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안개가 짙었다. 경치를 보자고 올라온 것은 아니었지만 예상치 못한 광경에 눈이 휘둥그럴 지경이었다. 눈앞에는 한 무리의 군상들이 엎드렸다 일어섰다를 수없이 반복하는 중이었다. 사방은 운무에 덮여 있고, 보이는 것이라곤 예의 그 몸짓뿐이었다. 말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알아듣기는 어려웠다. 산마루까지 휘어 감은 짙은 안개가 소리마저도 흡수해버린 듯 눈앞의 광경만 유독 크게 다가왔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공손해 보였다. 단정히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몸을 굽혀 머리를 바닥에 대는 한없이 낮은 자세였다. 팔을 뻗어 손바닥을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 역시 겸허해 보이기만 했다. 그들의 머리 위로 먼 듯 가까운 듯 거대한 불상이 보였다. 학사모같이 생긴 납작한 관을 두른 두툼하고 넉넉해 보이는 형상이었다. 그는 희부윰한 허공을 광배처럼 두르고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오호, 저분이 바로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그 부처님이시란 말이지. 유명세에 끌려 오긴 했지만 이제라도 친견하게 된 건 다행이다 싶었다. 그 발치 아래 당도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나긋나긋해졌다.

그런데 웬걸. 무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거야? 제법 널찍한 공간인데도 들어갈 틈이 하나도 없었다. 호젓한 독대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었다. 아니, 무엇이 그리도 간절해서 이 험한 산중에까지…. 말 그대로 문전성시를 이룬 노천법당을 바라보며 나도 모르게 나온 말이었다. 물론 나도 그중 하나긴 했다. 그러려고 세 시간여를 달려온 참이었으니까. 문제는 좀처럼 자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거기 엎드려야 비로소 내 원(願)도 접수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었다.

난간에 기대어 차례가 오길 기다렸다. 나는 결코 종교적인 인간은 못 되지만 그즈음 하는 일이라곤 비는 것밖에 없었다. 부처님은 물론이고 하느님에게도 빌고 성모님에게도 빌었다. 나무에게도 빌고 바위에게도 빌었다. 해가 뜨면 해님에게 빌고 달이 뜨면 달님에게 빌었다. 심지어는 새에게도 빌고 매미에게도 빌었다. 나는 무력해져 있었고 누구의 공격도 받아낼 재간이 없었다.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빤히 알면서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돈도 잃고 사람도 잃고 희망마저도 달아나버리고 말았지만, 그래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세상의 어떤 기운을 끌어와서라도 그 부당한 횡포만은 떨쳐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 힘이 없었다. 기댈 데라곤 저 말 없는 하늘이나 임자 없는 명월뿐….

이슬비 오는 아침, 창밖에 매미 한 마리가 보였다. 언제부턴지 그 자리에 찰싹 붙어서 내 거동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연거푸 잠을 설친 내 꼴은 심란하기만 했다.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은 초췌한 몰골을 난데없는 존재에게 딱 걸린 형국이랄까. 나는 흠칫 놀랐지만 굳이 피할 이유는 없었다. 그는 잠깐이면 곧 날아갈 것이고, 누구에게 무엇을 발설할 존재는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악스러우리만치 크고 억센 그의 울음은 단지 제 존재를 밝히고자 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을 터였다. 7년을 어두운 땅속에 있었으니 저 높은 나무 위야말로 좋은 울음터가 될 만했을 것이다. 나는 마음 놓고 그에게 다가갔다. 얼굴을 디밀고 바짝 그와 마주했다. 그는 꼼짝하지 않았다. 날아갈 기미도 전혀 없었다. 마치 나를 탐색해 보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했다. 아니면 긴히 전할 말이라도?

나는 잠자코 그를 응시했다. 그도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서로를 마주하는 긴 시간만이 소리 없이 흘러갔다. 예기치 못한 독대였지만 아무 두려움도 적의도 없이 한참이나 그렇게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사이 비가 그치고 언뜻언뜻 푸른 하늘이 보였다. 문득 그가 날아올랐다. 그는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나는 쏜살같이 그의 꽁무니에 내 비원을 매달았고, 그는 충실한 전령처럼 저 건너로 날아갔다.

이윽고 빈자리가 생겼다. 높이 좌정한 여래 아래서 절을 했다. 이 많은 사람들의 기도를 들어줄지 안 들어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 기도만은 들어주시겠지, 머리를 조아렸다. 아니지. 하늘의 달이 천 개의 강을 다 비추듯 부처님 말씀은 아니 닿는 데가 없을 터…. 나는 더욱 깊이 몸을 굽힐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