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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렌토로 불리는 ‘사리마을’

신안 흑산도 <하>
정조 행차 막고 울분 토한 김이수 선생 흔적도
길 아래 천길 낭떠러지 ‘하늘다리’아찔 체험
고려시대부터 유배지‘흑산도’섬 문화 이끌어

2021년 07월 14일(수) 16:28
고래공원
[전남매일 신안=이주열 기자]▲일주도로와 ‘하늘다리’

상라산에서 다도해의 비경에 흠뻑 취한다. 흑산도 사방을 둘러 싼 섬들의 반짝거림을 뒤로하고 길을 재촉한다. 일주도로를 잇는 마리마을 근처에서 민권운동가 김이수의 흔적을 ?았다.

정조 임금의 행차를 가로막고 ‘격쟁’을 올린 김이수는 40여년동안 섬사람들의 손과 발이 됐다. 각종 징세와 부역, 지방관리의 부조리를 해결하는데 평생을 바쳤다.

김이수의 묘를 지나 비리마을에 접어드니 오른편으로 석양에 물들어가는 섬, 장도가 지척이다. 100여명 남짓 거주하는 장도는 이름 그대로 섬이 기다랗다.

섬에서는 보기 드물게 해발 180~200m에 대규모 습지가 펼쳐졌다. 장도습지에는 멸종위기종인 수달과 매, 솔개와 조롱이, 도롱뇽 등이 서식중이다.

춘란을 비롯한 습지식물 294종과 후박나무 등 군락이 펼쳐져 있다.

일주도로는 ‘하늘다리’를 통과한다. 교각이 없다. 이 구간은 절벽인 탓에 절취가 불가능해 캔틸레버 공법으로 길을 놓았다. 하늘 위에 떠 있어 ‘하늘다리’로 부른다. 길 아래 천 길 낭떠러지가 아찔하다.

하늘다리 벽면에는 1004섬 신안의 명물, 문화유산을 그려 놨다. 진리와 예리를 잇고 27년 만에 완성한 길을 기념하는 일주도로 준공비는 또 하나의 전망대다.

뉘엿뉘엿 사라지려는 해가 수평선 너머로 기어이 숨는 자연의 신비가 펼쳐진다. 힘겹게 지나 온 일주도로는 마냥 평온하다. 기념비 기단부는 바닷물 파장을 기하학 패턴으로 형상화했다. 기념비상은 1004섬 신안을 구체적으로 표현한 중성적 천사 모양이다.

흑산도를 오가는 선박들의 안전을 기원하고 일주도로를 지키는 수호신답다.

▲한국의 소렌토 ‘사리마을’

흑산도 관광 중 꼭 들러야 할 곳, 사리마을에 이른다. 마을 어귀, 작은 선창으로 바닷물이 오르내리는 어촌이다. 사리마을 해안가의 풍경은 이탈리아의 소렌토 만큼 아름답다.

찬찬히 들여다 본 마을 안은 여느 섬마을처럼 평화롭다. 부지런히 깨 터는 아주머니, 높이 자란 풀 섶에서 텃밭 돌보는 할머니들이 정겹다. 사리마을 담장은 섬 마을 원형 그대로 독특하다. 지난 2006년, 등록문화재 제282호로 지정된 소중한 유산이다. 바람이 많은 환경에 맞게 작은 성처럼 견고하게 쌓아 올렸다. 담쟁이넝쿨과 호박넝쿨이 담장을 마구 덮었다.

▲유배문화의 산실

흑산도 연해의 어류를 집대성한 ‘자산어보’의 저자 정약전은 흑산도 유배 당시 사리마을에서 거주했다. 처음에는 우이도에서 생활했고, 10년간 사리에서 머물렀다. 최근 개봉한 흑백영화 ‘자산어보’처럼 사리마을에서 자산어보를 완성했고 강진에서 유배 중인 동생 정약용과 편지를 통해 형제애와 학문적 교류를 나눴다.

사촌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했다. 현재의 사촌서당 건물은 지난 1998년 신안군에서 복원했다. 2009년에는 사촌서당을 중심으로 유배문화공원이 조성됐다.

당시 유배지의 생활상을 자세히 엿볼 수 있는 기회다.

절해고도의 섬 흑산도는 바다 한 가운데 떠 있어 고립성 때문에 고려시대 이후부터 유배지로 활용됐다. 고관대작부터 서민들까지 죄를 지어 왔다. 공원에는 유배된 사람들의 모습이 돌 하나, 하나에 새겨져 있다.

유배이유도 제 각각이다. 나인 정숙의 유배 이유는 ‘해괴한 짓’이다.

