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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곳곳 빛나는 역사·문화 유적은 자부심

신안 장산도
고인돌·삼국시대 고분·조선시대 노거수와 가옥 산재
갯벌 연안 전복·다시마·대하 양식 한창 풍요 그 자체
삶 담긴 장산들노래·씻김굿 전남도 무형문화재 지정

2021년 09월 02일(목) 19:22
국도2호선 기점 기념비
장산면은 신안군 남부권의 중심지역으로 역사와 문화, 예술이 찬란한 섬이다.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과 지석묘, 삼국시대의 고분과 대성산성지, 조선시대 노거수와 가옥 등 유적이 산재한다. 섬 곳곳의 빛나는 유적은 면민들의 자랑거리로 자부심이 크다. 여느 섬들보다 농경문화가 발달했다.

예로부터 산과 구릉지를 개발해 밭을 이루고 물바닥 땅을 매립해 논을 만들었다.

드넓은 한샛골 갯벌은 인근 안좌면 복호와 하의면, 신의면까지 걸쳤다.

얇은 바다의 갯벌 연안에서는 전복과 다시마, 대하 양식이 한창이다.

민족예술도 잘 보존돼 있다.‘장산들노래’와 ‘씻김굿’이 대표적으로 전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축강선착장 주변에는 국도2호선의 기점임을 알리는 큼지막한 도로원표가 세워졌다. 신안에서 부산까지 477.03㎞의 출발지임을 상징한다.

공수리의 드넓은 저수지 일원에는 오는 2024년까지 화이트 테마 정원을 만든다.

섬 전체를 끊임없는 산줄기가 길게 이어져 ‘장산’이라 칭했다.

대리 고인돌


◇신안 최대 노거수림

1시간 20여분을 달려온 남신안농협 철부선이 축강항에 멈췄다.

배는 뭍에서 실어 온 소식과 사람들, 자동차를 쏟아낸다.

면사무소와 치안센터, 농협 등이 잇따라 늘어선 도창리에 도착하면 울창한 숲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숱한 역사와 함께 하며 우슬잔등에 꿋꿋이 서 있는 노거수목의 기상이 위대할 정도다.

숲의 길이는 무려 352m로 팽나무 63그루와 곰솔, 주엽나무, 가죽나무, 예덕나무 등 101 그루의 아름드리나무가 자리잡았다. 지난 1987년, 전남도 기념물 100호로 지정됐다. 왜구들의 노략질로부터 양곡보관 창고를 지키고 은폐하기 위해 숲으로 위장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온다. 겨울바람을 막기 위해 방풍림으로 조성했다는 이야기도 남아있다.

숲 속 공원에는 도창마을 유래비와 독립운동가 장병준 기념비, 장산팔경 시비, 공적비 등이 현존한다. 노거수를 따라 걷는 길에 장산들노래 전수관도 만날 수 있다. 전남도 무형문화재인 장산들노래를 전승하기 위해 지난 2002년 지어졌다.

섬 주민들이 논일을 하면서 부른 장산들노래는 가락과 내용이 다른 지방과 판이하게 다르다.

경쾌하나 섬 사람들의 애환이 짙게 깔렸다. 메김 소리와 받는 소리가 조화를 이루며 고된 농사일을 승화시킨 선조들의 슬기로운 민요다.

장산들노래는 남도문화제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을 만큼 유명세를 탔다. 문화적 가치가 높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됐다.

이밖에 밭에서 김을 매면서 부르는 ‘하중밭매기노래’는 섬 지방 특유의 가락으로 구성된 농요로 또한 장산면의 민속 문화다.

도창리 노거수림


◇역사유적 산재

▲도창리 백제석실분=도창리 아미산(배미산) 남쪽 기슭에는 백제석실분이 잘 보존돼 있다. 이 고분은 1960년대 마을 청년들이 독서회관을 세우기 위해 봉토를 파내다가 발견했다.

고대시기에 영향력 있는 세력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유적으로 웅장하다.

백제의 무덤 양식 연구와 서남해역 진출시기와 관련해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통머리 마을 인근 양씨 선산에도 고분이 위치하고 토미산 쪽 구릉 남쪽 경사면에는 봉분 4~5기가 분포한다.

▲지석묘(고인돌)=장산도에는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고인돌도 여러 곳에 남아있다. 선사시대 많은 사람들이 밀집해 거주한 흔적이다.

지석묘는 아미산과 대성산을 연결하는 구릉의 좌우에 분포돼 있다. 도창리에서 대리 마을로 가는 도로변의 대신터 고인돌이 대표적이다.

