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겨찾기 추가
닫기
‘바람별 마을’ 촌장

탁현수(수필가·문학박사)

2021년 07월 07일(수) 00:15
“어릴 때 꿈이 무엇이었어요?” 지인으로부터 받은 갑작스러운 질문에 순간 말더듬이가 되고 말았다.

돌이켜보니 자라면서 무엇이 되어보겠다던가 또는 어떤 모습으로 살겠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본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산골 마을 딸부잣집 맏이로서 그저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허기진 마음의 공백을 메워가며 지냈다고나 할까. 가끔 가슴을 콩닥거리게 하는 불투명한 형상들이 밤을 설치게 한 적도 없지 않았다. 그때마다 춘풍에 꽃잎 날려 보내듯 후후- 아프게 불어버리곤 했다.

더 늦기 전에 꿈이란 걸 한번 꾸어보고 싶었다. 진지하게 자신과 대화의 문을 열어보았다. 며칠 만에 응답이 왔다. 가슴 밑바닥에 펼쳐지는 영상들을 자세히 훑어보니 어느 산촌 작은 마을이 총천연색으로 나타났다. 마을 이름은 ‘바람별 마을’이라고 했다. 고샅 구석구석을 유심하게 살피고 다니는 나는 이 마을 촌장이다. ‘솔바람 같은 맑은 바람이 불고 별빛이 고운 마을’이라는 뜻도 되고, ‘별의 상징처럼 희망과 꿈을 간직하고 소망하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뜻도 있다. 별을 자주 바라보는 촌민들이 사는 마을이었으면 하는 촌장의 바람이 담긴 이름이기도 하다.

20가구쯤 되는 집들이 병풍을 에두른 듯한 산자락 밑에 펼쳐져 있고, 마을 앞 산줄기가 끝나는 지점에는 푸른 호수가 물안개에 싸여있다. 호수를 감싸고 돌아가는 길엔 느티나무, 물푸레나무, 버드나무 등의 거목들이 시원한 그늘을 만든다. 나무숲에서 나와 작은 초등학교로 향하는 길가에는 산딸기들이 붉게 익어가고 있고, 시냇가 초원에는 각색의 들꽃들이 실바람에 춤을 춘다. 앞동산엔 키 큰 미루나무가 다섯 그루쯤 서 있는데 새들의 둥지를 쌍둥이처럼 이고 있다.

산등성이 너럭바위 중에는 ‘해맞이 바위’와 ‘해넘이 바위’가 있어서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고, 미루나무 옆에는 ‘별바라기 동산’도 있다. 사람마다 별자리를 하나씩 가지고 있어서 밤마다 자신의 별이 떠오르길 기다리며 염원과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촌민들이 협심하여 만든 별바라기 동산 야외무대에는 남녀노소가 때를 가지지 않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운다. 월요일은 마을 공동회의를 하고, 수요일은 ‘금주의 시(詩)’를 외워 낭송 대회를 열고, 휴일 밤에는 모닥불 앞에서 함께 식사하며 가무를 즐긴다.

마을 회의에서 결정된 순서대로 돌아가며 품앗이로 들일을 하고, 한 사람 한 특기 살리기로 만들어진 물건은 별바라기 동산에서 물물교환을 한다. 요리, 염색, 바느질, 도예, 목공 등등의 의식주 문화가 ‘바람별 마을’만의 독특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 모든 재료들은 마을에서 산출되는 것을 이용한다.

갖가지 야생초들로 차를 달여 오가는 사람들을 접대하는 사랑방 주인이자 촌장인 나는 온 마을이 조화롭고 평화롭도록 세심히 돌본다. 다음으로 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다. 수시로 마을로 이주를 희망하는 촌민들을 뽑는 심사를 주관해야 한다.

촌장으로서 촌민 모집 요강을 적어본다.

‘바람별 마을’ 촌민이 되실 분을 모집합니다. 특별한 자격 제한 없이 그 누구도 환영하지만 통과해야 할 몇 가지 요건을 아래에 밝힙니다. 첫째, 자연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 둘째, 하회탈을 닮은 웃음을 웃을 줄 아는 사람, 셋째, 곡식과 잡초를 구분하고 그들의 생태를 아는 사람, 넷째, 쓰레기를 적게 나오게 하는 방법을 잘 아는 사람.(* 심사는 ‘바람별 마을’ 앞 ‘별바라기 동산’에서 수시로 합니다.)

그냥 꾸어본 꿈이 아니라 이런 광고를 낼 수 있는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바람별 마을’에서 함께 살고 싶은 사람들도 많았으면 한다.

실시간뉴스

많이 본뉴스

자치

전매인터뷰

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