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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의 뮤직 줌<35>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산책

우리는 얼마나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나
고통 초월해 열정으로 가득찬 인생
‘전원’·‘운명’ 등 베토벤 영감의 장소
하일리겐슈타트는 창작의 원동력

2021년 08월 26일(목) 00:23
유리우스 슈미트의 ‘산책하는 베토벤’
“…나는 너희들에게 작별을 고한다. 어느 정도는 귀가 나을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 희망마저 잃고 말았다.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지듯이 나의 희망도 시들어 버린 것이다…”

1801년부터 증상이 나타난 베토벤의 귀의 이상은 이듬해 가을 교향곡 2번이 마무리될 무렵 청력을 거의 상실하며 작곡가로서 삶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베토벤은 두 동생 칼과 요한에게 10월 6일과 10일 ‘하일리겐슈타트 유서(Heiligenstadt Testament)’를 위와 같이 남겼다.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의 집
하일리겐슈타트는 과거 광천수가 발견되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빈의 상류층은 여름이 되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빈의 중심에서 북쪽으로 6km 떨어져 접근성도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며, 베토벤에게도 굉장히 의미있는 장소이자 중요한 장소가 된다.

그 이유는 베토벤이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유서를 남기기도 했고, 작곡가로서 활동을 계속하는 영감의 장소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베토벤은 1806년 다시 하일리겐슈타트를 방문해 교향곡 제5번 ‘운명’을 작곡하면서 교향곡 제6번 ‘전원’을 구상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1808년 여름 다시 그곳을 방문해 운명 교향곡을 완성했다.

하일리겐슈타트 유서(1802)
이후 귓병이 다시 악화되어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이 어려워졌지만 작곡가로서 명성은 확고해지고 경제적인 안정을 찾게 됨으로서 창작에 집중하게 된다.

이 시기 베토벤은 삼중 협주곡 C장조 작품56, 피아노 협주곡 4번 G장조 작품58과 5번 ‘황제’ E flat장조 작품73, 코리올란 서곡 작품62,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61, 교향곡 5번 ‘운명’ 작품67과 6번 ‘전원’ 작품68 등을 완성했다.

아마도 고된 창작활동 가운데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산책은 베토벤 삶의 워라벨(‘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의미인 ‘Work-life balance’의 준말)을 넘어선 삶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

베토벤 교향곡 6번(Symphony No.6 in F major Op.68)은 ‘전원생활에 대한 추억(Erinnerung an das Landleben)’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그는 작품 안에서 ‘회화적인 표현’보다는 ‘감정의 표현’으로 옮겨 놓았다.

하일리겐슈타트 베토벤공원
그는 “숲 안에 있으면 기쁘고, 행복하다”고 자주 표현하고 “사람은 속일 때가 있지만 자연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당시 귓병을 심하게 앓던 베토벤은 속세의 문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산책을 즐기며 힐링하는 장소로 작곡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그의 교향곡 6번의 특징 중 하나는 각 악장에 표제를 넣어 악장의 특징은 물론 전체적 흐름을 서사적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1악장은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즐거운 감정의 깨어남’, 2악장은 ‘시냇가의 정경’, 3악장은 ‘농민의 즐거운 모임’, 4악장은 ‘천둥, 폭풍우’, 5악장은 ‘목가-폭풍우 뒤의 즐거운 감사’라는 제목을 붙였다. 또한, 3개나 4개 악장의 기존 교향곡 구성과 달리 5개 악장 구성에 1악장부터 3악장까지는 악장 간 휴지 없이 연결되어 연주한다.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중 1악장 자필 악보.
프랑스대혁명 이후 1800년대 초 유럽은 정치·사회·문화에 대격변이 일어나면서 자유주의와 민중운동을 지지하는 지식인들 가운데 예술인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베토벤은 그들과 함께 ’자유·평등·박애‘ 정신의 계몽주의 철학을 신봉한 인도주의자(Humanitarianism)이기도 하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음악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그의 초기 작품은 고전주의 균형 잡힌 형식과 규칙적인 리듬, 대칭적인 선율 등 완벽한 소나타 형식을 사용했지만, 중기 작품은 고전주의적 형식을 유지하면서 선율과 화성의 다양한 시도, 관현악 악기 편성의 확대, 다양한 악상의 표현 등을 통해 베토벤의 스타일을 완성해 가고 있다.

베토벤의 음악적 시기를 여러 시기로 나눌 수 있지만, 특히 하일리겐슈타트 유서 이후에 완성된 작품들은 그의 음악적 특징을 더욱 성숙시키고 단단하게 밀집시키고 있다.

운명 교향곡과 전원교향악에서 보여주는 주제의 ‘음형 동기’와 교향곡 7번과 8번에서 들려주는 ‘리듬 동기’는 이후 낭만주의 시대의 순환주제와 라이트모티프(Leitmotiv: 악극이나 표제음악 등에서 곡 중의 주요 인물이나 사물, 특정한 감정 등을 상징하는 주제적 동기를 이르는 말)의 시초를 보여준다.

하일리겐슈타트에 있는 베토벤 기념상.
“악보를 틀리게 연주하는 것은 넘어갈 수 있다. 열정 없이 연주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1801년 가을 죽음을 고민하고, 유서를 남기기까지 베토벤은 끝없는 고뇌를 했을 것이다. 삶을 마감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유지할 것인지. 만약 그가 유서를 끝으로 사망했다면 그의 평가는 오늘날과 달랐을 것이다. 고통을 초월해 열정으로 가득찬 그의 삶은 드라마 그 자체이다.

베토벤의 관점에서 우리의 삶을 대입해 본다면 “우리 인생에서 실수는 용납할 수 있지만, 열정 없는 삶은 변명할 수 없다”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나는 얼마나,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나아가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지 문득 생각이 든다.
/광주시향 운영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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