‘당론’으로 정쟁에 휘말려 오는 유배가 대부분이었다. 문헌상으로는 고려 의종 2년, 정수개가 최초의 유배자다.

조선시대까지 ‘나라에 큰 죄를 지은 죄인’ 140여명이 유배를 왔다. 흑산 유배는 왕의 특별 하교에 의해 선택됐지만 제주, 거제, 진도 다음으로 빈도수가 높은 유배지였다.

일부 유배인들은 학문적 생활을 영위하면서 토호처럼 횡포를 부리는 등 민초들의 생활고를 가중시키는 원망의 대상이기도 했다.

손암 정약전, 면암 최익현처럼 서당에 머물면서 학동들을 가르쳐 섬 문화의 튼실한 뿌리로서 섬 주민에게 끼친 영향도 크다.

서당터 앞에 세워진 천주교 공소가 눈길을 끈다. 최초의 순교자인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들어서 있다. 유배문화공원을 나오면 천촌마을 입구에서 면암 최익현이 새긴 글씨와 제자들이 세운 기념비를 볼 수 있다.

항일의병장으로 1876년 강화도조약에 반대하는 상소 때문에 흑산도에 유배됐다. 우이도에 머물다가 이듬해 진리마을로 이주해 서당 ‘일신당’을 열었다. 바위에 자신의 글씨 ‘기봉강산 홍무일원’를 남기고 ‘지장암’이라 명했다. 지장암 앞에는 제자들이 세운 ‘면암최선생적려유허비’가 있다.

▲예리항 볼거리 넘쳐

일주도로를 따라 흑산도를 빙 둘러본 설렘에 취해 다시 예리항에 닿았다.

지난 60~70년대 흑산도 파시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시절에 형성된 근대 상가 골목 이곳저곳을 기웃거려 봤다. 지난날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골목길은 최적의 여행 장소이기 때문이다.

미장원, 술집, 다방 등이 다닥다닥 붙어 사람들로 넘쳤으나 지금은 온데 간데 없다.

바닷가 쪽으로 몇 발짝 옮기니 고래공원이다. ‘홍어’의 고장, 흑산도는 일제강점기 당시 고래잡이도 성행했다. 한철에는 99마리의 고래가 잡힐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고래잡이에 열을 올린 일본은 예리에 ‘대흑산도 포경근거지’를 설치했다. 조선총독부 직원을 직접 파견했고, 고래잡이에 종사하는 일본 어민들이 상주하기도 했다.

현재의 예리 노인회관 뒤편으로 일본신사도 지어졌다. 광복 후에도 한동안 고래가 잡혀 구경꾼들로 장관을 이뤘다. 주민들은 이곳을 ‘고래마당’으로 부른다.

신안군은 주민들에게는 쉼터로, 방문객들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해풍에 잘 견디는 나무를 심고 부대시설을 조성하는 등 오는 9월 공원화 사업에 들어간다.

흑산도를 오가는 선박의 길잡이를 하는 등대로 가는 방파제는 포토존으로 제격이다.

조업을 마친 선박들이 방파제에 기대 올망졸망 모여 있다.

방파제 입구에는 오른 손을 머리 위에 얹고 바다 너머를 애닯게 바라보는 흑산도아가씨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미자의 ‘흑산도 아가씨’의 노랫말처럼, 남몰래 육지만 애타게 그리워했던 마음과 애환을 담은 조형물이다.

▲흑산공항 건설 사업 청신호

박우량 신안군수는 지난 7일 민선 7기 3주년을 맞아 기자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흑산공항 건설 사업 추진이 9부 능선을 넘었다”고 밝혔다.

최근 다도해국립공원 구역조정에 대한 관계부처 협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흑산공항 건설에 청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와 환경부, 신안군이 진통을 겪어온 ‘흑산공항 예정지 국립공원 해제와 대체지 편입’ 논의에 최근 물꼬가 트였다.

신안군은 새로운 편입지역으로 비금도 해변 4.5㎦(명사십리 해변 인근)를 내놨다. 해수부와 환경부가 긍정적으로 협의 중이다.

신안군과 양 부처는 각각 내부 품의를 거쳐 관련 행정 절차를 마무리하는 중이다.

활기를 띠기 시작한 흑산공항 건설 사업은 환경부의 국립공원구역조정총괄협의회의 심의와 ‘국립공원위원위’의 의결 절차만 남았다. 올해 말까지는 착공 여부가 확정 될 것으로 보인다.

박우량 군수는 “흑산공항은 섬 주민들의 교통 기본권 확보와 서해안의 해양 주권 강화를 위한 전진기지 구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속도감 있게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신안=이주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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