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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김향남(수필가·문학박사)

2021년 08월 18일(수) 09:29
어쩌다 나는 개와 노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됐을까? 닮은 데라곤 하나도 없는 네발 짐승에게 발목 잡혀 어쩌다 그의 반려 노릇을 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그뿐인가. 요즘엔 고양이도 좋고 심지어는 까마귀조차 사랑스럽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공연히 즐겁다. 마음도 순해지고 맑아지는 듯싶다. 사람들을 만날 때 보다 그들과 있을 때 더 안정적이고 평화롭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모두가 질색하던 것들이지 않은가 말이다. 이러다가 혹시 내 주변엔 사람 친구는 하나도 없고 개나 고양이, 까마귀 들만 와글거리는 거 아닐까?

돌아보건대 그건 순전히 k 때문이었다. 그는 좀체 말이 없었다. 얼굴 한 번 쳐다보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나한테만 그러는지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는지 모르지만, 그건 엄청 서글픈 일이었다. 눈만 땡그랗게 굴리고 있는 그깟 개한테는 수시로 이름을 부르며 방싯거리기도 하고 까불거리기도 하면서 동족인 나에게는 어찌 그리도 인색한지, 그때마다 의구심이 솟구치지 않을 수 없었다. 개란 무엇인가. 대체 무엇이 저 굳은 표정을 해낙낙 풀어지게 하는 걸까.

적을 알려면 적진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했던가. 마침 k의 개가 새끼를 낳았다. 그놈을 데려와 길러 보기로 했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개와의 동거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개가 중한지 사람이 중한지, 말하자면 무엇이 중한지 모르는 삶의 시작이기도 했다. 나의 언어는 점차 k를 닮아갔다. 꼴불견이라 여겼던 것들을 똑같이 하는 것도 모자라, 어디든 놈을 동반코자 했으며, 밖에 나갔다가도 서둘러 돌아오기 일쑤였다. 이쯤 되면 k를 흉보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오히려 맞장구까지 쳐가며 실컷 개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막힌 것이 스르르 풀리면서 입가에는 미소까지 걸렸다.

개와 살다 보니 그 비스름한 것에도 눈길이 갔다. 나는 별로 싫어하는 것이 없는 두리뭉실한 성격이지만 뱀과 고양이만은 유독 싫었다. 뱀은 불쑥, 문득, 스르륵 기어 나와 혼비백산 나자빠지게 하는 징그러운 놈이어서 싫고, 고양이는 그 눈빛이며 울음이 섬뜩해서 싫었다. 다행히도 뱀은 이제 마주칠 일이 전혀 없는 아득한 존재가 되어 버렸지만, 고양이는 나날이 세를 넓혀가는 중이다. 놈들은 거만한 듯, 도도한 듯 거리를 유지한 채 나를 조롱하는 것만 같다. 어쩌다 놈과 딱 마주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풀숲이건 자동차 밑이건 후닥닥 숨어든다. 그리고선 곧장 경계 태세에 돌입해 눈도 깜빡 안 하고 뚫어지게 쳐다본다. 그 바람에 나는 움찔 쫄기까지 한다. 놈은 나의 움직임만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창까지 투시하는 것 같다. 나도 모르는 나, 알고도 눈 감고 있는 내 죄를 훤히 꿰뚫고 있는지도 모른다. 놈을 멀리할 수밖에는 없다.

언제부턴지 그런 마음이 싹 바뀌었다. 아마 어느 아침, 동네를 산책할 때였을 것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길 한가운데를 걸어오고 있었다. 양쪽으로 계수나무들이 서있는 좁은 길이었는데, 아직 어둑한 길을 놈은 약간 고개를 숙인 듯 느릿느릿 천천히 걷고 있었다. 제법 어엿하고 당당한 걸음걸이였다. 심지어 우아하기까지 했다. 나는 선뜻 걸음을 멈췄다. 놈도 훌쩍 숲으로 비켜 들었다. 나무 아래 몸을 굽히고서 활짝 열린 큰 눈으로 나를 응시했다. 나도 한참이나 놈을 바라보았다. 어느 아득한 순간에도 그랬던 것처럼….

며칠 후 놈을 다시 만났다. 놈은 새끼를 네 마리나 거느리고 공원 숲에 살고 있었다. 가슴께는 하얗고 나머지는 갈색 줄무늬로 뒤덮인 놈 세 마리와 온통 까만 놈 한 마리가 그의 가족들이었다. 뭐든 새끼들은 다 그렇게 이쁜 건가. 요놈들은 바위에 나란히 앉아 있기도 하고, 따로 떨어져 졸고 있기도 하고, 나무 위를 오르랑거리며 장난을 치기도 하는데, 그렇게 천진해 보일 수가 없었다. 가만히 놈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기가 파라다이스가 아닌가 착각이 들기도 했다.

까악까악, 지금 막 울고 가는 저 까마귀란 놈도 그렇다. 온통 새까매서 볼품이라곤 없는 데다 목소리마저 걸걸하고 탁하다. 그래서 얻은 평가가 재수 없다, 불길하다였을 텐데, 정작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도 안 쓰는 것 같다. 온 하늘이 울리도록 거리낌 없이 내지르는 저 탁성의 당당함.

해질녘, 동네를 산책하다 문득 나를 잊는다. 개와 고양이와 까마귀의 시간. 어둠이 내릴 때까지도 나는 일어설 줄 모른다. 하 참,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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