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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동산 개발사업 연계 보성 랜드마크 우뚝

■군민 품으로 돌아오는 ‘열선루’
‘금신전선 상유십이’장계 올린 역사 공간
이순신 장군-보성 끈끈한 인연 의미 더해
홍교 다리 축조·보성의병사 발간 등 기념

2021년 09월 05일(일) 17:26
방진관 외관
[전남매일=이주연 기자]‘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로 잘 알려진 이순신 장군의 ‘금신전선 상유십이’ 장계가 쓰인 곳이 바로 열선루다.

그 열선루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녹차 수도로 유명한 보성군이다.

보성군은 2022년 6월 말 완공을 목표로 열선루 중건과 신흥동산 종합개발계획을 마칠 예정이다. 현재 열선루 중건은 완료됐으나 공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편의시설, 대형 광장, 산책로, 성벽 축조 등 공원 정비 작업이 추진중이다.

◇21세기 열선루 이순신 정신 지킨다

보성군은 이번 신흥동산 종합개발사업을 대규모 개발을 지양하고 주변 지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특히, 역사적 가치가 높은 열선루의 의미를 공간적으로 구현하면서 주민들이 삶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역사를 체험하고 체현할 수 있도록 생활밀접형 공원으로 만들어 나갈 계획이다.

주요 개발 내용은 ▲잔디 광장 확대 ▲전망 휴게 시설(테라스가든, 데크정원 등) ▲산책로 ▲주차장 등을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열선루 전망 개선, 산책로 주변 여장(성 위에 낮게 쌓은 담) 조성 등을 통해서는 보성읍성의 정취를 만들어 내 문화·역사가 숨 쉬는 공원으로 탈바꿈을 도모한다.

또한, 교통약자를 위해 별도의 무장애 로드를 설치해 상부 광장까지도 손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보성군은 이번 신흥동산 종합개발계획을 통해 열선루를 지역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광장이자 군민의 자긍심을 키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나갈 방침이다.

◇보성군민의 자긍심 열선루

열선루는 15세기 초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이순신 장군이 상유십이 장계를 쓰고 난 후부터 보성군민들에게는 대단히 큰 의미를 갖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기능했음을 알 수 있다.

수군을 폐하고 육군으로 편입하라는 선조의 명에 항명하고, 명량해전에 출전해 대승을 거두며 나라를 지켜낸 역사적이고 큰 의미를 갖는 공간이다.

보성군민들에게도 열선루는 특별했다. 정유재란을 치르며 불에 탄 열선루를 1610년 신유년에 보성군민과 보성군수 이직이 바로 중건했고 열선정으로 명명한 사실을 보면 전쟁 후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선루를 지켜야 한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후 1909년 일제의 성곽 철거와 함께 열선루도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러다 2009년 보성군청 신축 공사 과정에서 보성초등학교 부지에서 열선루의 초석 4기가 발견됐다.

실제 열선루의 위치는 보성초등학교 운동장 하단 남쪽 자리로 추정되나 보성군은 접근성 상징성 등을 고려하며 비교적 높은 지대이며, 보성읍 중앙에 위치한 신흥동산에 열선루 중건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번에 중건된 열선루는 조선 중기 이후 건립된 대형 누각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진주 촉석루, 울산 태화루 등과 유사한 양상을 하고 있다.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평면으로 면적은 228.42㎡(69.10평)이다. 하부 기단은 화강석 외벌대로, 높이 2.3m의 화강석 장주초석으로 누하층을 구성하고 상부에 우물마루와 계자난간이 설치됐다.

누상층은 마루 위 원기둥을 세우고, 기둥 상부는 외 일출목 이익공 양식으로 구성됐다. 처마는 부연이 있는 겹처마로 구성,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올렸으며, 용마루, 내림마루, 추녀마루에 양성 바름을 시행했다.

◇이순신과 보성군의 끈끈한 인연

이순신 장군과 보성군의 인연은 참 끈끈하다. 이순신 장군의 처가가 보성이고 가장 절친한 친구도 보성사람이다.

이순신 장군은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의 딸과 결혼했으며 방씨 부인은 전쟁에 나간 남편을 대신해 대가족을 돌보면서 부부의 책임을 다했다.

이순신을 무관의 길로 이끈 사람은 장인인 보성군수 방진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집안은 대대로 문인을 배출했는데, 번번이 시험에 떨어져 속상해하는 이순신에게 무예를 익혀 무관이 돼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한 사람이 방진이었다.

조선 최고의 궁수였던 방진은 이순신에게 활쏘기와 말타기 등의 무예를 가르쳤고, 경제적인 원조도 아끼지 않았다.

◇이순신과 우정 자랑한 장군들도 한자리에

이순신과 절친한 우정을 자랑하던 장군들도 보성에 있다. 선거이, 최대성, 전방삭 장군이다.

열선루에서 내려다보이는 오충사는 보성 선씨 충신 다섯명을 모신 사당으로 여기에 이순신의 절친 선거이 장군이 모셔져 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선거이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증별선수사거이’라는 시를 남겼을 만큼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였다. 소설가 정찬주 작가는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린 소설 ‘칼과 술’을 펴내기도 했다.

선거이는 선조 3년에 무관에 올라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대첩과 행주대첩 등에서 큰 공을 세웠고, 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군대를 이끌고 참전해 전장에서 숨을 거뒀다.

어모장군 전방삭 또한 이순신을 도와 임진왜란 때 해상전에 참여했으며, 정유재란에는 고향 보성에서 의병 300여 명을 모아 향토 수호전을 펼쳤다. 그때 당시 전방삭 장군은 영등마을에 진지를 구축해 의병을 훈련했는데, 영등마을은 바다에 인접해 있고 산이 병목처럼 겹쳐져 있어 바깥에서 보았을 때 배가 보이지 않아 안전하게 의병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최대성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도와 함께 전장에 나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의병을 모아 항일전을 이어갔고, 동생인 대민, 대영, 두 아들 언립과 후립, 사노비인 두리, 갑술까지 가족 구성원 모두가 함께 의병 활동을 하고, 대를 이어 구국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대성 장군은 모시는 충절사 입구 사거리는 최대성 장군의 순절을 기리며 ‘군의 우두머리가 죽은 곳’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지금까지 군두 사거리, 군머리로 불리고 있다.

이순신과 보성군의 인연은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이다. 보성군은 조선의 역사를 바꾼 명량해전을 준비한 곳으로 왕의 명에 항명하면서 나라를 지키기 위한 의지를 다진 곳이기도 하며, 무예의 길로 이순신을 이끈 가족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에 대한 보성군민의 마음

이순신에 대한 보성군민의 마음도 남달라서, 1597년 8월 9일 이순신이 넘어온 벌교 홍교 다리는 그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석조 다리로 다시 축조됐으며, 지금은 우리나라 보물로 자리 잡았다.

보성군은 이순신의 절개가 서려 있는 열선루를 중건해 21세기 이순신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교육 체험 프로그램 ‘충무공학당’ 등을 운영하고 있다. 또, 항일의병전을 펼친 보성의 의병 777병을 발굴해 그 업적을 기록한 ‘보성의병사’발간 등 활발한 향토사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김철우 보성군수는 “열선루는 의향 보성을 알리는 상징적인 곳이며 보성군민의 자부심이기도 하다”면서 “개발사업이 끝나면 열선루를 주민들의 문화 휴식 공간이자 보성의 광장으로 활용해 나가고 축제, 각종 행사 등을 연계해 보성의 주요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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