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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가는 길

정태헌(수필가)

2021년 07월 28일(수) 00:52
승용차 대신 완행버스를 타기로 했다. 외진 바닷가로 가는 길이다. 손수 운전으로 인한 피곤도 덜고 차창으로 스치는 남해의 정취를 느긋하게 만끽하기 위해서다. 도심과 근교를 벗어나자 버스는 굽이진 길을 감돌며 잦은 정차와 출발을 해댄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처음 기대와는 달리 버스 안은 시금털털한 냄새를 풍긴다. 한참 달리다 보니 속이 약간 울렁거린다. 오랜만에 버스를 타서 그런가. 그래도 차츰 불편하다는 생각보다 외려 낙낙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세월 따라 많이 단련된 건가.

어릴 적, 차 타기가 몹시 겁이 났다. 차를 조금만 타도 속이 울렁거려 토하기 일쑤이고 몸이 축 늘어지는 증상이 싫었다. 그럴 때마다 곁에서 함께 멀미를 하던 어머니는 자식의 등을 두드리며 못난 어미를 닮아 그렇다고 짠해하셨다. 어머니는 평생 차를 타기만 하면 멀미를 심하게 하곤 하였다. 하긴 체질적으로 멀미를 잘하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차멀미가 유별나게 심한 경우, 부모 어느 한쪽이 멀미하는 경우가 많다. 또 귀의 반규관이 다른 사람에 비교해 예민한 이가 멀미를 자주 한다고 한다. 이는 이전에 잘 유지되던 몸의 균형과 질서가 차를 타면 흔들리면서 혼란 상태에 빠지기 때문이다.

버스나 택시 운전사도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멀미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늘 하는 운전으로 적응이 돼서 멀미할 것 같지 않은 데도 말이다. 이는 바뀐 환경으로 시각 조절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나도 멀미를 덜 하게 된 때는 손수 운전을 하면서부터인데, 운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밖의 움직임을 시각으로 느끼며 균형을 조절했기 때문이다. 한데 남이 운전하는 버스를 오랜만에 다시 타다 보니 멀미를 하는 걸까.

어머니의 체질을 닮은 나는 지금도 멀미를 피하지 못하는데, 우리 집 아이들은 버스를 타든 승용차를 타든 멀미했다는 걸 듣거나 본 적이 없다. 도회에서 내처 살아서 차를 타는 훈련이 어린아이 때부터 익숙했기 때문일까. 반복과 적응, 훈련과 익숙함으로 멀미를 하지 않게 된 것이라면, 그것은 무분별한 적응과 원치 않은 훈련으로 감각의 한 귀퉁이가 무디어진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또 멀미를 하고 말았다. 몇 사람들과 섬 구경 길에 나섰는데 승용차를 타고 가는 시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러나 섬으로 가는 뱃길은 처음엔 어지럽더니 파도를 만나자 갈수록 속이 울렁거렸다. 연세가 지긋한 두 분은 멀미와는 거리가 먼 채 바다의 풍광을 즐기는데, 중장년층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심하게 멀미를 하고 말았다. 급기야 뱃속의 것들을 모두 토해내고 나서 몸이 축 늘어졌다. 한데 그리 싫은 생각보다 토한 후, 하늘 보며 누워있자니 외려 개운함이 서서히 밀려오는 것이 아닌가. 어릴 적엔 그리 싫었는데 이젠 세월만큼이나 쌓인 그 무엇인가를 밖으로 토해내 버렸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세상살이의 파도에 균형과 적응이 부족한 탓일까. 아니면 아직도 덜 마모되고 정형화되지 않은 구석이 있는 걸까. 실은 그리 심하게 멀미를 하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던 터라 곤욕을 치렀는데도 어찌 된 일일까. 진절머리가 날 법도 한데, 입안에 도는 신물마저 아련한 느낌으로 고이니 말이다. 이게 세월인가, 아니면 세월이 단련시킨 또 하나의 적응인가.

버스는 산모롱이를 따라 돌고 돈다. 휘청거리는 몸의 각도만큼 속도 따라 울렁거린다. 하긴 풍진 세상을 살면서 이런 멀미는 얼마쯤 감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살이는 출렁이는 세파 위에서 어지러움을 피할 수 없을 터이니 구태여 피하려 들지 말 일이다. 우리네 생은 어차피 잠시 흔들리며 머물다 가는 짧은 여정일 테니까.

달리는 차창 사이로 아청빛 바다가 출렁인다.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뱃속도 따라 울렁거린다. 그래도 이제는 개의치 않으련다. 정 참을 수 없으면 도중에 버스에서 내려 수평선을 바라보며 실컷 토하면 될 테니까. 멀미로 속을 말끔히 토해 비워 본 사람은 알리라.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바라본 하늘이 그래도 투명하게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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