주민들에 따르면 이곳에 모두 7기의 지석묘가 있었으나 오래전에 파괴됐다. 장산초등학교 인근과 대리2리, 도창리 중학교 뒤편에도 지석묘가 있었다. 전남 지방에 분포하고 있는 지석묘는 수천 기에 이르며 문화적 기반이 매우 강했고

이들 문화가 섬 지방에 파급돼 청동기인들이 이주해 왔음을 짐작케한다.

▲대성산성=196m 높이의 대성산성까지는 산허리에 잘 놓여진 임도를 따라 걸어서,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높은 산, 얕은 언덕에 하늘 높이 솟은 나무들이 빼곡하다.

발 아래로 펼쳐진 크고 작은 섬들을 안은 싱그러운 바다 빛에 매료되며 대성산에 올랐다.

지척에 진도의 섬들이 병풍처럼 둘러 쌓였다. 진도와 해남 화원반도를 지나는 해로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적지답다. 북쪽은 안좌도, 서쪽은 상하태도와 하의도가 자리잡았다.

대성산성의 높이는 4m, 폭은 2.5m로 화강암제를 다듬은 돌로 정교하게 쌓아 올렸다. 남쪽 부분 100m 가량은 잘 보존돼 있으나 나머지는 아쉽게도 흔적이 없다.

대성산성의 축성 시기는 삼국시대에서 고려중기까지 사용된 성곽으로 연구, 조사됐다. 또 1942년에 조사된 ‘조선보물 고적 조사자료’에는 대성산성의 규모는 높이 8척, 둘레 약 130칸이며 임진왜란 때 일본군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됐다고 전해진다. 고대부터 존재했던 석성이 임진왜란 때도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장산도는 충무공 이순신장군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1597년 10월11일부터 10월27일까지 16일을 머무른 걸로 알려진다.

3일째 되던 날 아산에서 왜구와 싸우던 막내아들의 전사 소식을 접하는 등 그의 생애 중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으로 전해온다.

난중일기 중에도 ‘발음도’에 도착해 제일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가 지형을 살핀 기록이 남아있다.

장산면은 임진왜란기에 이순신 장군의 유적지임을 알리고 역사 교육장으로 활용할 계획을 준비중이다. 내려오는 길에 다수리를 거쳐 밀물에도 썰물때도 상시 접안이 가능한 사근선착장에 닿았다.

섬 속의 작은 어촌마을로 인공 낚시터가 조성돼 있다. 잔뜩 쌓인 어구들이 즐비하다. 그물 손질로 여념이 없는 젊은 어부 두 명이 눈에 띈다.

바닷물이 들락날락거리는 목교를 걸으니 건너편 굴배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그 섬 넘어는 4가구가 사는 백야도다.



◇민속예술문화 ‘풍성’

장산면은 다른 섬들과 달리 자연에 기댄 토속신앙이 잘 발달하고 보존돼 있다.

장산 씻김굿을 통해 죽은 이의 부정을 씻고 한을 풀어 극락으로 보냈다. 굿당, 무복, 무구, 장식품 등이 소박하고 서민적이며 참신하다는 평가다. 바다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들 중 혼기를 앞두고 죽은 총각 ‘몽달이’와 ‘명두’를 혼인 시키는 망자 혼사굿도 성대히 치러졌다.

팽진리 마을 호피산에 80m 거리를 두고 위치한 2개의 성기바위 앞에서는 예전부터 아이를 원하는 여인들이 옷을 깨끗이 갈아입고 삼색실과를 차려 촛불을 켜고 빌었다. 다수리 막금마을 야트막한 당산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초에 마을의 평안과 제액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내기도 했다. 마진리 율도에서 매년 정월 초사흘날 새벽에 행해진 당제도 현재 당집만 남아 있다.



◇독립운동 숨결 스민 장산도

장산면은 1919년 3월 무안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장병준의 고향이기도 하다.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재무부차장으로 활약했고 광복 후에도 해방 조국의 통일과 민주화에 헌신했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고 대리마을에 선생의 생가터가 복원됐다.

대리마을에는 1929년 광주학생운동 당시 무력항일 투쟁과 독립운동 자금 모금 등에 앞장선 고 장홍염 선생 흉상이 세워져 있다. 장산면은 대한민국 최고의 수재들을 배출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신안=이주열 기자



도창리 백제석실고분






장산들노래전수관
사근선착장 인공낚시터
장병준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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