를 구축한다. 더욱이 이론과 실제를 겸비한 것은 물론 경찰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빠른 일 처리 등으로 명성을 더한다.

하지만 그의 삶은 단조롭고 여유란 없다. 잠복근무나 감시, 취조, 고문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식사를 하고 잠을 잘 뿐이다. 자신의 성욕도 여자를 사서 해결하고 치워버릴 정도다.

진회색 제복이 잘 어울리는 그는 아무런 감정이나 욕구도 없는 사람처럼 살아간다. 그리고 차갑고 낯설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고독하고 외롭고 공허한 사람의 양면성이 병존하는 인물이다. 그는 상관에 대한 복종 이외에는 상대방에 대한 어떤 사유도 하지 않는다.

이런 비즐러의 삶에 변화와 고민을 주는 계기는 예술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다. 그는 이들의 삶을 집요하게 감시하고 침투한다. 하지만 그들의 삶을 감시하거나 훔칠수록 그들의 삶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한다.

몰래 브레히트의 시집을 빼돌려 읽고 영혼의 소나타를 들으며 비즐러는 예술이란 무엇이고, 그들이 무엇을 꿈꾸고 꿈꾸고자 하는지 관심을 두게 된다. 이후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도와주기로 한다. 그가 자신의 삶에서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하는 순간이다.

‘타인의 삶’ 스틸 컷.
영화는 비즐러가 왜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도와줬느냐는 의문을 던진다. 그는 타인의 모습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들을 도우면서 나 자신을 구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타인의 삶을 통해 부족한 자신의 삶에 대한 보상심리도 깔린 셈이다.

반면 주체적 선택이 엄청난 비극을 가져올 때도 있다. 비즐러의 모든 도움이 물거품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크리스타의 죽음이다. 주체적 선택이 희극이 될지, 비극으로 돌아올지는 인간은 판단할 수 없다.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일 때 주체적 삶이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이후 비즐러는 그들을 도왔다는 당국의 심증으로 그의 삶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진다. 자신이 선택한 대가로 평생 감시와 조롱의 눈초리를 받으며 살게 된다. 하지만 그는 불평하지 않는다. 도리어 그의 삶은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영화의 결말은 아름답다. 오랜 침묵을 깨고 드라이만이 출간한 책을 펼쳐보는 비즐러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HGW XX/7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문구를 읽고 감동한다. HGW XX/7은 비밀정보원 시절 자신의 암호명이다. 결국 드라이만이 비즐러의 존재와 도움을 알게 됐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 스틸 컷.
더욱이 영화는 현대사회가 알게 모르게 타인의 말, 생각, 인생을 훔치며 살아가는 모습과 평행이론을 보인다.

우리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타인의 생각과 삶을 너무 쉽게 훔쳐보는 행위를 반복한다. 더욱이 SNS는 염탐하기의 강력한 수단이 된다. 타인의 식성, 취미, 생활 방식, 대인관계는 물론 잠버릇, 성적 취향 등 사생활까지 SNS는 적나라하게 침투할 수 있는 현실이다.

사회적 연대 없이 개인적 삶도 없다. 사생활을 뜻하는 프라이버시는 라틴어로 결핍을 의미한다. 인간은 사회적으로 존재할 때 진짜 인간이 된다는 의미다. 영화 타인의 삶은 주체적 삶과 연대적 삶에 대한 경계를 고민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랑의 주파수에서 정답을 찾는다. 타인을 사랑하고 타인에게 사랑받으며 살아가는 삶이 진짜 인간다운 삶이다. 동시에 동지와 적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을 버리고 사랑과 자유를 이해하는 것이 삶이라고 설명한다.

타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체가 돼 있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 주체가 된다는 것, 주체로 산다는 것이 무언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공감은 타인을 통해 나를 돌아보는 거울 같은 행위다.

/사진 출처=㈜유레카픽쳐스, ㈜에스와이코마드, ㈜에스에이치필름



‘타인의 삶’ 스틸 컷.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고민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와 소격효과



동독 비밀경찰인 주인공 비즐러. 그의 굳센 신념을 흔들리게 만든 시작은 브레히트 시 ‘마리아의 추억’이다. 그는 이 시를 읽으면서 난생처음 문학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는 독일의 극작가, 시인, 연출가로서 서사극의 창시자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그의 시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47편의 시가 수록한 책이다. 국내에서 사회주의자라는 명목으로 금서 조치 됐다가 해금된 후 현대 시문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집으로 남는다.

또한 브레히트는 감정이입과 카타르시스로 대변되는 서구 전통적 연극관을 해체하면서 20세기 연극에 서사극의 체계를 확립한 예술가다. 그는 관객이 무대 위의 연극에 몰입함으로써 현실도피를 허용하는 연극의 고전적 속성을 뿌리째 흔들었다.

그의 서사극은 배우가 무대 위에 등장해 관객과 토론을 벌이거나, 연극 같지 않은 연극을 공연함으로써 관객이 무대와 심미적 거리를 갖게 하는 소격효과가 특징이다. 소격효과는 생소화 효과, 낯설게 하기 효과로 알려져 있다.

소격효과는 관객 입장에서 극의 진행을 예상할 수 없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결국 감성적 관람보다는 이성적이며 생각하고 판단하는 관람을 작가가 관객에게 주문한다.

브레히트는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란 시에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고 썼다. 갑자기 강한 자와 약한 자의 경계를 고민하고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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