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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너스의 역사로 보는 인간 욕망의 일대기

◇여신의 역사
미와 사랑의 화신
사상·정치의 핵심
영감을 주는 뮤즈

2021년 08월 03일(화) 08:35
브론치노 작 ‘비너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1540~1550년, 패널에 유채) 중 일부. 이 작품은 ‘비너스, 큐피드, 어리석음과 세월’로도 불린다.
흔히 비너스 하면 벌거벗은 여인 이미지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떠올린다. 그런데 비너스는 최초로 문명이 탄생한 때부터 지금까지 인류 역사의 모든 순간을 함께했다. 인간은 왜 여신을 만들어냈을까? 역사가 기록되기 전부터 인간은 여신을 원하고, 상상해내고, 사랑했다.

여신은 생존이 위협받았던 선사시대에는 생명과 다산의 상징으로, 학문이 발달한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화 속 미와 사랑의 화신으로 나타났다. 로마인들에게 비너스는 사상과 정치의 핵심이었고,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자들에게는 영감을 주는 뮤즈였다. 때로는 전능한 신이었으며, 때로는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었던 비너스는 이름과 형태만 바뀐 채로 재탄생해 오늘날까지 우리를 매혹하고 있다. 여신은 미와 사랑, 섹스, 전쟁, 폭력 등 인간이 욕망을 투영하는 대상이었다. 따라서 여신의 역사는 곧 인간 욕망의 역사다.

역사학자이자 방송인이며 현재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연구원인 베터니 휴즈(Bettany Hughes)가 비너스의 역사를 탐구한 인문학서를 펴냈다.

저자가 수십 년간 여신의 자취를 따라 그리스 신전과 중동의 발굴터, 폼페이의 가정집 등 수많은 유적지를 직접 찾아 조사한 결과를 담았다.

저자에 따르면 그리스어로 아프로디테라 불리는 비너스는 중동과 지중해 연안에서 탄생했다. 수메르 문명에서는 ‘아난다’라는 이름으로, 아카드와 바빌로니아에서는 ‘이슈타르’로, 페니키아에서는 ‘아스타르테’라는 이름으로 각각 불렸다.

이들은 생명을 탄생시키는 성애의 힘부터 전쟁과 죽음, 파괴까지 주관했다. 고대 세계에서 에로스(사랑과 열정, 욕망)는 에리스(분쟁, 불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벌거벗은 비너스는 비교적 최근에 나타났다. 근대에 들어서자 비너스는 욕정을 자극하는 인간 모델로 전락했다. 여성들은 과거 여신들이 가졌던 위엄과 능력은 가질 수 없었으나, 여신의 아름다운 육체는 본받아야 했다. 비너스는 여성을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억압과 차별의 구실로 사용되었다. 지금도 비너스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일상에 들어와 있다.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아프로디테의 꽃 ‘장미’를 선물하며, 피부를 가꾸기 위해 비너스의 새 ‘비둘기’가 그려진 비누를 쓰고, 비너스의 과일 ‘석류’와 아름다운 여자를 연관 짓는다.

미와 사랑, 섹스, 폭력, 정복 등 고대부터 인류가 여신을 통해 욕망했던 것들은 지금도 변하지 않고 유효하다. 욕망은 우리가 존재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자극하는 삶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아프로디테-비너스, 천상의 여신은 단지 사랑만을 상징하는 화려한 여신이 아니다”라며 “지저분하고 골치 아프고 충동적이고 활기 가득한 인간사의 화신이자, 그런 인간사를 헤쳐나가도록 안내하는 길잡이”라고 말한다.

미래의창. 232쪽.
/이연수 기자         이연수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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