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 초안을 기초하고 초대 유엔인권이사회 의장을 지낸 엘리너 루스벨트는 ‘인권은 가장 작은 곳에서, 자기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이렇게 작은 곳에서부터 인권이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면 더 큰 세계에서의 발전도 헛될 것’이라고 하였다. 가장 작은 단위, 가정이라는 곳에서부터 인권의 존중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인권 정신의 기본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 관계의 가장 작은 단위를 이루는 가족의 형태는 이미 급격하게 변하고 있지만, 그에 따른 법과 제도의 변화는 더디게 움직이고 있다. 그런 지체 속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배제된 가족들은 제도권 바깥에서 보호받지 못했고,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가족의 돌봄 부담 가중 등의 문제를 노정시켰다. 4월 27일 정부가 발표한 ‘제4차 건강가족기본계획’에는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1인 가구의 증가 등 가족 형태와 가족 생애주기의 다변화로 인한 변화를 반영하여 ‘법적 가족’의 범주를 재정립할 것을 비롯해 자녀가 아버지 성을 따르도록 하는 ‘부성(父姓) 우선’ 원칙에서 ‘부모협의 원칙’으로 전환 등의 계획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내용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들에서도 기본적 인권을 보장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하겠다.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탈피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을 지나 ‘한부모가족의 날’이 5월 10일에 있다는 것은 아직 널리 인식되지 않고 있다. 한부모가족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관심을 제고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여성가족부에서 제정되었는데, 원가정에서 양육되는 것이 입양되는 것보다 우선이라는 의미를 담아 5월 11일로 정해진 입양의 날 전날로 정했다고 한다. 미혼모나 미혼부 가정, 그리고 이혼가족 등 한부모가족 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예방하고 이들의 삶을 지지하기 위한 의미가 담겨 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혼인한 부부와 미혼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정상가족의 기준으로 삼고 집착하고 있다. 하지만 통계에서 나타나는 바 2019년 기준으로 29.8%로 감소하고 있는 반면, 1인 가구 비중은 30.2%까지 증가하고, 2인 이하 가구는 전체 가구의 58.0%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반영해 1인 가구, 동거커플, 룸메이트, 서로 의지하며 사는 노인동거, 학대로 피해받은 아동을 돌보는 위탁가정도 법적 가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가족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보편적 권리가 제한되거나 차별받지 않도록 관련 제도개선을 추진한다는 방향이 설정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본계획에서 잡고 있는 다양한 가족의 포용과 부성주의 원칙의 폐기방향에 대한 반대여론도 적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가족개념 확대·다양성 필요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루어진 가족만이 건강가정이고 혈연관계에 근거해야만 가족이라는 생각은 AI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 아닐까. 현대사회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이미 받아들이고 있다. 불과 십수 년 전에는 아픈 가족사로 드러내지 못했던 이혼도 이제는 가정 내 발생하는 여러 다양한 가족 문제 해결의 방법 중 하나로 보는 유연한 사회가 되었다. 반려동물 역시 행복한 가족 구성의 중요한 존재로 자리 잡고 있다. 10년 이내에 돌봄로봇이 가족의 범주에 들어올 것이라는 예측은 이제는 너무 평범하다.

정상가족의 건강이 구성원 각각의 행복과 건강한 삶에 우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정을 이루는 개개인이 행복하고 어떤 모습으로 있던 그 자체로 존중받을 때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지고 가정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제4차 계획이 5년 동안 제대로 실행되어 가족의 지평이 넓어지는 사회가 되길 기대해본다.